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필사본. 사찬읍지(私撰邑誌)이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편찬 동기와 과정을 기록한 서문에서 이 책의 편찬은 옛 지지를 바탕으로 하고 김택영(金澤榮)의 『한략사(韓略史)』, 정약용(丁若鏞)의 『강역고(疆域考)』, 정구(鄭逑)의 『함주지(咸州誌)』 등을 참고하였음을 말하고 있다. 내용은 상·하 두 편으로 이루어져 있고, 책의 끝부분에 이웅렬(李熊烈)이 쓴 서고령지후(書高靈誌後)가 붙어 있다.
연혁(沿革)·산수(山水)·성씨(姓氏)·토산(土産)·토속(土俗)·공해(公廨)·정무(政務)·고적(故蹟)·인물(人物)조 등이 매우 상세하다. 특히, 풍기(風氣)·성질(性質)·지상(志尙)·속습(俗習)으로 구분 기록한 토속조와 호구(戶口)·결복(結卜)·세납(稅納)·군액(軍額)·병비(兵備)·진공(進貢)으로 분류하여 갑오경장 이후 변혁된 실정을 기록한 정무(政務)조 및 문관(文官)·무관(武官)·생진(生進)·음사(蔭仕)·유일(遺逸)·학생(學生)·문망(文望)·유석(儒碩)·충절(忠節)·효행(孝行)·열행(烈行)·수재(守宰) 등으로 세분된 인물에 관계된 항목은 이전의 일반적인 관찬읍지와는 다른 점이 많다.
연혁조도 임나국(任那國)으로부터 출발하여 대가야·신라·고려·조선을 거쳐 1895년 지방제도를 개편한 이후까지 고령의 역사를 편년체로 상세히 기록하여 주목된다. 고사에는 전해오는 유명인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수 수록하였다.
향음규칙(鄕飮規則)으로부터, 1909년 군인사(郡人士)들이 동서양의 제도를 연구, 참조하여 민의회(民議會)를 설립하고 지방 자치를 도모하였으나, 끝내 외인(外人)들의 위협으로 파산되어버렸다는 민의회의 기록까지 기재되어 있어, 과거로부터 당시까지 지방 사회 구조의 단면을 알려주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