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성군(昌城郡)
대유동의 금광은 전국 제1의 금생산지로 노다지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하며, 연평균생산량은 순금 3 톤 정도였다. 1897년 이후 40년간 프랑스인·미국인들에 의하여 경영되었으며, 그 뒤 일본인에 의하여 채굴되어 모든 이익은 그들이 독점하였고, 인근주민들은 노동력을 제공할 뿐이었다. 교통은 대창면·신창면과 벽동군·운산군 등을 잇는 도로가 연결되어 있어 편리한 편이며, 대유동∼운산 간의 도로는 금 수송을 위한 산업도로의 구실을 하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 교가 있다. 대유(大楡)·이천(梨川)·두룡(頭龍)·대(大) 등 4개 동리가 있다. [신창면 新倉面] 군의 중부에 위치한 면. 인구 6,981명(1944년 당시). 면소재지는 화풍동이다. 본래 장정현지역으로서, 1895년 창성군 신창면으로 되었다. 강남산맥이 뻗어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