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울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간월사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권 23, 언양현(彦陽縣) 불우조(佛宇條)에는 보이지 않으나, 『수오선생문집(睡聱先生文集)』 간월사기(澗月寺記), 정시한(丁時翰)이 찬한 『산중일기(山中日記)』, 18∼19세기에 만들어진 『언양현호적대장』등의 문헌에 기록이 남아 있다.
신라 진덕왕 때 자장(慈藏) 스님이 창건한 사찰로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634년(인조 12)에 다시 복원하였다고 전한다. 그리고 『언양현호적대장』에 수록된 기록으로 보아 적어도 19세기 말까지는 사찰이 남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간월사지 옆에 근래에 조성된 사찰이 남아 있으나, 본래 절터는 폐사(廢寺)된 이후 주위가 밭으로 개간됨에 따라 원래 사역(寺域)은 알 수 없는 형편이다.
최근에 동아대학교박물관이 발굴 조사함에 따라 금당터와 남·북 삼층석탑, 중문터, 동문터, 강당터를 비롯한 각종 건물지가 확인되어 대체적인 가람배치가 밝혀졌다. 곧 이 절터는 간월산 중턱에 위치한 비교적 작은 규모의 산지가람이며, 동향으로 되어 있는 금당터로부터 석등, 석탑, 중문터, 동문터로 연결되는 계단식 구조를 가지고 있다.
특징적인 것은 우선 금당터가 동향하고 있으므로 금당터 앞의 쌍탑이 남·북으로 배치되었다는 점과, 일반 쌍탑가람 구조와는 다르게 금당터 앞쪽 중앙을 기준으로 많이 벗어난 지점에 탑을 배치하되, 남탑은 인공으로 축대를 만들어 그 위에 기단부를 설치하였고, 북탑은 야산의 능선상에 기단부를 설치하였다는 점이다.
간월사의 창건 연대는 1963년 보물로 지정된 통일신라시대의 울주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과 파손된 석조여래좌상 2구(軀), 발굴 당시 출토된 청동여래상과 청동보살상, 각종 와당, 그리고 복원된 남·북 삼층석탑 등으로 보아 대략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중엽 이후로 추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