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3년(숙종 8) 서장관으로서 사신을 수행하고 고려에 온 손목(孫穆)이 당시 고려의 조제(朝制) · 토풍(土風) · 구선(口宣) · 각석(刻石) 등과 함께 고려어 약 360어휘를 채록하여 3권으로 분류, 편찬한 책이다.
『계림유사』 자체에는 편찬연대가 송(宋)나라로만 밝혀져 있으나, 서긍(徐兢)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조공무(晁公武)의 『군재독서지(軍齋讀書志)』, 왕응린(王應麟)의 『옥해(玉海)』, 탈탈(脫脫)의 『송사(宋史)』, 정인지(鄭麟趾)의 『고려사』 등 여러 기록에 의한 고증으로써 손목이 1103년 사신 유규(劉逵)와 오식(吳拭)을 수행하여 고려에 다녀간 뒤 편찬된 것임이 밝혀졌다.
송대의 『중흥관각서목(中興館閣書目)』과 『수초당서목(遂初堂書目)』에 의하면 『계림유사』 단행본이 전래되다가 1366년(元代至定 26) 이전에 도종의(陶宗儀)의 『설부(說郛)』에 일부가 절록(節錄: 알맞게 줄여 적음)된 뒤 소실되었다.
현재 『계림유사』는 원래의 단행본은 전하지 않고 절록본으로서 전해지고 있는데, 『설부(說郛)』 외에도 중국의 총서인 『오조소설(五朝小說)』 · 『오조소설대관(五朝小說大觀)』 ·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과 우리나라 정조 때 한치윤(韓致奫)이 지은 『해동역사(海東繹史)』 등에 실려 전한다.
지금까지 발견된 『계림유사』의 이본은 약 20종이 된다. 그 중 가장 오래된 고본으로는 홍콩대학 핑핑산도서관(馮平山圖書館)에 있는 명대(明代) 가정연간(嘉靖年間) 설부본(說郛本)과 대만국립중앙도서관(臺灣國立中央圖書館)에 소장되어 있는 설부본을 들 수 있다.
현전하는 『계림유사』의 체재는 각 판본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 명대 필사본을 중심으로 체재를 종합하여 보면, 표제부분은 ‘鷄林類事三卷宋孫穆奉使高麗國信書狀官(계림유사삼권송손목봉사고려국신서장관)’으로 되어 있고, 기사부분은 각 판본에 따라 3분단, 4분단, 또는 9분단으로 나누어져 있으나 전문은 10여 조항으로 동일하다.
또한, 발췌되었기 때문인지 조제와 토풍의 내용이 구별되어 있지 않고 뒤섞여 있다. 역어 부분도 판본에 따라 어휘 배열 체재가 다르나 대부분 ‘방언’이라고 부제를 쓴 밑에 ‘천왈한날(天曰漢捺)’로부터 시작하여 ‘천왈이저(淺曰昵低)’로 마친다.
『계림유사』는 외국인(중국인)인 손목이 당시의 우리말 단어를 한자의 음이나 뜻을 빌려 적은 것인데, 당시 현실음에 가장 가까운 한자를 선택하되 중국어 단어와 의미상 통할 수 있는 한자를 선택한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중국의 한자음만으로는 해독할 수 없는 자료들이 있다는 점은 당시 고려에서 사용하던 차자표기법 역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 예를 살펴보면, ‘천왈한날(天曰漢捺)’에서 ‘천(天)’은 의미를 나타내며 ‘한날(漢捺)’은 발음에 해당하여 ‘천(天)은 한날(漢捺)이라 한다’로 읽을 수 있다. 즉, ‘왈(曰)’자를 중심으로 앞의 글자는 어휘의 뜻을 나타내는 중국한자어이고 뒤에 나오는 글자는 당시 우리나라의 발음을 소리가 유사한 한자를 빌려 적은 것이다. 이때 주의할 것은 ‘한날(漢捺)’은 현대의 한자음이 아닌 북송시대 한자음을 이용하여 적은 것이므로 계림유사를 정확하게 해독하기 위해서는 성운학에 대한 이해까지 필요하다 할 수 있다.
수록된 어휘를 분류하여 보면 천문 · 지리 · 시령(時令) · 화목(花木) · 조수(鳥獸) · 충어(蟲魚) · 기용(器用) · 인물 · 인사(人事) · 신체 · 의복 · 안색(顔色) · 진보(珍寶) · 음식 · 문사(文史) · 수목(數目) · 방우(方隅), 기타 등 18항목으로 나누어지며 총 어휘 수는 361개이다.
전체의 배열은 312항까지는 주로 체언류를 채록하고 간혹 체언과 관계되는 용언류가 삽입되어 있으나 313항부터는 완전히 용언류와 짧은 구(句)로만 채록되었다. 『계림유사』에 실린 고려어의 지역성은 손목이 고려에 와서 체류한 곳이 당시 도성인 개경(開京)이라는 점과 어휘의 방언적인 요소를 고찰하여 볼 때, 개성을 중심으로 한 중부방언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손목이 고려어를 한자음으로 표기한 차음표기법상의 특징은 일반적으로 ‘발왈마제핵시(髮曰麻帝核試)’ · ‘면미왈날시조훈(面美曰捺翅朝勳)’ · ’세수왈손시사(洗手曰遜時蛇)’ 등과 같이 표의성이 없는 직음법대음(直音法對音)의 표기법을 쓰면서도 ‘산왈취립(傘曰聚笠)’ · ‘소왈비음필(梳曰苾音必)’ · ‘염왈박음발(簾曰箔音發)’ 등과 같은 음의쌍관표기법(音義雙關表記法)을 쓴 점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연음변독현상(連音變讀現象)의 표기법을 철저히 지키고 있는 점이다. 예를 들면, ‘천왈한날(天曰漢捺)’ · ’풍왈발람(風曰孛纜)’ · ’장왈밀조(醬曰密祖)’ 등과 같이 제1음절에 종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종성이 있는 한자를 대음한 것은 제2음절의 초성이 연음되는 현상을 구별하지 못한 데 기인한다. 이 역시 『계림유사』에 실린 고려어를 올바로 해독하려면 송나라의 개봉음(開封音)을 중심으로 성운학(聲韻學)을 깊이 연구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해준다고 할 수 있다.
현전하는 『계림유사』는 중심을 이루고 있어 사학적인 자료라기보다는 오히려 국어학적인 연구자료로서 지대한 가치를 지닌다. 또한,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전에 간행된 책으로 당시 고려어 재구(再構)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고려의 단어와 어구들을 통해 당시의 언어의 어휘적 · 음운적 · 문법적 특징을 살펴볼 수 있고, 한글 표기에는 잘 나오지 않고 다른 차자표기 자료에서 나타나는 형태들도 있어 이두나 구결연구에도 도움이 된다.
더욱이 이 책은 중세국어 형성기를 대표하는 현존 유일의 구어자료(口語資料)로서 그 중요한 가치성이 재인식되어야 한다. 또한, 중국에 있어서도 북송시대 한자음을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