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세사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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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개념
국가나 사회를 올바르고 윤택하게 경영하기 위하여 동양에서 인간 세상을 경륜 · 경영하는 일정한 기준이나 원칙을 담은 유교교리. 사회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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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국가나 사회를 올바르고 윤택하게 경영하기 위하여 동양에서 인간 세상을 경륜 · 경영하는 일정한 기준이나 원칙을 담은 유교교리. 사회사상.
내용

유가철학(儒家哲學)에서는 흔히 ‘경세제민’(經世濟民)이라는 말을 통해 국가와 사회를 바르게 경영하고 백성을 구제하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제 방면에 걸친 구체적 실천의 궁극적 과제와 원리를 제기한다.

‘경세’(經世)가 ‘제민’(濟民)을 위한 기본적 원리에 적용된다면, 제민은 경세의 구체적 목적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유가철학의 기본 원리를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 말할 때 유가의 경세사상은 ‘치인’(治人)에 해당되어 정치·경제·사회 · 문화등 여러 방면에 걸친 구현 방안 내지 세상을 경륜하는 논리적 사유 체계로 풀이되는 것이다.

한편 도가(道家)의『장자(莊子)』·「천하(天下)」편에서는 치세법(治世法)과 관련해 내성외왕(內聖外王)을 말하였다. 이와 관련해 유가에서는 수기를 내성지학(內聖之學)으로, 치인을 외왕지학(外王之學)으로 적용해 경세사상의 기본 원리로 간주하기도 하였다.

유가철학에서 경세사상과 관련한 직접적인 표현은 유가 경전 가운데 많이 나타난다. 『서경(書經)』「대우모(大禹謨)」편에서 “덕은 정치를 선하게 하는 것이요, 정치는 백성을 부양하는데 있다.”고 전제, 덕치(德治)와 선정(善政)을 정치의 이념(理念)으로 삼고 그 목적을 양민(養民)에 두었다.

그러나 여기서 양민을 위한 구체적 실천 과제를 정덕(正德)·이용(利用)·후생(厚生)으로 구체화해 치인의 궁극적 목표로 삼고, 양민을 위한 정덕과 이용과 후생이 경세제민의 핵심임을 나타내고 있다.

정덕은 인간으로서의 올바른 도덕성을 유지함이고, 이용은 일상생 활에 편리한 도구나 기계를 만들어 사용함이고, 후생은 의·식·주를 비롯한 건강한 삶을 유지시킬 수 있도록 적절한 환경을 조성하는 일로 풀이될 수 있다. 그러므로 유가의 경세사상은 백성들의 일상 생활이 올바르고 편리하며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복지사회 건설을 기본 이념으로 삼는 것이다.

여기서 요구되는 것이 공동체의 질서 유지이다. 일반적으로 질서 유지는 법과 제도에 의해 이루어진다. 사회사상과 관련해 유가에서는 예(禮)와 법(法) 두 가지로 설명한다. 이 때의 예는 남을 공경하는 권장을 주 원리로 삼는다면, 법은 형벌을 전제로한 금지를 원칙으로 한다.

그러므로 『논어(論語)』「위정(爲政)」편에서는 “정치적 명령으로 인도하고 형벌로 질서를 잡는다면 미혹한 백성들이 법망을 빠져나가 요행으로 형벌을 면하게 되더라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덕으로써 인도하고 예로써 질서를 잡아간다면 백성들은 잘못을 부끄러워하면서 그것을 고치려고 힘쓸 것이다.”고 하여 예에 의한 사회의 질서 유지를 중시하였다.

예가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다면 법은 강제성을 갖는 것이어서, 진정한 의미의 질서는 어디까지나 백성들의 양심을 자각시켜 자율적으로 남에게 공경하는 마음을 일깨워 자발적으로 예를 행하도록 권장하는 것이 법보다 더욱 효과적임을 말해준 것이다. 그러나 경세사상은 시대의 사회 상황과 밀접한 함수 관계를 갖는다. 이를테면 그 시대의 각각의 특성이나 사회 구조 및 주변 정세에 따라 경세사상은 변화된다.

뿐만 아니라 경세사상은 윤리적 형태나 도덕적 질서에 따른 철학적 견해에서도 주요한 측면을 형성한다. 예를 들면 선진시대의 유가뿐만 아니라, 당시의 춘추·전국시대라는 사회적 혼란상을 배경으로 출현한 제자백가(諸子百家)는 그 해법을 강구하고 세상을 구제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전개하였다.

그러나 유가에서는 전쟁을 통해 지배 권력을 쟁취하려는 힘에 의한 패도정치(覇道政治)를 버리고, 인간의 내면 속에 흐르는 착한 본성인 인의(仁義)를 정치철학의 근간으로 삼는 덕에 의한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주창하였다.

‘인정덕치’(仁政德治)로도 불리는 유가의 왕도정치는 그 근본 목적을 적극적으로 ‘대동’(大同)이라는 이상사회의 건설에 두었다. 이에 비해 비록 소극적이기는 하지만, 사회의 혼란을 일단 진정시키는 잠정적 조치로서 ‘소강’(小康)의 논리를 『예기(禮記)』「예운(禮運)」편에서 전개하기도 하였다.

유가의 경세사상은 천일합일(天人合一)사상, 즉 자연 법칙을 인간의 삶의 원리로 적용하려는 의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공자(孔子)는 하늘의 4계절 변화에 따라 땅의 만물이 생성소멸하는 자연의 정연한 법칙을 기반으로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부모는 부모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臣臣父父子子)는 정명론(正名論)을 전개하였다.

그는 임금이 되어서는 인(仁)에 머무르고, 신하가 되어서는 경(敬)에 머무르고, 부모가 되어서는 자애에 머무르고, 자식이 되어서는 효도에 머무르게 되어 제 직책과 제 직분에 걸맡는 제 할 일 제구실을 올바르게 다해 인정과 덕치의 구현은 물론 건전한 사회 질서의 확립을 도모했던 것이다.

맹자(孟子)는 백성과 더불어 즐거움을 함께 할 수 있는 여민동락(與民同樂)과 인의에 따른 왕도정치의 기본 체계인 정전법을 통해 산사람을 잘 부양하고 죽은 사람을 유감 없이 장사지낼 수 있는 민생의 안정을 제도적으로 정립시키려 하였다.

한대(漢代)의 동중서(董仲舒)는 자연과 인간이 서로 더불어 존재한다는 철학적 바탕의 ‘천인상여’(天人相與)를 강조해 천인합일사상의 효시를 이룬 한편, 한대의 사상과 문화를 유교 이념으로 통일시킴으로써 향후 2,000여 년 동안의 중국 역사에서 유교를 가장 중요한 통치 이념과 경세이론으로 정착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또한 『춘추(春秋)』 사상을 ‘대일통사상(大一統思想)’으로 규정하고, 뜻을 달리하는 학파의 난립이 법질서 혼란의 원인이 된다고 하여 편벽한 사상의 난립을 제거해 사회적 기강을 확립하고, 법도를 통일시키는 일이 가장 시급한 과제임을 역설하였다.

이와 함께 개방적 과거제도를 창시해 관리 등용에서 신분의 고하(高下)나 빈부의 차별에 구애를 받지 않는 사회적 평등의 경세 이론을 제창해 정치적 사회적 질서를 확립하는 평등론을 제기하였다.

송명대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실천적 방법론보다는 그 실천 행위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를 중심으로 하는 경향이 짙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경세책(經世策)의 제시보다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이론 탐구에 몰두하였다.

주돈이(周敦頤)는 그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 세계관과 인간관을 천인합일사상에 입각해 존재의 근원인 태극의 원리로써 세계와 인간 사회를 설명하는 한편, 유가의 덕치주의를 통해 상현 정책(尙賢政策)을 주장하고, 인의로써 다스리며 예악으로써 보완하면 착한 사람이 많아져 조정이 바로 잡히고 천하가 잘 다스려진다고 역설하였다.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를 저술한 소옹(邵雍)은 경세를 수학적 원리에 의거해 세계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간주하고, 『주역(周易)』의 괘(卦)와 상(象)으로써 요(堯)로부터 후주(後周)에 이르기까지의 치란(治亂)과 흥망(興亡)을 수리적 원리로 사회를 설명하였고, 왕안석(王安石)은 때의 변화를 헤아려 보수적 이론적 입장을 지양하며 신법의 제정을 주장해 사회 개혁을 도모하였다.

주희(朱憙)는 경세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인 북방 정책을 표방해 직언을 서슴치않고 두 차례에 걸쳐 봉사(封事)를 올렸다. 여기에서 그는 대학에 의한 제왕학의 강습과 중국 민족의 주체성을 확립해 이적을 물리칠 것과 공론에 따른 군신 관계의 정립 및 조정의 기강 확립을 제창하였다. 그 외에 왕수인(王守仁)은 지행합일을 통한 사회적 질서를 정립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실천적이고 현실적 측면을 소홀히 취급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근세에 이르러 청말 강유위(康有爲)는 변법자강운동을 주장하며 논리적 탐구 방면에서 탈피한 경세사상의 본질을 회복하려고 시도한 바도 있다.

조선시대의 실학자들도 대부분 경세치용(經世致用)과 이용후생(利用厚生)과 실사구시(實事求是)등을 경세사상의 중심 내용으로 삼아 변화하는 세계와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경세사상을 제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실학자들만이 경세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며, 유학의 본질적 내용이 수기치인에 있는 만큼 이기론에 집착했던 학자들도 역시 경세에 괌심을 기울였다고 말할 수 있다.

성리학을 근거로 한 이기론에서 ‘이기지묘’(理氣之妙)라는 탁월한 논리를 제시했던 이이(李珥)가 ‘시변사역’(時變事易)의 논리와 더불어 탁월한 경세사상을 전개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파악될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의 대부분의 학자가 자주 거론한 이른바 시무책이나 상소의 내용들이 또한 모두 이와 관련이 있음은 깊이 이해되어야 할 점이다.

그러므로 유가의 경세사상은 민본사상을 토대로 백성의 복리 증진을 위한 경세적 시무책의 제시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구축, 그리고 경세를 가능하게 하는 인륜 질서의 확립을 주축으로 발전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경세사상의 핵심은 경세치용과 이용후생 그리고 실사구시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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