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여우(汝偶), 호는 율촌(栗村). 조언박(曺彦搏)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몽정(曺夢禎)이고, 아버지는 참판 조탁(曺倬)이며, 어머니는 박난영(朴蘭榮)의 딸이다.
1591년(선조 24) 사마시에 합격하고, 1605년 별제(別提)로서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검열·정언으로부터 벼슬을 시작하여 1606년 설서를 거쳐 사서·예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1608년 선조가 죽자 정인홍(鄭仁弘)·이이첨(李爾瞻) 등의 탄핵을 받아 경상도도사로 좌천되었다가 다시 정인홍 등의 탄핵으로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갔다. 1610년(광해군 2) 경기도사가 되고, 그 뒤 수년간 수찬·교리·지평·장령·헌납 등 언관(言官)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취임하지 않았다.
1613년 수찬이 되어 정조(鄭造)·윤인(尹訒) 등의 폐모론 주장을 극간하여 중지시키고 남양부사·영천군수 등을 지냈다. 인조반정 이후 여러 외직을 역임하다가 1636년(인조 14) 이천부사가 되었을 때 병자호란을 당해서 왕을 남한산성으로 호종하다가 과로로 죽었다. 뒤에 좌의정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