심수관 ()

공예
인물
조선시대 일본 사스마도기(薩摩燒)를 개창한 심수관가의 15대를 총칭하는 용어.
이칭
이칭
심수관가(沈壽官家)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본관
청송
출생지
남원
주요 관직
대한민국명예총영사|은광문화훈장
관련 사건
임진왜란
정의
조선시대 일본 사스마도기(薩摩燒)를 개창한 심수관가의 15대를 총칭하는 용어.
개설

임진왜란 때 시마즈요시히로(島津義弘)에 의해 일본 가고시마로 끌려간 피로조선인 도공 심당길의 후손으로 사스마도기(薩摩燒)를 개창한 심수관가의 15대를 총칭하는 말

활동사항

1598년 12월, 시마즈요시히로에 의해 남원 등지에서 심당길과 박평의를 비롯하여 40여인이 피랍되어 가고시마현 구시기노시마하라(串木野島平)에 상륙하였다. 이 가운데는 심당길(沈當吉)은 청송 심씨로 남원근교에서 피랍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족은 1603년 구시기노(串木野)로부터 현재의 히오키군 히가시 이치키죠 미야마(日置郡 東市 來町 美山) 나에시로가(苗代川)에 이주하여 나에시로가와(苗代川燒)를 열었다. 그로부터 18년 후 심당길은 박평의와 함께 도자기의 원료인 백토(白土)를 발굴하여 오늘날의 사쓰마도기를 개창하였다. 사쓰마번주는 이들을 사무라이급(士班)으로 예우를 하였으며, 이들이 구워낸 도자기에 사쓰마의 번명(藩名)을 붙여 사쓰마도기(薩摩燒)라고 명명하였다. 그 후 명치유신에 이르기까지 대를 이어가면서, 조선도자기의 흐름과 기예를 계승·발전시켜 나갔다.

1873년 제12대 심수관은 오스트리아만국박람회에 대화병 한쌍을 출품하여 서구세계에 사쓰마도기의 수출이 시작되어 ‘사쓰마웨어’라는 이름은 일본도자기의 대명사가 될만큼 유명해졌다.

제14대 심수관은 작가 시바료타로(司馬遠太郞)가 쓴 『고향을 잊을 수가 없소이다』의 주인공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1988년 일본인으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명예총영사로 임명되었다.

현재 15대 심수관이 대를 이어 가업을 계승하고 있다. 초대 심당길로부터 15대까지의 심수관가문의 계보는 다음과 같다.

초대 심당길(沈当吉)-2대 심당수(沈当壽)-3대 심도길(沈陶吉)-4대 심도원(沈陶圓)-5대 심당길(沈当吉)-6대 심당관(沈当官)-7대 심당수(沈当壽)-8대 심당원(沈当圓)-9대 심당영(沈当榮)-10대 심당진(沈当珍)-11대 심수장(沈壽藏)-12대 심수관(沈壽官)-13대 심수관(沈壽官)-14대 심수관(沈壽官)-15대 심수관(沈壽官)

상훈과 추모

1999년 제14대 심수관은 대한민국으로부터 은광 문화훈장을 받았다.

참고문헌

『아름다운 우리찻그릇』(윤용이, 이른아침, 2011)
『한일도자문화의 교류양상』(한일관계사학회, 경인문화사, 2005)
『沈家歷代作品圖錄』(沈壽官燒, 2005)
집필자
손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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