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희(洪命熹)가 지은 장편소설. 대표적인 역사소설의 하나이다. ≪조선일보≫에 1928년 11월부터 1939년 3월까지 연재되다가, 일제의 ≪조선일보≫ 강제 폐간 조처로 다시 ≪조광 朝光≫에 옮겨 연재했으나 미완성으로 끝났다. 미완성으로 끝난 부분은 화적편(火賊篇)의 마지막 일부로 작품 전체 분량에 비추어 대략 10분의 1 정도 분량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의 표제는 연재 초기에 <임꺽정전 林巨正傳>이었으나 1937년 연재가 잠시 중단되었다가 재개되면서 <임꺽정>으로 바뀌었다. <임꺽정>은 전체 구성이 봉단편(鳳丹篇)·피장편(皮匠篇)·양반편(兩班篇)·의형제편(義兄弟篇)·화적편(火賊篇) 등 모두 다섯 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임꺽정>은 작품 전체가 단행본으로 간행된 적은 한 번도 없고, 광복 전에는 조선일보사에서 의형제편과 화적편 일부가 4권으로 출간된 적이 있으며, 광복 후에는 을유문화사에서 역시 의형제편과 화적편 일부가 출간된 바 있다.
1992년 사계절출판사가 봉단편·피장편·양반편을 포함하고 광복 전에 간행된 단행본과의 대조과정에서 발견된 누락 부분을 되살려 전체 10권으로 새롭게 펴내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연산군시대와 명종시대에 이르는 16세기 중반 전후의 조선 중기의 역사적 상황을 광범위하게 수용하면서, 특히 이 시기에 봉건적 질곡을 뚫고 일어선 평민 이하 하층민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우리 근대 역사소설에 새로운 지평을 연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첫째, 종래의 역사소설이 철저히 왕조사 중심이거나 근거 없는 야사에 의지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역사 왜곡과 함께 잘못된 역사 인식을 심어 주었던 것에서 벗어나, 충실하게 민중의 관점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탁월한 안목을 보여 준다. 둘째, 당시의 상·하층에 두루 걸친 생활상과 지배계급의 관습을 충실히 재현해 내고 있다.
셋째, 소설 속에 부려쓰고 있는 낱말과 문체에서 우리 고유어를 풍부히 되살려 내고 있으며, 일본어 번역투에 오염되지 않은 우리 입말의 전통을 고스란히 지켜 내고 있어, 연재 당시에도 ‘조선말의 무진장한 노다지’라고 평가받기도 하였던 소설 문체의 획기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넷째, 봉건적 요소에 저항하는 반봉건적 움직임의 강한 생명력을 드러냄으로써 건강하고 낙천적인 민중정서의 형상화에 성공하고 있다.
이 소설은 당시 역사소설의 양대 흐름을 지배하던 이광수(李光洙)류의 교훈적이고 낭만적인 경향이나, 박종화(朴鍾和)·김동인(金東仁) 류의 야사에 기댄 영웅주의적이고 부정확한 역사소설의 경향을 뛰어넘어 민중 정서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역사 해석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 역사소설의 전통은 최근 황석영(黃晳暎)의 <장길산 張吉山>이나 김주영(金周榮)의 <객주 客主> 등을 낳게 하는 문학사의 밑거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