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유사(儒士)들이 단지 과거(科擧)의 문장만을 익혀 경·사를 널리 아는 자가 없었으므로, 이에 1280년(충렬왕 6) 1경(一經)과 1사(一史) 이상을 통한 자로 하여금 국자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도록 하여, 사재윤(司宰尹) 김제(金磾), 정랑(正郎) 최옹(崔雍), 좌사간(左司諫) 방유(方維) 등 7명을 경사교수에 임명한 것이 그 시초이다.
1296년(충렬왕 22)에는 경사교수도감을 두어 7품 이하의 관리들에게 경·사를 가르치도록 하여, 1경을 통하고 1예(一藝)를 익힌 자는 우대하여 발탁, 등용하게 하였다. 1304년에는 명유(名儒) 2명을 뽑아 경사교수도감사를 삼았고, 1348년(충목왕 4)에는 제조(提調) 3명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