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1년 4계절 중 3번째 계절이다. 여름과 겨울 사이이며, 달로는 9~11월, 음력으로는 7월부터 9월, 절기로는 입추부터 입동 전까지를 일컫는다. 수확의 계절이자 겨울을 준비하는 계절이어서 수확에 대한 감사, 풍작의 기원과 관련한 세시풍속이 이 시기에 집중되어 있다. 산천이 단풍으로 물들어 단풍놀이 또한 국민적 놀이로 자리잡고 있다. 가을을 소재로 한 문학과 음악, 미술 등 예술 작품들은 보통 고독과 비애, 처연함과 같은 가을의 여러 형상에 감정을 이입한 작품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기상학적으로는 보통 9∼11월을 가을이라고 하나, 천문학적으로는 추분(9월 23일경)부터 동지(12월 21일경)까지를 말하고, 24절기상으로는 입추(8월 8일경)부터 입동(11월 8일경) 사이를 일컫는다.
그러나 기온 변화의 추이로 본 자연계절은 매년 달라지는데, 대체로 일최고기온이 25℃ 이하로 내려가는 초가을, 일평균기온이 10∼15℃이고 일최저기온이 5℃ 이상인 가을, 일평균기온이 5∼10℃이고 일최저기온이 0∼5℃인 늦가을로 세분된다.
서울에서는 9월 18일경에 초가을이 시작되어 11월 26일경에 늦가을이 끝나지만, 제주에서는 이보다 일주일 늦은 9월 25일경에 시작되어 12월 13일경에 끝난다.
8월 중순이 지나면 여름철의 기압배치는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우리 나라 일대를 덮고 있던 북태평양 고기압이 점차 약화되어 남쪽으로 후퇴하고 대륙에 시베리아 고기압이 형성되기 시작하면, 만주 쪽으로 북상하였던 장마전선이 남하하면서 한반도는 가을장마에 접어들게 된다.
이때는 가끔 집중호우가 내리거나 열대성 저기압인 태풍이 내습하기도 하여, 결실기에 접어든 농작물에 큰 피해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 북태평양 고기압이 늦게까지 우리 나라를 덮고 있을 때에는 늦더위가 나타나기도 한다. 9월 중순 이후 가을장마가 끝나면, 대륙의 시베리아 고기압에서 분리되어 나온 이동성 고기압이 빈번히 우리 나라를 지나 동쪽으로 이동해 간다.
이 때가 이른바 ‘천고마비의 계절’인 가을로, 맑은 날씨가 계속되며 강수량이 줄어들고 습도도 낮아지며, 산야는 단풍과 황금빛의 오곡으로 뒤덮이게 된다.
늦가을이 되면 낮의 길이와 일조시간이 짧아지고 기온이 차차 하강하며, 특히 일교차가 심해진다. 새벽에는 야간의 복사냉각으로 안개가 발생하기 쉬우며 서리도 내린다.
첫서리는 기온이 낮은 북부 지방과 바다에서 먼 내륙 지방이 빠르며, 고도 및 지형 · 지표면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때때로 첫서리가 너무 빨리 내릴 때는 농작물에 큰 피해를 주게 된다. 11월 중순 이후부터 기압골이나 한랭전선이 한반도를 통과하면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내리게 되고, 뒤이어 대륙의 차가운 고기압이 확장해 나오면서 기온은 급격하게 내려가고, 겨울이 성큼 다가오게 됨을 느낄 수 있다.
<화개월령 花開月令>에 보면 7월에는 목근(木槿) · 백일홍 · 옥잠화 · 전추라 · 금전화 · 석죽꽃이 피며, 8월에는 월계 · 백일홍 · 전추라 · 금전화 · 석죽이 피고, 9월에는 전추라 · 석죽 · 사계 · 조개황(早開黃) · 승금황(勝金黃) 등이 핀다고 했다.
가을에 피는 꽃은 봄 · 여름에 비해 그 수가 적다. 무궁화의 꽃은 여름부터 피기 시작하지만 역시 가을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무궁화를 추화(秋華)라고도 하는 것은 이 꽃이 가을의 맑은 하늘에 어울린다는 것을 뜻함이다.
감나무는 아름다운 단풍과 수없이 열리는 열매로 우리 나라 마을의 가을 풍경을 대표한다. 주로 남부 지방에 많으며, 마을 나무로 심어져 열매의 식용 가치 외에 아름다운 풍치로서의 가치도 크다.
감을 깎아 말리는 일과 길가 곶감 장수의 행렬 등은 우리 나라 가을의 대표적인 풍경이다. 감을 딸 때에는 나무에 몇 개쯤은 남겨놓고 따는 습속이 있는데, 이것은 까마귀와 까치를 위한 것으로, 홍시가 된 뒤 새들이 쪼아먹는 풍경에서 우리 국민의 자연애호정신을 엿볼 수 있다.
“오동나무의 잎이 떨어져 가을이 온 것을 알게 된다.”는 시의 한 구절은 쓸쓸하게 저물어가는 가을을 실감하게 한다. 오동나무는 목재로도 좋지만 정원수로도 좋다. 오동나무는 잎 뒤에 갈색 털이, 참오동나무는 흰 털이 있어 구별되는데, 참오동나무는 울릉도에 많이 자라고 있어 유명하다.
단풍나무는 우리 나라 가을산의 대표적인 나무로, 설악산 · 내장산의 단풍이 특히 유명하다. 단풍나무류에는 당단풍나무 · 신나무 · 복자기나무 · 산겨릅나무 · 고로쇠나무 등 종류가 다양하다. 특히, 가을철이면 단풍놀이를 즐기게 되는데, 봄에는 철쭉제, 가을에는 단풍제가 올려지기도 한다.
가을 단풍을 장식하는 수종에는 단풍나무류 외에도 참나무류 · 옻나무 · 붉나무 · 포플라류 · 화살나무 · 자작나무 등 그 종류가 많은데, 각기 나름대로의 색깔로 단장을 한다.
또한, 우리 나라 가을을 상징하는 나무로 빼놓을 수 없는 은행나무가 있는데, 대부분이 나이가 많고 큰 나무이다. 그 가운데 장수하는 것은 대개 암나무로서 은행이 많이 열려 식료품으로서의 구실이 크다.
산기슭과 밭둑, 그리고 마을 주변 어디에나 서식하는 밤나무가 그 탐스러운 아람이 벌어질 즈음에는 가을이 한껏 무르익어 간다. 광택 있는 진한 갈색의 밤알은 가을의 빛깔을 머금은, 우리 민족이 사랑하는 과일이다.
가을이 되면 집집마다 밤을 땅 속에 묻어 저장하는데 이것은 제수를 준비함이었다. 송나라 사신이 우리 나라에 와서 여름철에도 밤이 있는 것을 보고 기이하게 여겨 밤의 저장법을 물었더니, 관원이 대답하기를 “도기에 밤을 담아 땅 속에 묻어두면 한 해가 지나도 손상되는 일이 없다.”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잣나무는 학명이 피누스 코라이엔시스(Pinus koraiensis)로 되어 있을 정도로 한국적인 나무이고, 그 열매를 중국 사람들은 해송자(海松子)라 불러 숭상하는 식료품으로 취급했다.
가을이 오면 산 속으로 들어가 잣송이를 따 모으고, 이것을 마당 구석에 쌓아 말린 뒤 발로 밟아 문지르면 잣알이 튀어나온다.
뿐만 아니라 잣나무는 그 잎의 푸름과 굳센 나무의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시가(詩歌)의 소재로 되기도 하였고, 변치않는 절개의 나무로 국민들의 심성에 전해졌다.
가을에 꽃을 피우는 나무로서는 무궁화 외에 동백나무 · 차나무 · 싸리가 있다. 우리 나라 남쪽 해안이나 도서 지방에는 동백나무가 많은데, 꽃 피는 시기에 있어서 개체변이가 많다. 특히 가을에 피는 동백나무를 추백(秋柏)이라 불렀다.
가을철 우리 나라의 산과 들은 단풍과 열매로 장식되는데, 아름다운 열매에는 청미래 · 작살나무 · 찔레 · 매자나무 · 산수유나무 · 대추나무 · 산사나무 · 백당나무 · 석류나무 등 그 수가 대단히 많다. 이러한 열매가 산과 들을 물들일 때, 갈대 · 억새 등은 독특한 꽃을 피우면서 가을의 풍치를 더해준다.
이 때쯤이면 뜰에는 붉은 맨드라미의 꽃이 한창 피어 가는데, “오자오자 옻나무 가자가자 감나무 김치가지 꽃가지 맨드라미 봉선화”라는 동요가 불려지기도 한다. 키 큰 맨드라미는 바람 · 비에 약하므로 나뭇가지를 세워서 보호해 주기도 한다.
국화는 가을과는 뗄 수 없는 꽃이다. 시가나 그림의 소재로 이루어져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국화주는 별미로 알려졌다. 무 · 배추가 뽑히고 부인들이 김장 준비를 서두를 때가 되면 기러기 떼들이 하늘을 가로지른다.
마당에는 새 창호지로 단장된 문짝이 가을 햇볕을 받아 팽팽하게 마르고, 문틀 손잡이 부근에는 국화꽃잎 · 대나무잎 · 단풍잎 같은 여러 가지 꽃잎들이 창호지 사이에 수놓아지며, 초가 지붕을 덮기 위한 이엉이 엮어져 따뜻하고 풍요한 겨울 준비에 접어든다.
세시풍속에서의 가을은 음력 7월부터 9월까지를 일컫는다. 7월에는 말복이 들어 있고, 늦더위가 기승을 부려 기후 면에서는 아직 여름에 가깝다.
그러나 중순 무렵이면 아침 · 저녁으로 바람이 서늘해 가을 기분이 들게 된다. 가을의 명절로는 7월 칠석과 백중, 그리고 최대의 명절인 8월 추석, 9월 초아흐레 중양절(重陽節)이 있다.
칠석과 중양절은 모두 홀수가 겹쳐 양(陽)이 강한 날이고, 백중과 추석은 모두 보름명절로 농경과 보다 관계 깊은 날이다. 칠석은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오작교를 건너 1년에 한번 만난다는 날로서, 농가에서는 으레 비오는 날로 전해져온다.
이날에는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놓고 그 위에 고운 재를 평평하게 담은 쟁반을 올려놓은 뒤, 처녀들이 바느질솜씨를 좋게 해달라고 비는 풍속이 있다. 이튿날 나가봐서 재 위에 무엇이 지나간 흔적이 있으면 영험이 있다고 믿는다.
글공부하는 소년들은 이날 두 별을 보고 시를 짓기도 한다. 칠석날 올벼를 사당에 천신(薦新:그 해에 새로 난 과실이나 농산물로 신에게 차례를 지내는 것)하여 칠석차례를 지낸다. 혹은 부인들이 밤에 칠석단을 모아놓고 음식을 차려, 집안의 평안과 자손들의 명복을 비는 칠석제(七夕祭, 또는 七星祭)를 지내거나, 떡을 하여 논에 가지고 가서 용신제를 지낸다. 때로는 농사짓기 시합을 하고 김매기 · 밭매기가 끝났다고 하여 하루를 쉬기도 하였다.
백중절은 백종(百種) · 중원(中元) 또는 망혼일(亡魂日)이라고 한다. 정월 보름을 상원(上元)이라 하고 7월 보름을 중원(中元), 그리고 10월 보름을 하원(下元)이라 하는데, 중원은 1년을 반으로 나눌 때 후반의 시작이기도 하여 중요한 시기이다.
따라서, 상원과 대응되는 반복적 행사들이 거행된다. 이때는 보리농사도 끝나고, 올벼차례로 보리 수확 감사와 함께 가을 추수의 풍작을 예축하는 행사들이 집중되어 있다.
백중일에 승려들은 사원에서 재(齋)를 올려 부처에게 공양하고, 농부들은 여름농사를 마치고 발을 씻는 날이라 해서 농가의 명절로 여겼다. 이날에는 백중장(百中場)이 서고 온갖 음식을 장만해 먹으며, 농악도 하고 약수에 목욕도 한다. 백종이란 말도 이날 백 가지 음식을 차린다하여 유래된 것이라 할 만큼 푸짐하게 장만한다.
백중절은 원래 불교 우란분공양(盂蘭盆供養)에서 유래한 날로서, 애초 불가의 명절이었지만 농사가 일단락되어 한시름 놓을 시기이기에 쉽게 민가의 명절이 되었을 것이다.
요즈음에도 백중일에 신도들이 절을 찾아 불공을 드리고, 가정에서는 사당에 음식을 차려놓고 돌아가신 분을 불러 제사를 드리는 까닭에 망혼일이라고도 한다. 백중은 일손을 놓고 쉬는 날이지만 제주도에서는 살찐 해산물이 잡힌다고 믿어 바다일을 더 많이 한다.
7월 보름을 전후하여 농가에는 농사일이 일단 끝났다는 의미의 ‘호미씻기날’이 있다. 초연(草宴) · 머슴날 · 풋굿 · 농부날이라고도 하는데, 이날 그 마을에서 농사가 가장 잘된 집의 머슴에게 술을 대접하고 삿갓을 씌워 소 등에 태운 뒤 마을을 돌게 하고, 농악 · 씨름 등을 하게 한다. 안동 지방에서는 ‘풋구 먹는다.’ 하여 풋구날을 명절로 지내기도 한다.
8월 추석은 연중 최대의 명절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의 육부(六部) 여인들이 길쌈대회를 열고 끝날 때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즐겼다는 기록이 있는데, 중국의 역사책 ≪수서 隋書≫의 신라전에는 8월 보름에 국왕이 관리의 하례를 받고 풍악을 울리며 궁술을 겨루어 마포(麻布)로 상을 주었다는, 남자들의 무예에 대한 기록도 있다.
또, 일본 승려 원인(圓仁)이 쓴 ≪입당구법순례행기 入唐求法巡禮行記≫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사원에서 떡을 만들고 8월 보름에 명절놀이를 하는 풍속은 어느 나라에도 없고 오직 신라만의 독특한 풍속이다.
그곳 노승에게 그 유래를 물었더니, 그 날이 신라가 예전에 발해국과 싸워서 이긴 전승 기념일이라 이날을 기념 삼아 전 국민이 음식과 가무관현(歌舞管絃)으로 연 3일을 즐긴다. 우리 사원도 신라인의 사원인 까닭에 고국을 추모하여 이 명일을 즐긴다.”고 하였다.
추석날 아침 일찍 일어나 추석빔으로 갈아입고, 햇곡식으로 빚은 송편과 술, 그리고 갖가지 과일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차례를 지낸다. 차례가 끝나면 온 가족이 조상의 묘를 찾아가 성묘를 한다. 추석 이삼일 전에 미리 선산을 찾아가서 떼와 풀을 깎아 주는데, 이를 벌초라 한다. 성묘는 추석 당일에 못 가면 추석 전후에 하기도 한다.
전북특별자치도의 전주 · 남원 · 군산 등지에서는 ‘올게심니’라 하여, 벼나 조 · 수수 이삭을 방문 위나 기둥에 달아 놓고 풍작을 비는 풍속도 있다.
또, 전라남도 진도에서는 ‘밭고랑기기’라 하여 열나흗날 밤에 아이들이 나체로 제 나이 수에 따라 밭고랑을 기는 풍속도 있는데, 그렇게 하면 병들지 않는다고 믿었다. 추석빔은 단순히 명절옷일 뿐만 아니라 계절을 바꾸는 계절 전환의 옷이기도 하다.
9월 초아흐레를 중구(重九) 또는 중양이라 하여 명절로 삼았지만, 추석처럼 큰 명절로 여기지는 않는다. 중구는 9가 겹친 날, 중양은 양수가 겹친 날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9월은 국추(菊秋) 곧 국화의 계절이며, 곧 단풍머리라는 말도 있을 만큼 단풍의 계절이다.
중양절에는 이렇다 할 특별한 행사는 없지만 음식을 장만하여 산과 들을 찾는다. 지역에 따라서는 중양절에 동제를 지내는 곳도 있다.
가을철의 명절식으로는 칠석날의 밀전병, 추석의 송편, 중구의 국화전을 꼽을 수 있다. 원래 칠석음식은 여름철 음식 그대로지만 밀전병 · 밀국수는 반드시 등장한다.
왜냐하면, 이때가 지나고 찬바람이 나기 시작하면 밀이 생산이 안 되기 때문에, 밀가루 음식은 이날 마지막 잔치가 되는 셈이다. 이후부터 밀국수는 철 지난 음식이라 밀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또, 7월의 시절식으로 생선은 넙치이며, 나물은 취나 고비이고, 떡은 개피떡이 나온다. 추석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송편을 들 수 있다. 송편은 봄에도 즐기는 떡이지만, 봄송편이 햇솔로 묵은 쌀의 향기를 새롭게 하는 반면, 가을 송편은 햅쌀로 솔내를 맑게 해준다. 그러기에 추석에는 올벼(햇벼)로 만든 오려송편이 제 맛을 낸다.
또, 추석날에는 토란으로 단자를 만들거나 국을 끓이고, 무와 호박을 섞어 시루떡을 찌며 인절미도 만들어 먹는다. 햇곡이 나오기에 이것으로 빚은 신도주(新稻酒)를 차례상에 올리고, 밤 · 대추 · 감 · 사과 등 햇과일도 절식으로 즐긴다.
송이버섯으로 송이회 · 송이전 · 송이전골 · 송이산적을 만들어 먹고, 호박고지 · 박고지 · 깻잎 · 호박순 · 고구마순도 말리고, 더덕 · 도라지 · 두릅 · 고비 · 고사리 · 취 등의 산채를 말려 묵은 나물 준비를 하는 때도 8월이다. 생선은 낙지와 굴이 제 맛을 낼 때이기도 하다.
9월이면 추수를 끝내야 하므로 농가에서는 타작이 한창이다. 이 바쁜 틈을 타서 중양절을 즐긴다. 이날의 명절식으로 잎이 누런 국화잎을 따서 국화전을 만들고, 배 · 유자 · 석류 · 잣을 꿀물에 타서 화채를 만들어 먹는다. 9월 생선으로는 도루묵 · 고등어 · 숭어를 제철로 꼽는다.
가을철의 놀이는 단연 추석놀이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백중일에 백중장이 서고, 백중을 전후하여 호미씻기가 있어 씨름판이 크게 벌어지고 농악도 하지만, 추석의 놀이잔치가 훨씬 성대하다.
봄을 대표하는 상원의 놀이가 예축의 · 례(豫祝儀禮)와 관련되고 여름을 대표하는 단오놀이가 성장의례, 가을을 대표하는 추석놀이가 수확의례와 관련된 행사들이다.
특히, 추석놀이는 상원과 반복되는 놀이들이 많다. 소놀이 · 거북놀이 · 줄다리기 · 지신밟기, 그리고 탈춤 등이 모두 상원과 추석에 연희되는 놀이들이다. 소놀이는 멍석을 쓰고 소 모양으로 가장하여,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즐겁게 놀아 주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일종의 풍년놀이이다.
이 때, 으례 농악대가 따라 흥을 돋우는데, 이 놀이를 하면 풍년이 든다고 믿는다. 소놀이는 경기도 · 충청도 · 황해도 지방에서 많이 하던 추석놀이였다.
경기도 남부와 충청도 일부에서 많이 놀던 거북놀이는 소 대신 거북 모양으로 가장하여 놀았다. 거북은 십장생에도 등장하듯이 거북놀이는 거북의 장수에 곁들여서, 장수 · 무병을 빌고 마을의 잡귀를 쫓는다고 믿는다. 거북은 수신(水神)을 나타내는 영수(靈獸)이기 때문에 소놀이와 마찬가지로 농신(農神 : 농신과 수신이 동일시되기도 함.)에 관련된 기풍(祈豊)행사이다.
이 밖에 전라남도 남해안 지방에서는 부녀자들의 강강술래놀이가 벌어지고, 경상북도 의성 지방에서는 가마싸움을 벌였으며 씨름을 하는 지역도 많다. 제주도에서는 부녀자들이 추석날 조리희(照里戱)라는 줄다리기형식의 놀이를 했다는 내용이 ≪동국세시기≫에 기록되어 있다.
가을은 농사시기로 치면 수확기이기 때문에, 이때의 세시행사는 수확의례와 관련이 많다. 보름달은 풍요다산을 상징하는데, 정월 대보름에 농사의 풍작을 예축하는 많은 세시행사가 있는 것처럼, 수확의 절정기인 추석에도 많은 행사가 벌어진다.
특히, 수확기에는 7월 보름 백중과 8월 보름 한가위 두 차례에 걸쳐 보름명절이 있다. 농사는 파종기 · 성장기 · 수확기 어느 때나 중요하겠지만, 농사의 결실을 보는 수확기에는 이듬해의 풍년을 비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가 덧붙여진다. 이와 같이 가을은 추수감사의 달로서 민속 행사가 많은 계절이다.
<농가월령가>에서는 가을의 일로 김매기 · 벌초하기 · 김장채소가꾸기 · 베짜기 · 면화 · 고추따기 · 과일장만하기 · 타작하기 · 기름짜기 · 방아찧기 등을 들고 있다. 가을의 세시풍속으로 추석과 중구일을 들고, 근친을 가는 풍속(시집간 딸이 친정에 가서 어버이를 뵘)을 든다.
주로 농사일을 중심으로 계절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목화밭의 풍경을 백설 같다고 한다든지 고추를 널어 말리는 모습이 산호 같다고 비유한 것이 특이하다.
실제로, 문학 작품에서 가을의 묘사에 주로 등장하는 것은 국화 · 목화 · 단풍 · 낙엽 등의 식물과 기러기 · 귀뚜라미 등의 동물 이미지가 주된 것이다. 그리고 달 · 바람 · 비 · 하늘과 같은 자연 현상이나 추석 같은 세시풍속과 바쁜 농사일 등이 주로 등장하는 소재이다.
가을의 주된 정서는, 서리를 맞아가며 피는 국화에서 오상고절(傲霜孤節)을 본다든지 목화나 단풍의 풍경에서 그 조화롭고 아름다운 빛깔의 이미지를 제시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작중 화자의 상황과 대비될 때에는 비애감을 조장하는 이미지가 된다.
기러기나 귀뚜라미의 경우는 날아가는 모습이나 우는 소리로 고독과 비애를 드러내는 소재가 된다. 이러한 비애의 이미지는 퉁소 소리나 달빛의 맑고 처량한 분위기와 어울려서 고조된 고독이나 비애를 나타낸다.
가을달은 네 계절 중 가장 맑고 청량한 느낌을 주며, 때 맞춰 부는 바람도 소슬하여 청량감을 더해 준다. 이때에 내리는 비는 더욱 처연한 느낌을 갖게 하는데, 이런 비애의 분위기가 초목의 잎이 시들어 떨어지는 가을이 환기하는 비애감을 형성한다고 볼 수 있다.
민요는 이런 정서와 소재를 두루 보여 준다. 먼저 국화를 노래한 것으로 “잎이 지고 서리치니 국추 단풍 시절인가. 낙목한천 찬바람에 홀로 피는 저 국화는 오상고절이 되어 있고……”라고 해서 오상고절을 강조하는데, 이때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찬 하늘과 찬바람이다.
“꽃아 꽃아 국화꽃아 삼춘가절 다 버리고 구추중앙 기다리어 찬이슬과 찬서리에 반갑듯이 홀로 피네. 능상고절 장한 기상 화중군자 국화로다.”와 같은 표현도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전국적으로 고루 분포되어 있는 노래로서, 전형적인 생각을 나타낸다.
국화는 오상고절의 상징이지만 꽃 자체의 아름다움으로도 많이 노래되었다. “구월이로다 구월 국화 담장 안에 핀 국화는 향기마다 방긋 웃노라. 남창 북창 열고 보니 구월 국화 꽃밭이라. 꽃밭 속에 나비 놀고 구름 위에 신선이 논다……”와 같은 것도 국화가 아름답다는 사실을 노래한 것이다.
“영창밖에 국화 피어 국화 밑에 술 빚어 놓으니, 국화 피자 술이 익자 달이 돋자 임 오셨네……”라든가, “비 맞으며 국화뿌리 분에다 옮겨 심고 물을 주며 잘 가꾸어 구월이라 서리올 제 술잔이라 향기 띄워 취하도록 마시리라……”와 같은 것들은 모두 국화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풍류적인 측면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인간사와 대비되거나 연관되면 부정적인 것이 된다. “구월 국화 지는 남근 명년 봄으로 다시 오고, 내 청춘 한 번 가면 다시 올 줄 왜 모를고……”가 그 예로, 인간사의 영락이나 덧없음을 국화에 감정이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표현에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전국에 걸쳐 비슷한 내용의 민요가 불린다.
이와 같은 특성은 단풍을 소재로 한 경우에도 나타난다. “붉었도다 붉었도다 청산에 단풍이 붉었도다……”나, “시월 단풍 꽃밭이요 꽃밭 속에 동자가 놓여 꽃밭 속에 신선이 논다……”는 단풍의 붉고 아름다움을 예찬한 노래이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사에 감정이입될 때에는 사정이 다르다. “앞 남산 피나무 단풍은 구시월에 들고요. 이내 가슴 속 단풍은 시시때때로 든다……”라든가, “가을이 장차 돌아오면 나뭇잎은 모두 다 단풍이 들고, 세월이 가면 사람의 머리가 백발이 된다……”는 것은 단풍을 통하여 늙음의 슬픔을 표현한 노래이다.
그런가 하면 단풍의 또 다른 측면은 낙엽이다. 낙엽은 진다는 속성 때문에 슬픔을 환기하는 이미지가 된다. “구월 국화야 꽃자랑 마라 시월 단풍에 다 떨어진다……”라든가, “구월 국화 굳은 절개는 시월 단풍에 다 떨어졌네……”와 같은 것은 낙엽의 속성을 표현한 정도에 머물고 있으나, “바람에 지는 낙엽 풀 속에 우는 짐승 무심히 듣게 되면 관계할 바 없건마는 유유별한 간절한데 소리소리 수성이라……”고 한 것은 낙엽의 정서를 감정이입한 것이다.
그 밖에도 기러기 · 귀뚜라미 등과 같은 동물의 이미지가 가을의 달과 어울려서 외로움을 드러내는 소재가 되고, 여기에 싸늘한 바람까지 합하여 차가운 비와 함께 적막감과 고적감을 더욱 짙게 나타내주고 있다.
세시풍속으로서는 팔월 한가위와 구월 중구날이 주로 노래되는데, 풍성한 추수의 기쁨이 노래됨으로써 농경 사회의 생활을 보여준다. “저 건너 김풍월 거동 보아라. 타작가리 못통에서 춤만 덩실 춘다……”가 그 대표적인 예로서, 전국에 두루 퍼져 있는 노래이다.
신라 시대의 향가에도 가을을 노래한 것이 있다. 월명사(月明師)가 지은 10구체 향가인 <제망매가 祭亡妹歌>에서는 남매 간의 관계를 한 나무에 난 두 가지로 표현하고, 누이의 죽음을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지는 잎처럼……”이라고 낙엽의 쓸쓸함을 넘어서서 죽음의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다.
고려 시대의 시가인 <동동>에서는 7월의 백중과 8월의 한가위를 노래하였다. 9월은 “9월 9일에 아으 약이라 먹는 황화(黃花) 고지 안ᄒᆡ 드니 새셔가만 ᄒᆞ얘라.”라고 노래함으로써, 국화꽃으로 술을 빚어 먹는 풍습이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시조가 가을의 정서를 풍성하게 노래하고 있는데, 시조에 나타난 가을은 농사일이나 세시풍속보다는 가을의 소슬함이나 경치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데 치중해 있다는 특성이 있다.
맹사성(孟思誠)의 <강호사시가>에서 “강호에 가을이 드니 고기마다 살져 잇다. 소정(小艇)에 그물 싯고 흘리 띄여 더져 두고, 이 몸이 소일ᄒᆡ옴도 역군은 이샷다.”라고 노래한 것이나, 윤선도(尹善道)의 <어부사시사>가 살진 고기, 갈대 우거진 경치, 낚시질 · 이슬 · 바람 · 서리 · 달 등을 아름다운 흥취의 대상으로 노래한 데 그치고 있음이 그 예이다.
다른 소재를 두고 노래한 것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나타난다. 국화의 경우는 오상고절이 드러나고 국화와 함께 즐기는 풍류가 주된 생각을 이루고 있다. 단풍의 경우도 역시 풍류와 완상(玩賞)의 대상이다.
“단풍은 반만 붉고 시ᄂᆡ는 맑았는듸, 여흘에 그물치고 바회 우의 누엇시니, 아마도 사무한신(事無閑身)은 나 ᄲᅮᆫ인가 ᄒᆞ노라.”에서 보듯 풍류의 가을을 노래하는데, 낙엽이나 머귀잎 · 갈대꽃 등을 등장시켜 가을 경치를 그리고, 여기에 달빛과 어우러진 경치로 발전을 해서 낚시를 드리운 한가로운 모습을 노래함으로써 정감을 자아낸다.
그러한 표현의 전형이 “추강에 밤이 드니 물결이 ᄎᆞ노ᄆᆡ라. 낙시 드리치니 고기 아니 무노ᄆᆡ라. 무심한 달빗만 싯고 뷘ᄇᆡ 저어오노라.”라는 시조이다. 그 밖에도 기러기 · 귀뚜라미 · 서리 · 이슬 · 찬바람 · 가을비 등이 쓸쓸한 분위기를 표현하는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농사를 소재로 해서 가을철의 풍요를 말하는 경우도 농사일 자체의 흥겨움보다는 풍류적인 격조가 중시되었다. “대조볼 불근 골에 밤은 어이 ᄠᅳᆺ드르며 벼 뷘 그르헤 ᄂᆞᆫ 조차 나리는고야. 술 닉쟈 체쟝ᄉᆞ 돌아가니 아니 먹고 어이리.”가 바로 그런 예가 된다.
가사에서도 소재나 표현 혹은 정서의 전형성이 시조의 그것과 대동소이하다. 농사일보다는 풍류를 위주로 하는 발상도 비슷하다. 다만, 가을의 정경이나 정취가 작품의 동기가 된 것으로 <추풍감별곡 秋風感別曲>이 있는데, 이 노래가 동기가 되어 소설 <채봉감별곡 彩鳳感別曲>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어젯밤 바람소리 금성이 완연하다. 고침단금에 상사몽 울며 깨어 죽창을 반개하고 막막히 안자시니, 만리장공에 하운이 헛터지고, 천연 강산에 찬긔운 새로워라……”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임을 이별한 쓸쓸함을 노래하고 있다. 기러기 · 귀뚜라미 · 두견과 함께 긴긴 밤의 묘사와 심사의 외로움이 잘 어울려 나타나 있다.
이 밖에 가을의 전형적인 표현이 등장하는 가사작품으로는 <사시풍경가 四時風景歌> · <전원사시가 田園四時歌> · <성산별곡> · <만언사 萬言詞> · <사제곡 莎堤曲> · <청춘과부가> · <월선헌가 月仙軒歌> 등을 들 수 있다.
사대부가사나 평민가사를 막론하고, 가을의 전형적인 소재들이 동원되고 그것들이 쓸쓸함이나 고적함을 형성하는 점에서는 공통성을 보이고 있는데, 이것을 풍류의 경지로 승화시켜 가는 것이 사대부가사의 특징이다.
가을을 노래한 한시는 양에 있어서 풍성하고, 형상화나 정서의 표현 방식도 국문 시가의 그것과 흡사하다. 신라 때 최치원(崔致遠)의 <추야우중 秋夜雨中>은 가을비 내리는 밤을 노래한 것이다. “가을 바람에 다만 괴로이 시를 짓나니, 세상에는 내 시를 아는 이 적다. 창 밖에는 한밤에 비가 내리고, 등불 앞에 도사린 나그네 심사(秋風唯苦吟 世路少知音 窓外三更雨 燈前萬里心).”라고 하여 가을의 바람과 비, 그리고 밤의 정밀을 엮어 정서를 표현했는데, 그 외로움과 쓸쓸함이 잘 드러나 있다.
또, 고려 때 장연우(張延祐)의 <한송정 寒松亭>이라는 시는 “한송정 차운 밤 달은 하얗고 경포의 가을날 물결은 잔잔하네. 슬피 울며 왔다가 다시 또 가니 저 갈매긴 언제나 믿음 있고녀(月白寒松亭 波安鏡浦秋 哀鳴來又去 有信一沙鴗)”라고 해서 가을의 전형적인 이미지인 달과 갈매기를 결합하여 외로움과 쓸쓸함을 그리고 있다.
정철(鄭澈)의 <산사야우 山寺夜雨>는 “우수수 떨어지는 나뭇잎 소리 성글은 빗방울로 그릇 알고서, 중 불러지게 바깥 나가 보라 했더니 시냇가 나뭇가지에 달이 걸려 있다네(蕭蕭落木聲 錯認爲踈雨 呼僧出門看 月掛溪南樹).”라는 표현으로 낙엽이 지는 소리를 묘사하는 데 달과 비의 이미지를 원용하고 있다.
또, 이이(李珥)의 <화석정 花石亭>이라는 시는 “숲에는 가을이 저물어 가매 시인의 시정은 그지없어라. 물빛은 하늘에 닿아 푸르고 단풍은 햇빛 따라 불타 올라라. 산에는 둥근 달이 솟아 오르고 강에는 끝없는 바람 어려라.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저무는 구름 새로 소리 끊겨라(林亭秋已晩 騷客意無窮 遠水連天碧 霜風向日紅 山吐孤輸月 江含萬里風 塞鴻何處去 聲斷暮雲中).”로 표현함으로써 가을을 그리는 전통적인 이미지들이 모두 동원된 느낌이다.
한편, 장군 이순신(李舜臣)의 <한산도야음 閑山島夜吟>은 “바다에 가을이 저무니 기러기 떼 높이 날아가네. 밤새 시름으로 뒤척이니 새벽달이 활과 칼에 어려라(水國秋光暮 驚寒雁陣高 憂心轉轉夜 殘月照弓刀).”라 하여, 장수로서의 우국충정을 가을의 이미지에 실어 표현하였다. 나라를 근심하는 것도 가을의 쓸쓸한 이미지와 맞아떨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현대시나 소설에서도 가을은 풍성하게 묘사되어 고전 문학과 다를 바 없다. 신소설 작품인 최찬식(崔瓚植)의 <추월색 秋月色> 같은 작품은 제목에서 이미 가을 달빛이 주는 고적감이나 싸늘한 이미지를 함축하고 있으며, 그 밖에 가을을 쓸쓸하고 적막한 계절로 또는 인생의 황혼으로 묘사한 작품도 많다.
가을이 주는 고적감을 잘 드러낸 시로 윤동주(尹東柱)의 <별헤는 밤>을 들 수 있으며, 장만영(張萬榮)의 <달 · 포도 · 잎사귀>는 “순이 벌레 우는 고풍한 뜰에 달빛이 밀물처럼 밀려왔구나. 달은 나의 뜰에 고요히 앉아 있다……”라는 표현으로 가을밤의 고즈넉함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정서는 가을이 주는 보편적인 정서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라 볼 수는 없으나, 그 표현에 있어서 새로운 경향을 띠고 있다. “마당 가장귀에 얇은 햇살이 내려앉을 때, 장독대 위에 마른 바람이 맴돌 때, 부엌 바닥에 북어 한 마리 마루 끝에 마시다 둔 술 한 잔 뜰에 내려 영영히 일하는 개미를 보다가 돌아와 먼지 앉은 고서를 읽다가……”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고적감이나 메마름을 표현하는 데도 그 이미지가 신선하고 개성적인 것으로 바뀌어짐을 보게 된다.
김광균(金光均)의 <추일서정 秋日抒情>에서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로 이지러진 도룬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와 같은 표현이나 김현승(金顯承)의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라고 한 <가을의 기도> 등은 표현의 새로움이나 가을의 의미를 사색의 계절로 바꿔놓은 현대적 경향을 보여 준다.
전통 민요 가운데 가을을 노래한 것으로는 <벼베기소리>가 있다. <벼베기소리>가 그 내용으로 반드시 가을을 노래하고 있지는 않으나, 가을의 추수와 더불어 발전한 소리인 것이다.
가사 가운데에서 <권주가>는 가을을 주된 정서로 노래한 것이 있다. 이 가사에는 “오동추야 새벽 서리 찬바람에 외기러기 슬피운다. 임의 소식 바랐더니 창망한 구름 밖에 비인 소래뿐이로다. 오동추야 밝은 달에 임 생각이 새로워라. 임도 나를 생각는가……”라는 구절이 있는데, 가을의 외로움을 표현한 노래로 서도 소리에 가까운 요성(搖聲:국악에서 떠는 소리)을 써서 애상적인 분위기가 고조된다.
이 밖에 가사 작품으로 치는 <추풍감별곡>은 송서(誦書)라는 음악적 연행(演行)으로 불린다. 또, 시창(詩唱)이라는 것도 있어서 조선 시대의 신광수(申光洙)의 <관산융마 關山戎馬>가 주로 불리는 작품인데, 서도식 율창으로 높은 청으로 속소리를 내어가며, 실같이 고운 목소리로 뽑아내는 소리가 시원스러우면서도 비애조가 섞여 가을의 분위기에 걸맞는다.
이 밖에 서울 지방의 민요로 <달거리> · <창부타령> · <태평가> · <사설난봉가> · <한오백년> · <신고산타령> 등에서 가을의 묘사를 볼 수 있고, 전라도지방의 <강강술래>는 한가위 때 주로 벌이는 민속놀이인 강강술래가 노래의 동기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 노랫말이 가을이라는 계절과 반드시 관계 있는 것은 아니다.
서양 음악이 들어온 뒤에 작곡된 곡으로는 이흥렬(李興烈) 작곡의 <고향 그리워>, 서정주(徐廷柱) 작시, 이흥렬 작곡의 <국화 옆에서>, 이기은(李基銀) 작시, 이흥렬 작곡의 <코스모스를 노래함> 등이 많이 불린다. 이 음악들의 형식에 어떤 통일된 공통점은 있다고 할 수 없으나, 전체적으로 쓸쓸하고 고아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가을을 나타내는 그림 가운데는 적막하고 황량한 산수를 그린 것이 가장 많다. 가을의 이미지로 달을 즐겨 그렸는데, 조선 초기 김두량(金斗樑)의 <월야산수도 月夜山水圖>가 대표적인 것이고, <사계산수도 四界山水圖> 가운데 가을을 그린 부분이나 <동정추월 洞庭秋月> 등이 꼽힌다.
산수도에서 기러기를 특히 강조한 심사정(沈師正)의 <추경산수 秋景山水>도 알려져 있는 작품이고, 텅 빈 논과 들판을 그린 김두량의 그림도 유명하다. 채색화로서 단풍빛을 강조한 장시흥(張始興)의 <만풍도 晩楓圖>와 김창수(金昌秀)의 <추경산수 秋景山水>도 가을의 산수를 잘 나타내고 있다.
가을의 풍류나 은일자적인 풍모를 그린 것으로는 조선 시대 이유신(李維新)의 <행정추상도 杏亭秋賞圖>가 유명한데, 이는 정자에 앉아 국화꽃을 감상하는 광경을 그린 것이다. 그런가 하면 김득신(金得臣)의 <출문간월도 出門看月圖>는 달밤에 홀로 나와 달을 바라보고 서 있는 것을 그린 것인데, 여유와 해학이 넘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민화에서는 국화꽃을 가을의 화초로 즐겨 그렸으며, 더러는 메추리 같은 낯선 소재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농촌의 추수 광경을 그린 그림도 많이 전해지고 있다. 현대에 와서는 화풍의 변화와 서양화의 유입에 따른 변화가 있어, 전통적인 한국화보다 가을의 표현이 다양해졌다. 그러나 가을을 나타내는 소재나 형상화되는 정서가 달라졌다기보다는, 표현 기법에 있어서만 큰 변화가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가을을 일러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한 것은 가을을 충분한 식욕의 계절로 인식한 것을 나타낸다. 가을은 풍성한 추수의 기쁨이 있기에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계절로서, 이러한 충족감은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큼만 되어라.’ 하는 속담으로 더욱 구체화되어 있다. 이러한 충족감을 맛보기 위해서는 당연히 고된 농사일이 따라야 했다.
그래서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벙인다.’, ‘가을에는 죽은 송장도 꿈지럭거린다.’는 등의 속담이 암시하듯 바쁜 계절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바쁘게 일하면 그 대가가 나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을은 풍요로운 계절로 인식되어, ‘가을 식은 밥이 봄 양식이다.’라고 하여 봄과 대비시키기도 한 것이다.
가을은 날씨가 선선하니 ‘등화가친의 계절’이라고 하여 독서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가을이 오면 대대적인 독서 운동이 벌어지는 것도 이런 목적 의식의 측면과 관계가 깊다.
그러나 가을은 ‘조락의 계절’이라고 하여 가을에 지는 나뭇잎에서 인생의 한 모습을 바라보기도 했고, 추풍낙엽이라든가 가을 아침의 안개 등은 모두 허무함을 나타내는 말로 계절의 정서를 표현했으며, 가을에 노인을 빗대어 노래하는 것이 많음은 인생의 노년기가 가을에 해당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가을은 또 겨울을 준비하는 계절이어서 월동 준비가 특히 강조되었다. 가을에 거둬들인 것을 갈무리하는 것은 농경 사회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로서, 김장을 하고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한 땔나무의 마련도 가을에 해두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천자문의 배열이 ‘가을 추(秋), 거둘 수(收), 겨울 동(冬), 감출 장(藏)’으로 되어 있는 것도 그러한 생각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