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 ()

목차
사회구조
개념
가장인 남성이 강력한 가장권을 가지고 가족구성원을 통솔하는 가족형태 또는 가족구성원에 대한 가장의 지배를 뒷받침해 주는 사회체계를 일컫는 제도.
목차
정의
가장인 남성이 강력한 가장권을 가지고 가족구성원을 통솔하는 가족형태 또는 가족구성원에 대한 가장의 지배를 뒷받침해 주는 사회체계를 일컫는 제도.
내용

이 가운데 앞의 정의는 가족을 단위로 한 것이고, 뒤의 정의는 가족을 둘러싼 전반적인 사회체계를 중심으로 한 것이다. 가부장제적인 가족형태와 사회체계는 서로 규정하고 서로 재생산하면서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이 둘은 분리해서 고찰될 수 없고 종합적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한편, 최근의 여성학계에서는 가부장제를 여성에 대한 남성의 일반적인 억압체계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여성학계의 이와 같은 개념 정의는 가부장제의 한 측면, 즉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라는 측면을 부각시킨 것이며, 기존 사회과학계의 개념 정의와 모순된다기보다는 특정 측면을 발전시킨 것이라고 보아야 하겠다.

가부장제는 역사 이전의 시기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체계와 가족형태의 근간을 이루어 오고 있으며, 또한 여성의 지위와 삶을 결정짓는 데 가장 핵심적인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가부장제의 이러한 보편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시대마다, 그리고 지역마다 그 성격을 달리해서 존재해 왔다. 특히 우리나라 사회사에서 가부장제는 매우 고유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어 주목을 끈다.

우리나라에서 가부장제의 발생과 변화사는 수렵채취시대, 초기 국가의 성립에서부터 조선 중기까지,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그리고 일제강점기부터 오늘날까지로 시기를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다.

최근까지의 사회과학 이론에서는 초기국가 성립 이전의 무계급사회에서는 남녀 불평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최근의 인류학적 연구 결과들은 이러한 이론을 부정하고 있다.

즉, 수렵채취시대에도 자녀의 출산과 양육을 여성이 담당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성별 역할 분화와 이에 입각한 남성의 여성에 대한 통제를 가능하게 했다.

한편, 혼인제도는 생산에 대한 기여도가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다고 하더라도 남성에게 우월적인 소득분배 방식을 발생시켜 남성의 지배권을 확립시켰을 뿐 아니라, 여성의 성적 자유를 제한하는 장치로도 기능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남녀관계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 소유·종속 관계를 확립시키며, 여성이 출산한 자녀들에 대한 지배권을 남성에게 부여하여 초기적 가부장권이 성립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들이 우리나라의 수렵채취사회에도 적합하게 들어맞을 수 있는가는 아직 실증적 연구들이 부족하여 단언할 수가 없다.

초기 국가가 성립되었다는 사실은 남성이 그의 계층적 지위에 관계없이 국가에 대한 일정한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피지배 집단의 남성도 한 가족의 대표자라는 지위를 부여받게 되며, 이에 따라 신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남성들은 여성을 지배한다고 하는 공통의 관계에 입각해서 결합하게 된다.

이때, 초기적 가부장권이 확립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때부터 조선 중기에 이르기까지는 여성들이 가족 내에서 상당한 자율성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이 실증적 연구들을 통해 확인된다.

이 시기 여성들의 자율성은 남녀관계의 자유 개방성에서도 잘 드러나지만, 가족제도의 몇몇 특징에서 보다 명확히 드러난다.

우선, 이 시기에는 외가와 처가에 대한 관계가 매우 긴밀하여 부계친(父系親)의 일방적인 중요성이 확립되어 있지 않았고, 처가를 자기 집처럼 생각하여 장인·장모를 아버지·어머니라 부르고 친부모처럼 섬겼다.

또한 동성친(同姓親)과 이성친과의 차별이 없었으며, 족보 등의 기록에서도 딸과 외손을 차별하지 않았고, 제사 상속과 재산 상속에도 아무런 차별이 없었다. 아들이 없고 딸만 있는 경우에도 양자를 들이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들에서 이 시기에는 강고한 가부장권이 성립되어 있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오면 강력한 유교적 가부장제가 사회 저변에까지 확립되었음이 여러 가지 사실들을 통해 드러난다.

즉, 앞에서 언급한 친족제도·제사 상속·재산 상속·양자제도 등이 남성·동성친·장남을 집중적으로 선호하고, 여성·이성친·차남 이하를 차별하는 방향으로 짜여진다. 이와 같은 변화는 유교 규범이 사회 저변에 정착됨에 따라 일어난 것이다.

조선 초기에 국가 이념으로 등장한 유교 규범이 조선 후기에 와서야 비로소 사회 저변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 때부터 우리나라의 가부장제는 유교적 성격을 지니게 된다.

즉, 효라는 개념을 통하여 가장에 대한 가족구성원들의 절대적 복종이 요구되고, 여자에게는 삼종지도(三從之道)와 정조가 강제됨으로써 남성과 가족에 대한 절대적 종속이 요구된다.

여성과의 강제 이혼을 법률적으로 보장하는 칠거지악이라는 장치가 마련되고, 철저한 내외법을 시행하여 여성이 사회 내에서 주체적 행위자로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막아 버렸다.

이와 같은 유교적 가부장제는 국가조직 원리에까지 적용되었다. 즉, 국왕은 충(忠)이라는 규범에 입각한 가부장적 존재로 군림하였고, 신분관계를 비롯한 모든 사회관계에도 가부장적 관계가 적용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와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정착되자 우리나라 가부장제의 성격은 또 한번의 변화를 겪게 된다. 즉, 자본주의의 성립과 더불어 가정은 생산단위로서의 기능을 잃게 되었다.

따라서 여성은 사적 영역인 가정의 전담자가 되고, 남성은 임금노동자로서 사회적 생산을 책임지는 공적 담당자가 된다.

다시 말하면, 남성은 명실공히 정치·경제·사회적인 면에서 공적 영역을 담당하고, 여성은 사회적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적 영역을 담당하는 사회적 분업이 제도화된 것이다. 따라서 여성은 여전히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객체적 존재로 머물게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남성이 더욱 강력한 가부장권을 확립하게 된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의 성립은 남성의 생활 영역을 직장과 가정으로 분리시킨다. 낮 시간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내야 한다는 사실은 여성을 비롯한 가족구성원이 가정 내에서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였고, 또한 남성의 가정관리권을 약화시켜 가족에 대한 지배권을 점차 잃게 하였다.

한편, 우리나라의 현대사회가 자유주의적인 합리적 관계보다는 전근대적인 사회관계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사회조직의 원리가 가부장제적인 온정주의와 가족주의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회 문제를 온정주의적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는 사회의 합리화를 계속 지연시키는 기능을 하게 된다.

한편, 북한 정권은 전통적 가부장제의 기초 위에 김일성이 가부장적 권력을 획득하고 가부장적 국가조직을 형성시켜 전제주의체제를 유지시키고 있다.

가부장제의 전형적인 성격은 우선 가족 내에 형성된 가부장권의 특징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부장권의 첫 번째 특징은 가족구성원에 대한 거의 절대적인 지배권이라 할 수 있다. 즉, 혼인·이혼·상급학교 진학 등 가족 내의 모든 문제가 부모, 특히 아버지의 의사에 따라 처리된다.

두 번째 특징은 가산(家産)에 대한 독점적 지배권이라 할 수 있다. 가장은 조상 대대로 상속되어 온 재산은 물론, 자기가 취득한 재산을 독점적으로 소유하며 처분할 수 있다.

세 번째 특징은 가족의 영속성을 실현할 가계 계승권이다. 가장은 조상 숭배를 계속시켜야 하며 가통(家統)을 계승시킴으로써 가족의 영속성을 보존하여야 한다. 물론, 오늘날 우리나라의 가부장권은 이러한 특징들이 상당히 약화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가부장권이 완전히 붕괴된 것은 아니다.

한편, 가부장제는 결코 가족제도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가부장적 가족제도는 특정한 사회체계에 의해 유지되며, 가부장적 국가기구에 의해 재생산된다. 따라서 가부장적 국가기구와 사회체계는 많은 비합리적인 측면을 내포하여 합리적이며 규칙적이어야 할 사회적 기능체계를 마비시키곤 한다.

가부장적 사회체계가 있는 한 가부장적 가족제도가 존재할 수밖에 없고, 또한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가부장제는 조선 후기보다는 매우 약화된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기본 골격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가부장제가 많은 사회적 비합리성을 초래하고 권위주의적인 사회적 성격을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그리고 특히 여성의 억압된 지위와 삶을 유지시킨다는 점에서 변화되어야 할 대상임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여성학계에서 가부장제의 문제가 보다 심각하게 논의될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가 결코 급격히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고, 보다 합리화된 방향으로 사회 발전과 민주주의 교육을 적절히 시행해 나감으로써 점차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한국가족제도사연구』(최재석, 일지사, 1983)
『이조여성사』(박용옥, 한국일보사, 1976)
「가부장제에 대한 이론적 고찰」(조옥라, 『한국여성학』 2, 한국여성학회, 1986)
「한국 가부장권법제의 사적 고찰」(박병호, 『한국여성학』 2, 한국여성학회, 1986)
「산업화와 가족주의」(박영은, 『정신문화연구』 1985년 봄호)
「한국가족의 기본적 성격」(최재석, 『한국민속연구논문선』Ⅰ, 일조각, 1982)
「조선왕조시대에 있어서 여성의 지위」(정요섭, 『아세아여성연구』 12, 숙명여자대학교, 1973)
「한국여속사」(김용숙, 『한국문화사대계』 Ⅳ,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70)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