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1책(총 144면). 필사본.
『청구영언』, 『해동가요』와 더불어 3대 시조집으로 일컬어진다.
10여종의 이본 가운데 원본에 가깝다고 추정되는 국립국악원 소장본은 표제가 ‘가사집’이다. 이본에 따라 청구영언, 청구악장, 해동악장, 화원악보(花源樂譜) 등의 이칭(異稱)이 있다.
보통 ‘가곡원류’라고 하나, 이것은 이 책의 첫머리에 송나라 오증(吳曾)의 『능개재만록(能改齋謾錄)』에서 ‘가곡원류’라는 부분을 참고로 인용한 것이 있어서 이것을 내제명(內題名)으로 잘못 알고 표제명으로도 ‘가곡원류’라고 쓴 것으로 추측된다.
국립국악원본을 중심으로 내용과 체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책머리에 『능개재만록』에서 인용한 『가곡원류』에 이어 「논곡지음(論曲之音)」, 「각조체격(各調體格)」, 「가지풍도형용십오조목(歌之風度形容十五條目)」, 「매화점장단(梅花點長短)」, 「장고장단점수배포(長鼓長短點數配布)」 등을 수록하였다.
본편은 남창부(男唱部) 665수, 여창부(女唱部) 191수로 총 856수의 시조 작품을 싣고 있다. 작품 배열은 오로지 곡조에 따라 우조초중대엽(羽調初中大葉)으로부터 엇편(旕編 : 지르는편ᄌᆞ즌한닙)에 이르기까지 30항목으로 분류하였다.
작가의 신분 차이나 연대순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이름이 알려진 작가와 무명씨의 작품도 곡조에 따라 뒤섞여 있다. 작가가 밝혀진 작품은 그 끝에 작가의 성명과 함께 간단한 약력을 소개하였다.
수록 작가의 연대적인 범위는 고구려의 을파소(乙巴素)에서부터 조선 고종 때의 안민영에 이른다. 작가의 신분 계층도 위로는 열성(列聖)에서 명공석사(名公碩士), 기녀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다루었다.
곡조를 밝힘에 있어서 대부분의 경우는 초중대엽, 장대엽 등 한자만으로 기록했으나 우조의 두거(頭擧)와 계면조의 중거(中擧) 등 6종은 “존쟈즌한닙, 듕허리드는쟈즌한닙” 등 우리말로 풀어 아울러 기록해 놓았다.
국립국악원본 이외의 이본으로는 ① 규장각도서의 『가곡원류』, ② 일본 경도대학(京都大學) 가와이문고(河合文庫)의 『청구영언』, ③ 최남선(崔南善) 소장의 『청구악장』, ④ 프랑스 동양어학교 소장의 『가곡원류』가 있다.
또 ⑤ 박상수(朴相洙) 소장의 『가사집』과 ⑥ 장서각도서의 『가곡원류』, ⑦ 『해동악장』, ⑧ 가람문고의 『가곡원류』, ⑨ 이희승(李熙昇) 소장의 『청구영언』, ⑩ 일본 도요문고(東洋文庫)의 『가곡원류』, ⑪ 이능우(李能雨) 소장의 『화원악보』 등이 있다.
이들 이본들도 대체로 국립국악원본과 체재 및 내용이 비슷하나 약간씩 차이가 있다. 규장각 도서본은 국악원본과 거의 일치하는데 본편의 작품 1수가 누락되었고, 작가 소개나 음부(音符) 표시 등이 생략되었다. 가와이문고본은 총 849수(본편 657수, 여창 192수)의 작품 중 국악원본에 없는 51수가 들어 있다.
최남선 소장본은 원사본(原寫本)이 6·25사변 중에 없어지고 1927년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 조선문학회에서 낸 등사판이 전한다. 626수의 시조와 부록으로 178수의 여창시조가 실려 있다.
『해동악장』은 총 874수(본편 658수, 여창 261수)로 『가곡원류』의 이본 중 가장 많은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이병기 소장본은 앞머리에 시절가, 장단, 연음(連音) 목록이 덧붙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일본 도요문고본은 국악원본과 체재 및 내용이 일치하나, 곡조에 있어서는 계면조의 삼삭대엽(三數大葉)에서, 작품에 있어서는 454수째에서 전사가 중단되었다.
『화원악보』는 1885년에 구은(龜隱)이라는 성명 미상의 인물이 엮어낸 책으로 체재 및 내용이 다른 이본들과 같다. 특히 일본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으로, 이 두 책에만 나오는 작품이 29수나 된다.
이들 이본이 어느 정도 공통점을 보여주는 것은 책머리의 <가곡원류>, <각조체격>, <매화점장단> 등 해설문을 통하여 시조의 곡조 및 창법에 크게 유념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곡조에 따라 29∼30항목으로 시조 작품들을 분류하고 있는 바, 『청구영언』의 10항목, 『해동가요』의 14항목에 견주어 볼 때, 곡조 분류방법이 현저하게 세분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가곡원류』 편찬시기에 있어서의 곡조의 특징은, 첫째로 삭대엽(數大葉 : 잦은치)이 발달하여 빠른 속도의 시조창이 유행하였다는 것이다. 둘째로 엇롱, 엇악, 엇편 등 ‘엇’의 형태를 지닌 곡조가 확립되었으며, 셋째로 가곡의 음악 형태와 시조의 음악 형태가 어느 정도 일치되었다는 점이다.
원래 가곡은 그 원형이 만대엽(慢大葉 : 늦은치), 중대엽(中大葉 : 중간치), 삭대엽의 세 갈래였던 것이 영조 이전에 만대엽이 없어졌다. 『가곡원류』 편찬 당시에 이르러서는 중대엽까지 어느 정도 쇠퇴하여 삭대엽이 한층 발달하였는데, 『가곡원류』는 이러한 시기의 변화를 증언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농, 악, 편의 곡조에 ‘엇’의 형태가 확립되었다는 것은 정격의 음악에 대하여 변격의 음악이 발달하였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 역시 『가곡원류』 편찬 당시 현저하게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시조의 음악형태는 경제(京制)에서 평시조, 중허리시조, 지름시조, 사설지름시조, 수잡가(首雜歌), 휘모리잡가로 나뉘는데, 이러한 체계는 가곡의 체계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가곡원류』의 각 이본에 보이는 곡조의 명칭과 이를 대비하면, 평거는 평시조, 중거는 중허리시조, 두거는 지름시조, 엇악 · 엇롱은 사설지름시조, 엇편은 수잡가, 편삭대엽은 휘모리잡가와 대응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가곡과 시조의 음악체계가 어느 정도 일치되어 창곡의 발달이 왕성하였음을 의미한다.
국악원본에는 전편의 작품에 걸쳐 세밀하게 음부를 기입하여 각 작품의 창법을 보여주고 있다. 규장각도서본, 가와이문고본 등에도 상당수의 작품에 음부를 기입하고 있다.
또 각 작품의 표기에 있어서도 『청구영언』이나 『해동가요』에서는 장(章)의 구분을 하지 않거나 하였더라도 3장으로 되어 있는데 『가곡원류』는 각 이본들에 대체로 5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그리고 이본들이 본편에 이어 여창 시조 작품을 부록으로 달아둔 것도 창곡의 발달과 깊이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다.
『가곡원류』의 편찬자인 박효관과 안민영은 스승과 제자 사이로 박효관은 당시의 가객들이 모인 노인계(老人稧)나 승평계(昇平稧)의 중심인물이었다. 『가곡원류』는 이러한 모임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시조집이다.
『청구영언』과 『해동가요』가 김천택(金天澤)과 김수장(金壽長)을 중심으로 한 가단(歌壇)의 이해와 협조에 의하여 편찬될 수 있었던 사실에 비추어, 박효관과 안민영을 중심으로 한 노인계, 승평계 등도 이러한 가단활동의 계승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청구영언』이나 『해동가요』가 시조 문학의 중간 보고서라면, 이 『가곡원류』는 그 총결산 보고서라고 할 만하다. 이 책이 편찬된 직후, 우리의 전통 문학을 잇는 이른바 신문학의 새 물결이 밀어닥쳐 왔기 때문이다. 특히, 『가곡원류』는 이본이 10여종이나 될 정도로 그 유포가 광범위하고, 음부를 구비한 시조집의 전범이 될 수 있다.
또한 『청구영언』, 『해동가요』와 더불어 시조 문학의 발달, 특히 음악 형태의 체계와 그 변화 과정을 살피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국립국악원본은 1957년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회에서 『국어국문학자료총서』 제2집(등사판)으로 간행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