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4년(숙종 30) 지방유림의 공의로 김지대(金之岱)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군 청도면에 남계서원(南溪書院)을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사우(祠宇)의 명칭을 충효사(忠孝祠)라 하고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위폐는 뒷산에 묻고 설단(設壇)하여 향사를 지내왔으며, 1907년 후손들이 강당인 쌍수당(雙修堂)을 중건하였다.
그 뒤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무장향교(茂長鄕校) 관내 유생들이 발의하여 1981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복원하고, 명칭을 계산서원으로 정하였으며 김응룡(金應龍) · 김몽룡(金夢龍) · 김희방(金希邦)을 추가 배향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 4칸의 강당, 4칸의 유생실, 신문(神門) · 외삼문(外三門) · 고직사(庫直舍) 등이 있다. 사우에는 김지대를 주벽(主壁)으로 하여 좌우에 김응룡 · 김몽룡 · 김희방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강당은 원내의 여러 행사와 학문의 강론장소로 사용되며, 유생실은 수학하는 유생들이 거처하는 곳으로 사용된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3월과 8월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4변(籩) 4두(豆)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