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宣祖)의 후궁인 정빈(貞嬪) 남양홍씨의 아들로 1596년(선조 29) 태어나 1644년(인조 22) 49세에 사망하였다. 이름은 주(珘), 시호는 효헌(孝獻)이다. 어머니 정빈 홍씨는 인동현감 증 이조참판 홍여겸(洪汝謙)의 딸로 1580년(선조 13) 숙의(淑儀)로 입궁하였다. 정빈 홍씨는 1남 1녀를 두었는데, 경창군과 그의 누나 정정옹주(貞正翁主)이다.
경창군은 8세가 되던 1603년(선조 36)에 봉군법에 따라 군(君)에 책봉되었다. 선조는 1607년(선조 40) 비망기(備忘記)를 내려 경창군의 혼처를 검열(檢閱) 조명욱(曺明勗)의 딸로 정하였다. 그러나 다음해에 선조가 승하하자 혼례는 1610년(광해군 2)에 광해군의 명으로 정원군(定遠君)의 주관 아래 이루어졌다.
경창군은 군부인(郡夫人) 창녕조씨에게서 4남 3녀를 두었고, 측실(側室)에게서 2남 2녀를 두었다. 장남은 창원군(昌原君) 준(儁) , 2남은 임해군의 양자로 출계한 양녕군(陽寧君) 경(儆), 3남은 신성군의 양자로 출계한 평운군(平雲君) 구(俅), 4남은 창성군 필(佖)이다. 장녀〔이름 미상〕)는 직장 이후걸(李後傑), 차녀 이옥란(李玉蘭)은 진사 류연(柳㝚), 3녀 이말란(李唜蘭)은 판관 심약하(沈若河)와 혼인하였다. 서(庶)1남은 창림군(昌臨君) 일(佾), 서2남은 창흥군(昌興君) 수(脩)이다. 서1녀 이백덕(李百德)은 구취형(丘取衡), 서2녀 이천금(李千今)은 현감 안집(安㙫)과 혼인하였다.
경창군은 효성이 지극하여 13세 때에 선조가 병이 악화되자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밤에도 옷을 벗지 않았다고 한다. 검소하게 생활하면서 외부 사람들과 교제를 하지 않았으며, 시사(時事)에 대한 말을 삼가서 광해군대에도 화를 입지 않았다. 인조대에는 종부시(宗簿寺) 도제조(都提調)와 종친부(宗親府) 유사당상(有司堂上)을 지내며 종친을 관리했으며, 1625년(인조 3) 소현세자(昭顯世子)가 원자(元子)였을 당시 관례(冠禮)의 주인을 맡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