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동유적은 강릉시 교동, 유천동의 일부를 포함한 지역에 위치한다. 교동 택지개발지역에 포함되어 강릉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하였다. 주거지는 평면 방형 3기, 장방형 2기, 세장방형 1기가 조사되었다. 면적은 15~ 48㎡로 다양하다. 바닥은 모두 진흙을 얇게 깔아다졌고, 바닥에는 지붕과 벽체에 덮었던 갈대가 탄화된 상태로 남아 있고 드문드문 발견되는 불탄흙[燒土]은 화덕자리[爐址]나 가옥폐기 이후의 화재 등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내부시설로는 화덕자리, 기둥구멍[柱穴], 홈[溝], 저장구덩이[貯藏孔] 등이 확인되었고, 출입구는 확인되지 않았다. 화덕자리는 1호, 6호에서 확인되었는데, 1호는 방형(方形)의 돌두름식[圍石式]이며, 6호는 수혈식(竪穴式)으로 3기가 주거지 중앙 축선을 따라 같은 간격으로 확인되었다. 1호와 5호에서는 안쪽에 판자(板子)를 세우고 판자와 벽 사이에는 고운 점토로 뒤를 채우는 흔적이 확인된다.
대부분 주거지에서는 기둥구멍이 잘 남아 있으며, 2호 · 5호에서는 탄화된 기둥이 2개씩 확인된다. 저장구덩이는 대부분 주거지 모서리나 벽쪽에 치우쳐서 1개 내지 3개가 확인된다. 1호와 3호에는 작업대가 토기와 공반되는데, 1호의 경우 저장구덩이 옆에서 많은 양의 탄화미(炭化米)가 출토되고 있어 저장구덩이를 중심으로한 공간이 작업공간이나 조리시설 공간으로 이용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교동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1호에서 겹아가리짧은빗금무늬[二重口緣短斜線文]의 깊은바리모양토기[深鉢形土器], 구멍무늬[孔列文], 직립구연(直立口緣) 항아리토기[壺形土器], 굽달린작은항아리[臺附土器] 등 다양한 기종의 토기가 출토되었으며, 5호에서는 겹아가리톱니무늬[二重口緣鋸齒文]의 깊은바리모양토기, 직립구연의 항아리, 바리 등이 출토되었다.
교동 1호주거지 출토 이중구연토기는 옹형(甕形)으로 심발형의 가락동 유형의 토기로 보기보다는 청천강유역의 이중구연토기와 유사성이 보인다. 또한 몸통최대경이 구경보다 커서 몸통중간 부위가 볼록한 형태인 정선 아우라지 1호 주거지 출토 돌대문토기와도 유사성이 보인다.
교동 청동기시대 주거지에서 출토된 석기의 종류별 수량은 많지 않으나 청동기시대 집자리에서 흔히 나오는 일반적 특성을 가진 석기들이 대부분 망라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석기들은 삼각형 및 삼각만입석촉(三角灣入石鏃), 반달모양돌칼[半月形石刀], 가락바퀴[紡錘車], 돌도끼[蛤刃石斧], 어망추(漁網錘) 등 두만강유역의 동북지방계통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교동유적은 청동기시대 조기와 전기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교동유적에서 보이는 서북지역의 이중구연토기 요소와 심발형의 공렬문토기, 적색마연토기 등 두만강유역의 영향을 함께 받아 형성되어 상한은 조기로 올라갈 수 있다.
강원교동유적은 강원 영동지역에서 가장 이른 청동기시대 유적으로, 동해안지역 청동기시대 문화양상을 고찰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주거지는 장방형의 대형 집자리에 방형의 소형 집자리가 세트를 이루는 전형적인 취락으로서 당시 청동기시대의 취락구조 및 사회상을 포함한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또한 탄화미가 출토된 1호 주거지는 영동지방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주거지로 알려져 영동지방에서 벼농사가 일찍 시작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