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의 농경지는 그 규모와 형상이 불규칙하고 도로나 용수로 · 배수로 등이 미비한 상태였다. 특히, 우리 나라는 산악이 많고 국토면적의 3분의 2가 산지인 관계로 논이나 밭의 크기와 형상이 불규칙하고, 농가별 소유형태가 분산되어 있어서 합리적인 농업경영이 어려운 실정에 있었다.
따라서 분산된 형태의 농경지를 소유자별로 집단화하고, 불규칙한 형상의 논배미를 표준화하여, 농로 · 용수로 · 배수로가 논배미와 연결되게 하여 각종 영농장비의 출입, 농약 · 비료 · 퇴비 · 농산물 등 영농자재의 운반, 관개 및 배수 등의 물관리와 기타 영농관리를 원활하게 하려는 데 있다.
뿐만 아니라 농작물 생육에 부적합한 농지를 개량하여 땅심[地力]을 높임으로써 토지이용률이나 농업생산성의 향상, 농촌일손 부족의 경감, 영농의 편리, 농촌환경개선 등을 통한 복지농촌건설의 기본이 될 기계화영농의 촉진을 위한 사업이기도 하다.
우리 나라에서 경지정리사업을 꾀한 것은 1419년(세종 1) 전라도 고부군에 눌제(訥堤)를 수축하고 그 아래에 있는 1만여 결의 농경지에 전라감사 이안우(李安愚)가 정전법(井田法)을 실시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일본제국주의가 수탈정책의 하나로 산미증식계획을 통하여 1920∼1939년까지 20년 동안 각종 수리사업을 추진한 일이 있었다.
1930년 전라북도 익산군 오산면 오산리의 논을 대상으로 토지회사인 불이흥업주식회사(不二興業株式會社)가 구획정리사업을 실시했다.
그 뒤 일본인 대지주들이 자기 소유의 농경지를 대상으로 한 산발적인 경지정리사업을 추진하던 중, 1927년 12월 <조선토지개량령 朝鮮土地改良令>이 발표됨으로써 계획적인 사업으로 전환하였으나 1943년에 끝나고 말았다. 광복 당시까지 4만 3000㏊의 논에 경지정리사업이 실시되었다.
당시의 경지정리사업은 일본이 1899년 독일의 사업을 본뜬 바둑판 모양의 구획정리와, 용수와 배수를 겸용하도록 수로를 설치하였을 뿐, 기계화영농기반이 될 농로의 설치는 하지 않았다.
광복 이후 20여 년 간은 농업용수원 확보가 시급하였으므로 경지정리사업은 침체되었다가, 1964년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안포리에서 처음으로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경제개발5개년계획에서의 공업입국문제와 겹쳐 정부 지원규모가 미약하였고, 지방재정과 농민의 의식구조, 농촌의 어려운 경제사정 등의 좋지 못한 여건 속에서도 1971년까지 13만 8000㏊의 경지정리사업이 완성되어 기계화영농 촉진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1972년부터는 정부주도사업으로 소요사업비의 50%를 국비로 지원하고, 30%는 지방비, 나머지 20%는 농민부담으로 재원부담비율을 조정하는 등, 제도와 절차가 체계화되었고, 사업이 정상궤도에 올랐다.
그러나 사업시행 규모가 점차 확대되면서 지방비 부담이 늘고, 공사의 수준향상과 노임 및 물가상승으로 어려움이 나타나서, 1982년부터는 순농민부담의 3분의 2, 즉 총사업비의 13.3%의 해당액을 융자금으로 지원하여 농민의 현금부담을 경감시켰고, 1983년부터는 국고부담률 50%를 60%로 확대지원하는 대신 지방비 30%를 20%로 경감시켰다.
그리고 공사의 수준도 흙구조물 위주에서 콘크리트 라이닝 또는 개거(開渠) 등으로 전환시키고, 객토(客土) · 복토(覆土) 등의 지력증진공사를 점차적으로 확대하였다.
또 논배미의 크기, 도로규모, 배수로설치 등도 기계화영농이 가능하도록 대비하며, 농업용수 · 하천개수 · 배수설비개선 등과 관련시켜 종합적인 농촌정비사업으로 발전시켰다.
경지정리사업은 주로 논을 대상으로 시행하고 있으며, 제주도에서만 밭의 경지정리사업을 시범 시행하고 있을 뿐이다.
경지정리 대상으로 계획된 91만 5000㏊(논면적 80만㏊)는 수리시설이 갖추어지고 단지의 규모가 3ha이상인 지역 중에서 경사도가 15분의 1보다 완만한 논으로서 이 중 1998년 현재 77만 8000㏊(논면적 67만 8000㏊)에 대한 경지정리를 추진하였다.
경지정리사업으로 얻어지는 효과는, ① 농로개설로 영농자재와 농산물의 운반이 쉽고, ② 용수로와 배수로 조직의 일체감으로 물 관리가 편리하고, ③ 토층교환에 따라 땅심이 높게 되고, 객토시공으로 토양개량의 효과가 있다.
④ 농로신설 및 정비로 촌락간의 내왕과 영농작업의 편리도모 및 농촌환경을 개선하며, ⑤ 분산소유하고 있던 농지를 한 곳으로 모아 농경지집단화로 농업경영의 합리화를 꾀할 수 있으며, ⑥ 관개가 좋아지고 논배미가 표준화되어 농민간에 증산 경쟁심이 생기고, 농업의 기계화촉진 및 영농기계화 효과가 높아진다.
⑦ 사업이 농한기에 이루어져 농촌의 유휴노동력을 고용하게 되므로 농외소득을 증가시키는 효과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