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군 ()

대동여지도 중 강원도 고성 부분
대동여지도 중 강원도 고성 부분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강원특별자치도 최북동부에 위치한 군.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강원특별자치도 최북동부에 위치한 군.
개관

고성군은 강원특별자치도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북으로 세계적인 명산인 금강산을 경계로 통천군(通川郡)과 접하고, 동쪽은 동해(東海), 서쪽은 향로봉을 경계로 하여 인제군(麟蹄郡)에 접하였으며 남으로는 속초시 장사동(章沙洞)을 경계로 하고 있다. 동경 128˚ 35'로 부터 동경 128˚ 13'까지 동서간 32.17㎞이며, 북위 38˚ 11'로부터 38˚ 36'까지 남북간 48.13㎞ 사이에 위치한다. 면적은 661.09㎢이고, 인구는 3만 60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은 2읍, 4면, 행정리 128개(88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간성읍 하리에 있다.

자연환경

남북방향으로 뻗은 태백산맥의 한 줄기인 해안산맥이 동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에, 대체로 동쪽은 높은 산지가 많고 서쪽은 낮은 산록완사면이 발달해 있다. 태백산맥의 동쪽인 영동지방은 단조로운 모래해안선과 좁은 해안평야가 발달해 있으나 해안평야를 따라 남북으로 발달한 교통로, 소규모의 항구와 어항, 모래해안을 이용한 관광지 개발 등으로 군민의 대부분이 이 지역에 집중해서 분포하고 있다.

영서지방은 높은 산지와 구릉, 침식분지가 발달하였다. 남북방향으로 뻗은 태백산맥에는 이름 있는 산과 고개가 발달해 있다. 금강산(1,638m) · 향로봉(1,296m) · 고성산(1,267m) · 진부령(529m) 등이 있다.

북부에는 남강과 신계천이 금강산에서 발원해 고성읍 서쪽에서 합류한 뒤 동해로 흘러 들어가며, 남부에는 진부령 부근에서 발원한 남천과 북천이 각각 간성읍을 지나 동해로 흐르는데, 이 하천들의 하류에는 비교적 넓은 충적지가 발달해 있다.

진부령은 이 지역의 영서 · 영동 지방을 잇는 유일한 교통의 요충지 구실을 한다. 겨울철 북서계절풍을 막아 주는 태백산맥과 따뜻한 난류가 흐르는 동해의 영향으로 영동지방의 동해안지역은 영서지방보다 비교적 따뜻한 편이다. 여름철에도 영서지방의 내륙산간 분지지역은 매우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는 경우가 많지만, 영동지방은 바다의 영향으로 영서지방보다는 서늘한 편이다.

그러나 4∼7월에는 저온현상이 자주 일어나 못자리의 볍씨 생육을 저해하거나 밭작물의 생육을 억제하며, 때때로 어황도 저조해 어민들에게 타격을 준다. 또한 태백산맥을 사이에 두고 나타나는 높새바람 때문에 같은 계절인데도 영서지방이 무더우면 영동지방이 서늘하고, 영동지방이 추우면 영서지방이 따뜻하다.

바다에 인접해 있는 동해안에는 3∼5월에 해풍이 심하게 분다. 이 바람은 이 지역의 기온을 떨어뜨려 농작물 파종에 큰 영향을 준다. 또 여름철에 태풍이 지날 때에는, 규모가 큰 항구나 포구가 적고 방파제 시설이 미비해 선박이나 해안 시설물이 큰 피해를 입는다. 겨울과 이른봄에는 오호츠크해기단의 영향으로 많은 눈이 내린다.

고성지방 기후는 태백산맥과 동해안 바다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태백산맥과 동해바다의 영향으로 영서지방과는 서로 다른 기후를 보인다. 겨울철이면 연일 혹한이 계속되는 영서지방과는 달리 영동지방에 속하여 있는 고성지방은 겨울철에도 영서지방보다는 비교적 따뜻한 편이다. 여름철에도 영서지방에서는 폭염이 계속 되지만 고성지방은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영서지방 보다는 서늘한 편으로 여름 피서객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연중 평균기온 최고는 37.1℃, 최저 -15.6℃이다. 2004년 연평균 강수량은 1,587㎜이다. 2003년의 경우 1,897㎜로 최대의 기록이다.

역사

석기시대의 유물 · 유적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현내면 초도리와 죽정리, 거진읍 거진리 · 봉평리 · 화포리, 간성읍 신안리 등지에서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및 고인돌 등이 발견되었고, 인근의 양양이나 강릉지역에서 신석기시대 유적지가 적지 않게 발견되고 있어, 석기시대 유물 · 유적의 발견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삼국시대 이전에는 강릉과 함께 예국(濊國 : 삼한시대의 부족국가)의 영토였다. 그 뒤 고구려 세력이 왕성해지면서 고구려 영토로 편입되어 두 지역으로 나누어졌다. 지금은 북한에 있는 고성읍과 장전읍 · 외금강면 · 서면과 현내면 일부지역은 달홀, 그리고 현재의 고성군 대부분의 지역은 수성군(䢘城郡)으로 불렸다.

달홀은 568년(진흥왕 29)에 주로 승격되었다가 경덕왕 때 고성군으로 개칭되었고, 수성군도 수성군(守城郡)으로 개칭되어 고려로 이어졌다. 이곳의 삼일포는 이중환(李重煥)이 『택리지』에서 산수승지(山水勝地)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은 명승이다.

995년(성종 14)에 지방을 10도로 나누었을 때 삭방도(朔方道)에 편입되었다가, 현종 때 5도양계로 개편되면서 동계(東界)에 소속된 고성군과 수성군은 각각 고성현과 간성현(杆城縣)으로 바뀌었다.

간성현은 그 뒤 군으로 승격되어 고성현을 겸무하다가 1389년(공양왕 1)에 다시 둘로 나누어져 조선으로 이어졌는데, 고려 말에 학교제도가 정비되면서 이곳에도 이용계(李龍溪)가 간성향교를 세웠다.

간성군과 고성현으로 나누어져 조선으로 넘어온 현재의 고성군은 세종 때 고성현이 군으로 승격되어 간성 · 고성의 두 군이 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당시 간성군의 호수는 227호, 인구는 871명이었다. 현재 거진읍 냉천리에 건봉사지(乾鳳寺址)가 있는데, 이곳은 임진왜란 때 승병의 기지였다.

그 뒤 1604년(선조 37)에 고성군은 북관(北關: 함경남북도 지방의 별칭)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당상무관이 군수로 파견되다가 1623년(인조 1)에 복구되었고, 1629년고성군에서 노비가 주인을 살해한 일이 생겨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638년에 회복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전국이 23개 부로 나누어지자 간성 · 고성군은 강릉부 관할의 9개 군 속으로 들어갔다가, 이듬해 다시 전국이 13도로 편제되면서 강원도 관할로 바뀌었다. 전국 부 · 군 · 면 통폐합 조처에 따라 고성군은 간성군에 흡수되고, 간성군은 간성 · 오대 · 죽왕 · 고성 · 신북 · 서 · 수동 · 토성 · 현내의 9개 면 124개 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3 · 1운동 당시 간성군에도 독립선언서가 배포되고 장날을 이용한 시위가 계획되었으나, 이 일이 사전에 누설되어 일제가 시장을 폐쇄함으로써 실패하고 말았다. 1919년 5월 15일죽왕 · 토성면이 양양군으로 편입되고 군의 명칭이 고성군으로 바뀌었으며, 1935년오대면이 거진면으로 개칭되었다.

1945년 광복 당시 고성군은 고성읍 · 장전읍과 거진면 · 수동면 · 외금강면 · 서면 · 현내면 · 간성면 등 2읍 6면을 관할했는데, 38선 이북이었기 때문에 북한지역이 되었다가 휴전협정이 조인된 뒤 1954년 10월 21일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이 실시되어 간성면 · 거진면 · 현내면 · 수동면의 4개 면이 편입되었다.

1963년 1월 1일 양양군에 편입되었던 토성면 · 죽왕면이 다시 편입되어 6개 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그러나 수동면은 휴전선이 통과하기 때문에 민간인의 거주가 금지되어 실제로는 5개 면만을 관장하였다. 1964년 12월 28일 간성면 흘리출장소가 설치되었으며, 1973년 7월 1일 거진면이 읍으로 승격됨과 동시에 토성면의 사진리와 장천리가 속초시로 편입되고, 1979년 5월 1일 간성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유물 · 유적

지정문화재(현, 지정유산)로는 국가 지정이 7건으로 보물 2건, 사적 1건, 천연기념물 2건, 중요민속문화재 2건이고, 강원도 지정문화재로는 유형문화재 1건, 무형문화재 1건, 기념물 2건, 문화재자료 5건이고 기타 등록문화재 1건이 있다.

선사시대 유적으로는 거진읍 화포리와 현내면 죽정리 등에 10여 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으며, 특히 고성지역은 탁자식고인돌의 동해안 쪽 남방한계선으로 알려져 있다. 또 간성읍 신안리, 거진읍 거진리 · 화포리, 현내면 송현리 · 죽정리 · 초도리 등에서는 돌도끼 · 민무늬토기 · 가락바퀴 · 반달돌칼 등 청동기시대의 유물이 수습되었으며, 현내면 명파리와 죽정리에서는 신라 고분 6기가 확인되었다.

고려 때 축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현내면의 산학리성터(일명 고성산성)와 간성읍 신안리의 간성지(杆城址)가 일부 남아 있다.

불교유적으로는 거진읍 냉천리에 고성 건봉사지와 건봉사 불이문, 토성면 신평리에 고성 화암사가 있다. 고성 건봉사지는 1982년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건봉사 불이문은 1984년 강원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으며, 고성 화암사는 1990년 강원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유교 유산으로는 간성읍 교동리에 간성향교(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04호)가 있다.

건축물로는 토성면 청간리에 청간정(강원도 유형문화재, 1971년 지정), 교암리에 천학정 등의 정자가 있으며, 고가로는 죽왕면 삼포리에 고성어명기고택(중요민속문화재, 1984년 지정)이 있다.

군청 은행나무, 토성면 백촌리의 팽도나무, 천진리의 매자나무 등의 보호수가 있다.

기념탑으로는 간성읍 상리 와우산 기슭에는 6 · 25전쟁 때 공산치하에서 희생된 46명의 넋을 위로하는 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교육 · 문화

조선시대 최초의 교육기관은 1420년(세종 2)에 창건한 간성향교이다. 간성읍 교동리에 있는 이 향교는 6 · 25전쟁 때 완전히 소실되었다가 공산치하에서 수복된 뒤 지방 유지들에 의해 재건되었다. 현재 유림수는 500여 명에 달하는데, 이는 수백 년 동안 군의 유일한 교육기관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주민들로부터 큰 애착을 받아 왔기 때문이다.

또한 숙종 때 서원의 기능을 한 향사우(鄕祠宇)를 건립해, 지방 자제에게 성현의 덕행과 유교적 경륜을 가르쳤다는 문헌상의 기록이 있다. 6 · 25전쟁 전에는 공산치하에 있었으며, 주민의 이동이 심한 지역적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각급 학교가 골고루 설립되어 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4개교, 중학교 4개교, 고등학교 4개교와 경동대학교가 있다.

기타 문화 시설로는 공공도서관 1개, 일반공연장 1개, 군민회관 1개, 복지회관 4개, 고성문화원 등이 있다. 체육시설로는 실내체육관 1개, 종합경기장 2개, 테니스장 10개, 사격장 1개 등이 있다.

1984년에 개장한 현내면 명호리의 통일전망대는 이 지역 청소년과 일반 주민은 물론, 내외국의 관광객에게 반공의식을 고취하는 최적의 교육도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군민의 날에는 수성문화제가 열린다.

민속

죽왕면 삼포리에 전해오는 지경다지기놀이가 있다. 본래 이 일대에는 호수가 많았던 탓으로 땅이 물러 집터를 단단히 다져야 했으므로, 자연히 지경다지기에 각별한 신경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놀이는 저녁을 먹은 뒤 밤에 횃불을 켜 들고 시작한다.

놀이방법은 집사의 주도에 따라 먼저 터주에게 제사를 지낸 다음, 소리잡이의 선창으로 지경잡이의 힘과 흥을 북돋우는 농악과 함께 진행된다. 징소리와 선창자의 노랫가락에 맞추어 줄을 당겼다 놓으면 돌이 떨어지면서 땅이 다져지는 것이다.

이 밖에 아이들이 하는 놀이로 반지놀이가 있는데, 더러는 부녀자들도 한다. 5, 6명이 둘러앉아 술래를 정하고, 술래는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인다. 남은 사람들은 원형으로 둘러앉아 반지를 돌리면서 “반지 반지 누가 가졌나 속히 찾아내어라.” 하면 술래가 고개를 들고 반지를 가지고 있을 법한 사람을 가리켜서 맞으면 그 사람이 술래가 되고 정한 대로 노래와 춤을 추는 놀이인데, 맞추지 못하면 맞출 때까지 술래가 된다.

이 지방의 동제에 대해서는 『동국세시기』에 “고성의 풍속에 매월 삭망에 관청에서 군사당(郡祠堂)에 나가 제사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비단으로 신의 가면을 만들어 당에 두었다가 섣달 스무날 이후부터는 신이 고을 사람에게 내린다고 해, 그 가면을 쓰고 아내(衙內)와 읍촌을 돌면서 춤을 춘다. 집집마다 이를 맞이해 즐기다가 정월보름 전에 당 안에 다시 보관하기를 해마다 되풀이한다.”라고 했으나 지금은 하지 않는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동제로는 서낭제가 있다. 토성면 봉포리의 뒷산 정상에 할아버지 서낭당이 있고 마을 옆 언덕에 할머니 서낭당이 있는데, 본래 바닷가에 있던 것을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것이다.

서낭제는 매년 음력 10월 초하루에 지낸다. 예전에는 3년마다 한 번씩 서낭당에서 단오굿을 했으나, 지금은 단오굿 대신 물을 떠놓고 고축(告祝 : 천지 신명에게 고하여 아뢰는 것)만 한다. 아야진리에는 큰 마을, 작은 마을에 모두 서낭당이 있어서 3년마다 한 번씩 서낭굿을 벌이고, 서낭굿이 없는 해에는 10월 초순에 길일을 택해 유교식 제사만 지낸다.

그 밖에 향로봉서낭제와 간성읍 교동리, 현내면 죽정리, 거진읍 송정리, 토성면 아야진리, 죽왕면 백촌리 · 교암리 · 오봉리 서낭제가 있다. 영검이 있다고 알려진 기우제 장소는 화진포 앞의 금구도(金龜島), 송지호 앞의 죽도(竹島), 죽왕면의 오음산(五音山) 등이다.

설화 · 민요

이 고장에 전해지는 대표적인 설화로는 「삼정사지오목전설(三井四池五木傳說)」 · 「천하정전설(天下井傳說)」 · 「고성산전설」 · 「사자바위전설」 · 「화암사와 수바위」 · 「빈대와 적곡사지」 등이 있다.

「삼정사지오목전설」은 고려 때 이 지방의 어느 원님이 세 곳에 우물을 파고, 네 곳에 연못을 만들고, 5종류의 나무를 심으면 관운이 좋아 관직에 오래 머물 수 있고 또 장수도 한다는 말을 듣고, 곧 간성고을에 우물 3개와 못 4개를 파고 은행나무 등 5가지 나무를 심었다는 내용이다.

「천하정전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간성읍 금수리 뒷산에 깊이를 알 수 없는 큰 우물이 있는데, 옛날에 이 곳 땅 속에서 용마가 솟아나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이 용마는 강릉최씨(江陵崔氏) 문중에서 장사가 나는데 그 장사를 업고 가기 위해 나왔다고 한다. 당시 마을사람들이 온 동네 명주실을 모두 모아 용마가 나온 구멍에 넣었는데 실이 끝에 닿지 않았다고 한다.

「고성산전설」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노인산 옆에 산학산(山鶴山)이 있는데, 임진왜란 때 왜적이 쳐들어와 조선의 혈맥을 끊기 위해 이 산 산정에 있는 50평 가량의 바위를 쇠꼬챙이로 파고, 황소를 잡아 그 속에 묻었다.

10여 일 지난 뒤 마을사람들이 올라가 보니 그런 흔적은 보이지 않고, 다만 황소 피가 말라 이끼가 되어 바위에 돋아 있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발을 구르면 사방에서 쿵쿵 소리가 난다고 해서 고성산(高聲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사자바위전설」은 다음과 같다. 옛날에 용연에 용 한 마리가 살고 그 근처에 사자 한 마리가 살았는데,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사자는 사자대로 산중왕이라 하고, 용은 용대로 수중왕이라 하며 으르렁거렸다. 그들은 오랜 반목 끝에 마침내 실력대결로 승부를 가리게 되었다.

혈투 끝에 사자는 용에게 두 다리를 잘리고, 나머지 두 다리로 버티고 서서 용에게 일격을 가하려 했으나 법기보살(法起菩薩)의 화해로 싸움은 중지되고, 사자는 얼마 되지 않아 죽었다. 지금 금강산 용연 옆에 있는 사자바위는 그 사자가 변한 것인데, 뒷다리가 없다고 한다.「화암사와 수바위」전설은 화암사 남쪽 300m지점에는 수바위라는 왕관모양의 우람한 바위와 관련 있다. 이 바위에서 화암사 창건자인 진표율사를 비롯한 이절의 역대스님들이 수도장으로 사용하여 왔다.

계란모양의 바탕위에 왕관모양의 또 다른 바위가 놓여 있는데 윗면에는 길이 1m, 둘레 5m의 웅덩이가 있다. 이 웅덩이에는 물이 항상 고여 있어 가뭄을 당하면 웅덩이 물을 떠서 주위에 뿌리고 기우제를 올리면 비가 왔다고 전한다.

화암사는 민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스님들은 항상 시주를 구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절 두 스님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수바위에 조그만 구멍이 있으니 그 곳을 찾아 끼니때마다 지팡이로 세 번 흔들라고 말하였다. 잠에서 깬 스님들은 아침 일찍 수바위로 달려가 꿈을 생각하며 노인이 시킨 대로 했더니 두 사람분의 쌀이 쏟아져 나왔다. 그 후 두 스님은 식량 걱정없이 편안히 불도에 열중하며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몇 년이 지난 어느날 객승 한사람이 찾아와 이절 스님들은 시주를 받지 않고도 수바위에서 나오는 쌀로 걱정없이 지냈다는 사실을 알고 객승은 세 번 흔들어서 두 사람분의 쌀이 나온다면 여섯 번 흔들면 네 사람분의 쌀이 나올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다음날 날이 밝기를 기다려 아침 일찍 수바위로 달려가 지팡이를 넣고 여섯 번을 흔들었다. 그러나 쌀이 나아야 할 구멍에서는 엉뚱하게도 피가 나오는 것이었다. 객승의 욕심에 산신의 노여움을 샀던 것이다. 그 후부터는 수바위에서는 쌀이 나오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빈대와 적곡사지」이야기는 고성군 죽왕면 오봉2리에서 서북쪽으로 3㎞쯤 오르면 흩어진 기와조각만이 나뒹구는 적곡사의 절터와 관련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적곡사지는 고려 초 한 고승이 이곳을 지나다 온천을 발견하여 절을 세웠다 한다.

이곳에 절을 세우자 인근 부락인 탑동, 화정, 평촌, 적동 등에서 신도들이 찾아와 절이 점점 번창해 갈수록 절에서 승려들은 게을러지고 수도에 힘쓰기보다는 허영에 들떠 타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탁발승이 찾아와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탁발승에게 보여준 이절 승려들의 행실은 상상할 수 없을만큼 나태하고 타락한 것이었다. 탁발승은 생각 끝에 이들에게 훈계로는 문란해진 생활을 바로 잡을 수 없다고 판단한 후 "앞으로 3년 동안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방탕한 생활을 하면 부처님의 노여움을 크게 사리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절을 떠났다. 탁발승이 떠난 뒤부터 이절에는 전에 없던 빈대가 득실거리기 시작하여 승려들을 괴롭혀 앉아있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게 되었다.

견디다 못한 승려들은 잠자리를 마당이나 숲속으로 옮겼으나 빈대는 여전히 괴롭혔다.

참다못한 승려들은 마침내 회의를 열었다. “이러한 상태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으니 3년 동안 떠나 생활하기로 합시다. 그러면 빈대들도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게 될 것이니 그때 다시 모입시다.” 하고 한 노승이 제의했다. 그러자 다른 승려들도 모두 찬성하여 3년 후 추석날, 다시 모이기로 한 후 제각기 흩어졌다.

절을 떠나 이곳저곳을 떠도는 승려들의 생활이란 편할 리가 없었다. 살을 에이는 듯한 겨울바람을 맞으며 이집 저집 처마 밑에서 새우잠을 자기도 하고 찬 이슬을 맞으며 숲속에서 자기도 하며 떠돌아 다녔다.

그런데 중들은 속죄하기는 커녕 자기들이 왜 고생을 하는지 반성하지도 않고 빈대를 피할 수 있었던 것만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어느덧 3년이 지나자 중들은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중들은 마당에 모여 그동안의 고생을 이야기하면서 빈대가 없어진 절 주변을 돌아보며 서로 기뻐하였다.

중들은 법당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부처님 앞에 난데없이 금주(金柱)가 서 있었다. 중들은 자기들의 3년 동안 고생을 불쌍히 여겨 부처님이 하사하신 금기둥이라 믿고 기쁜 마음에 와락 끌어안았다. 그러나 그 순간 천둥과 함께 금기둥은 무너지고 기둥에 매달렸던 중들은 그 밑에 깔려 죽었다. 그 기둥은 금기둥이 아니고 빈대들이 3년 동안 부처님 앞에 응결되어 하나의 커다란 기둥을 이룬 빈대기둥이었던 것이다.

후일 사람들은 이절을 찾아 왔던 탁발승을 게으르고 타락한 중들을 구제하려 왔던 부처님의 현신이라 말하고 있다. 그 후 적곡사는 폐허가 됐고 따뜻한 물이 솟아오르던 온천도 서서히 찬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이 고장의 민요는 대체로 잡가의 양식을 많이 띠며, 노동요인 「지경다지기노래」는 놀이와 함께 불린다. 이 노래는 선후창으로 부르는데, 가사는 “산지조종은 곤륜산이요/수지조종은 황하수라/어얼싸싸 지경이야/금강산 낭맥이/뚝 떨어져서/어얼싸 지경이야/향로봉 주령이 되었구나……”이다.

또한 김을 맬 때 부르는 「미나리」는 강원도지방에서는 어디서나 부르는 곡으로 경상도지방의 「정자소리」와도 비슷하다. 그 밖에 어부들이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을 때, 그물에서 고기를 퍼 배에 실으면서 고기푸는소리를 하는데, 이 소리는 대개 「가랫소리」를 사용한다. 「가랫소리」는 논두렁을 만들거나 무덤에 흙을 덮으면서, 또는 흙을 푸면서도 하는데, 우리 나라 전국에 고루 퍼져 있는 소리이다.

부요(婦謠)로는 「시집살이노래」 · 「나물캐는노래」가 있는데, 「나물캐는노래」의 가사는 “천우치 참나물/씨러진골로 우리나/친구들아 나물가세/오림이냐 내림이냐/잰지침소리 물맑은/이터이 경치가 있네.”이다. 이러한 노래들의 선율은 대개 ‘메나리토리’로 되어 있다.

산업 · 교통

주요 산업은 농업 · 어업 및 각종 서비스업이며, 제2차산업인 공업은 발달이 극히 빈약하다. 산업별 부가가치 구성을 보면 농림 어업 부문과 사회간접자본 및 기타 서비스업 비중이 높다.

영서 · 영동 지방의 산록완사면과 고위평탄면 일부지역에서 밭농사가 이루어지는데, 여름철 고랭지채소인 무 · 배추의 재배가 대부분이고 옥수수 · 감자와 한약재로 쓰이는 각종 약용작물 같은 특용작물을 재배한다. 영동지방의 좁고 긴 해안평야나 영서 · 영동지방의 하천유역과 침식분지 저지대에서는 일찍 수확할 수 있는 조생종 벼가 재배된다.

그 밖의 특용작물로는 참깨 · 들깨가 많이 생산되고 인삼재배가 시작되고 있다. 밀 · 보리의 재배면적은 급격한 감소를 보이고 있으나, 축산농가에서 사료용으로 재배하는 곳이 아직도 많다. 콩 · 조 · 수수 · 메밀 · 기장 등도 재배되고 있다. 그러나 서류 중에서 감자의 재배면적은 안정상태에 있으나 고구마의 재배면적은 감소하고 있다. 잡곡류의 옥수수 재배면적은 감소했으나 품종개량으로 생산량은 크게 증가하고 있다.

2015년 현재 총경지면적은 56.27㎢로 논 38.45㎢, 밭 17.82㎢이다.주요 농산물은 쌀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조 · 수수 · 옥수수 · 메밀 등의 잡곡과 콩 · 팥 · 녹두 · 완두 등의 두류도 생산된다. 그 외에 감자 · 고구마 등의 서류도 생산된다.

2015년 현재 소유별 임야면적은 총 549.36㎢이고, 주요 임산물은 버섯, 약용, 산나물, 토석류, 나무 연료 등이다.

동해안에서 잡히는 해산물로는 어류 · 갑각류 · 연체동물 · 해조류 등이 있으며, 연 249억 7,566만 원의 어획고를 나타내고 있는데, 이 중 어류가 58.17%, 연체동물 32.40%, 갑각류 4.68%, 해조류 0.13%, 기타 4.62%이다. 어획량은 어류가 63.94%, 연체동물 30.3%, 갑각류 2.86%, 해조류 0.26%, 기타 2.57%이다. 이와 같은 어획고는 14개 어항과 6개의 위판장시설, 5개의 급유시설, 1개의 냉장시설이 갖추어짐으로써 가능하게 되었다.

죽장면 향목리에는 향목리농공단지가 있다. 이 농공단지는 1987년 7월 1일에 지정되었으며, 3만 4,049㎡의 조성 면적에 4개의 중소기업이 입주해 생산하는 원료로 벽돌 · 레미콘 · 수산물가공 · 화장지 · 그물 · 세면기 · 욕조 등을 생산한다.

시장은 5일장으로 간성 · 거진 · 대진 · 송암 · 교암장이 있었으나 인구의 감소로 폐쇄되고, 지금은 간성읍 간성장이 2일 · 7일, 거진읍 거진장이 1일 · 6일, 현내면 대진장이 5일 · 10일에 열리며 주요 거래품목은 쌀 · 수산물이다.

교통은 남한 최북동쪽의 고성군과 영서지방 및 수도권을 이어 주는 관문은 진부령이다. 진부령 도로는 간성에서 인천까지 연결되는 동서 연결도로로서 동해안의 해산물과 특산물, 고랭지채소 등의 농 · 수산물을 운송하는 산업도로 구실을 할 뿐만 아니라, 간성읍 흘리지구의 개발과 알프스스키장 같은 지역개발을 촉진할 수 있도록 한 중요한 교통로이다.

그 외에 고성∼부산을 잇는 7번 국도와 미시령과 연결되는 지방도로, 거진∼자산, 신평∼천진, 인흥∼용촌, 송암∼문암을 연결하는 4개의 군도가 있다. 고성과 북한 금강산을 연결하는 도로와 철도가 개설되어 있으나 현재 금강산관광로로 도로만 활용되고 있다.

관광

이 지방은 전통적인 산천유람의 관광에서 시작해, 신라 때는 화랑도들의 국토순례지였고 고려시대까지는 승려들의 순례지였다. 또 조선시대에는 선비들의 명승 유람지이기도 했으며, 근래에는 학생들의 수학여행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동해안에는 현내면과 거진읍에 걸쳐 있는 화진포해수욕장과 죽왕면의 송지호해수욕장 · 삼포해수욕장 등 많은 해수욕장이 있으며, 관동팔경의 하나인 청간정과 천학정에는 여름이면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화진포해수욕장에는 지상 3층 236평 규모의 화진포해양박물관이 있는데 어 · 패류 1,500점 등 4만여 점이 전시되어 있고, 해양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특히 국립공원인 설악산이 가까이 있어 산과 바다를 함께 즐기려는 피서객들이 많다. 한편, 진부령에는 천연의 조건을 갖춘 알프스스키장이 있어 설경과 겨울 스포츠를 즐기려는 사람이 많아 호텔과 산장 등의 숙박시설이 잘 되어 있다. 마산봉 기슭에 위치한 알프스스키장은 원래 북한의 삼방스키장과 함께 일제강점기 때 생긴 우리나라 최초의 스키장이다. 스키장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71년이며, 1972년부터 1978년까지 진부령스키장으로 전국동계체전은 물론 각종 전국규모의 국내 스키대회 유치로 우리나라 스키장의 대명사였다. 해발 1,052m 진부령 기슭의 알프스스키장은 슬로프를 달리면서 설악산은 물론 멀리 금강산의 절경도 감상할 수 있는 천혜의 고도에 자리 잡고 있다. 여름에는 고원지대에 펼쳐진 넓은 잔디밭에서 골프, 잔디스키 등 레포츠도 즐길 수 있다.

안보관광지로 현내면 명파리에 통일전망대가 있고, 역사관광지로는 거진읍 냉천리에 건봉사, 죽왕면 오봉리의 민속촌인 왕곡마을에 전통가옥 21동이 있다. 그리고 토성면 인흥리일대의 50여 만 평은 세계잼버리대회를 개최했던 곳으로 청소년들의 심신수련을 목적으로 한 사계절 청소년수련장이다.

고성 8경(화진포, 건봉사, 청간정, 통일전망대, 송지호, 마산봉 설경, 울산바위, 천학정)과 함께 8미(味)가 있다. 8미는 어부들이 밤새 술을 푼 속을 달래려고 새벽 출어를 나가기 전에 요기삼아 먹던 음식이다, 바다에서 갓 잡아올린 자연산 가자미, 오징어, 해삼 등에 각종 야채와 초고추장이 어우러져서 담백하고 신선한 맛을 느끼게 한다. 명태지리국은 고성군의 대표어종인 명태로 요리하여 비리지 않고 시원 담백하고 칼슘과 단백질이 풍부한 저지방 음식이다. 지리란 양념을 거의 하지 않고 마늘과 소금만으로 끓인 것을 말한다. 도치두루치기는 겨울철 별미중의 하나로 잘 익은 김장김치를 넣고 끓이면 얼큰하고 개운한데, 소주안주와 매운탕 거리로 먹으면 그만이다. 심퉁이라고 불리는 도치는 일반생선과는 달리 살이 연하고 뼈도 그냥 씹어 먹을 수 있다. 토종(흑)돼지고기는 지방이 적고 다른 영양소가 많아 담백하고, 고소하며 쫄깃쫄깃하다. 다른 육류에 비하여 단백질, 비타민B군이 많이 포함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인, 칼륨, 철분, 메치오닌 성분도 많다. 털게찜은 검푸른 동해바다에서 볼 수 있는 털게는 표면에 털이 보송보송 나 있으며 혀에서 느껴지는 하얀 속살의 담백한 맛은 먹어본 사람만이 알 정도로 맛있다. 밥 한술을 떠서 등껍데기에 넣고 내장과 함께 비벼먹는 맛도 일품이다. 고성막국수는 고성 특유의 동치미로 육수맛을 내서 개운한 고성막국수는 얼음이 둥둥 떠 있고 굵직한 무가 먹음직스러운 동치미를 떠서 국수에 부어 먹는데 그 맛이 담백하다. 구수하고 진한맛을 보고 싶다면 편육을 시켜 막국수와 함께 즐기면 된다. 도로묵찌게는 겨울철 별미로 알이 꽉 찬 도루묵찌개를 맛보다 보면 입안에서 살짝 터지는 알의 쫀득쫀득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도루묵알은 전자파 등에 좋다는 이유로 전량 일본으로 수출되기도 한다. 또한 도루묵은 비늘없는 생선이라 고단백이지만 아주 담백한 맛이 난다. 추어탕은 청정고성의 깨끗하고 힘이 넘치는 미꾸라지를 갈아 고추장에 끓인 추어탕은 예부터 전통보신식품으로 지친 몸을 추스리는 훌륭한 건강 보양 음식이다. 다른 동물성 식품에서는 보기 드문 비타민 A를 다량으로 함유하고 있다.

금강산 관광은 1998년 11월 18일 동해항에서 금강호의 시범운항을 시작되었다. 금강산 관광 중 해로관광이 중단되고 2003년 2월 14일 육로로만 금강산 관광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후 2008년 7월 11일 남한 관광객이 피격되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금강산 관광사업이 중단되었다.

문화축제로는 왕곡마을 체험 축제가 있다. 이 축제는 옛 것 그대로 시간이 멈춘 곳, 왕곡마을의 옛 추억을 찾아 문화정서와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 옛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행사로 매년 가을 고성왕곡마을 일대에서 개최된다. 행사로는 가옥공개, 마을내력, 전통방식체험, 깃대싸움, 마당놀이 민속공예 체험, 농사 및 가옥 체험, 풍년소고기 국밥장터, 왕곡농산물 전시, 송지호 자연 생태체험 등이 있다.

명태축제는 매년 명태의 주산지인 고성군 거진항 일대에서 개최된다. 명태는 고성의 주산품으로 한 때 전국 어획량의 70% 가량 차지하며 명태의 맛과 군어(郡魚)로서의 자부심을 알리고자 고성군내의 크고 작은 10여 개 항구를 돌아가며 매년 열리는 축제로 명태경매 재연, 명태요리경연대회 등 각종 이벤트행사 및 한마당잔치가 벌어진다. 이 밖에도 수성문화제, 해맞이 축제 등이 열린다.

읍 · 면
  1. 간성읍(杆城邑)

군의 중앙에 위치한 읍. 면적 180.19㎢, 인구 7,830명(2015년 현재)이다. 읍 소재지는 하리이다.

본래 간성군 읍내가 되므로 현내면(縣內面)이라 하다가 1895년 군내면(郡內面)이 되어 상리(上里) · 방축(防築) · 용연(龍淵) · 서문(西門) 등 1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해상면(海上面)의 탑현(塔峴) · 어룡(魚龍) · 오금천(五金川) 등 17개 리를 병합하였다.

1919년 간성군이 폐지되고 고성군으로 개칭할 때 간성면이라 해 고성군에 속하였다. 1945년 광복 후 38선 이북이어서 북한지역이 되었다가 1953년 휴전협정 후 수복된 지역으로 1954년 고성군에 편입되고, 1979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진부령 산록에서 시작되는 북천과 마산(1,052m)에서 시작되는 남천이 읍의 북동쪽을 가로질러 동해로 흐른다. 이 하천유역에는 넓은 평야가 발달해 주곡인 쌀의 생산이 군내에서는 가장 많다. 총경지면적 12.77㎢ 중 약 70%가 논이며, 주요 농산물인 쌀을 비롯해 조 · 수수 · 옥수수 · 메밀 · 콩 · 팥 · 녹두 · 고구마 · 감자 · 무 · 배추 · 양배추 · 오이 · 호박 · 고추 등의 소채류와 참깨 · 들깨 · 사과 · 배 · 복숭아 · 단감 등이 생산된다.

도로는 국도가 동해안을 따라 읍내를 지나 남북으로 연결되며, 그 외에 북천을 따라 진부령을 거쳐 영서지방과 연결된다. 홀리에 있는 진부령 알프스스키장은 일제 때부터 개발해 사용하던 북한의 삼방스키장과 함께 한국 최초의 스키장이다. 1984년도부터 15만 평의 국제 규모 스키장으로 개발해 전국 규모의 국내 스키 대회를 유치함으로써 스키 인구의 저변 확대와 체육진흥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국가유산으로는 간성향교, 전봉상(全鳳祥)효자각, 간성향교기적비, 고성산성, 향로봉지구 전투전적비 등이 있다.

하(下) · 신안(新安) · 동호(東湖) · 봉호(蓬壺) · 상(上) · 간촌(艮村) · 교동(校洞) · 해상(海上) · 광산(廣山) · 어천(魚川) · 장신(長新) · 탑동(塔洞) · 금수(金水) · 진부(陳富) · 홀(屹)과 주민미거주지역의 탑현(塔峴) · 선유실(仙遊室) 등 17개 리가 있다.

  1. 거진읍(巨津邑)

군의 중앙 동부에 위치한 읍. 면적 76.75㎢, 인구는 7,145명(2015년 현재)이다. 읍 소재지는 송포리이다.

본래 간성군 지역으로 오현면(梧峴面)이 되어 장항(獐項) · 영천(泠泉) · 거진(巨津) · 수리(水里) 등 18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대 · 죽지 · 송학 등 대대면의 9개 이를 합해 오대면이라 했으며, 1935년 소재지인 거진리의 이름을 따서 거진면으로 개칭하였다.

1945년 광복 후 38선 이북이어서 북한지역이 되었다가 1953년 휴정협정 후 수복된 지역으로 1954년고성군에 편입되고, 1973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북쪽과 남쪽에서 발원해 읍 중앙에서 만나 동해로 흐르는 현산천이 있고, 북동쪽 해안가에는 석호인 화진포가 있다.

현산천 유역과 동해안에는 넓은 평야가 발달해 벼농사의 중심지를 이루며, 농작물 재배 총면적 9.67㎢의 대부분이 벼농사 지역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을 비롯해 수수 · 옥수수 · 메밀 · 콩 · 팥 · 녹두 · 감자 · 고구마 · 무 · 배추 · 양배추 · 호박 · 수박 · 고추 · 마늘 · 파 · 우엉이 많이 재배되며, 들깨와 배의 생산도 많다. 국가유산으로는 당포함전몰장병 충혼탑, 호조판서탁장욱묘비(戶曹判書卓章郁墓碑), 북진통일비, 냉천리에 건봉사, 건봉사 홍혜교, 건봉사부도탑, 건봉사비석군 등이 있고, 화진포해수욕장이 있다.

거진(巨津) · 자산(慈山) · 봉평(蓬坪) · 화포(花浦) · 원당(源塘) · 송정(松亭) · 용하(龍下) · 산북(山北) · 석문(石門) · 초계(草溪) · 오정(梧亭) · 대대(大垈) · 송죽(松竹) · 반암(盤巖) · 송포(松浦)와 주민미거주지역의 냉천(冷泉) 등 17개 리가 있다.

  1. 수동면(水洞面)

군의 북서쪽에 위치한 면. 면적은 141.96㎢, 면 소재지는 신대리에 있었으나 2000년 간성읍에서 관련업무를 겸임하여 폐지되었다.

본래 고성군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면을 합쳐 간성군이 되었고, 1919년고성군에 속하였다. 1953년에 수복되었으나 주민미거주지역이다.

동쪽에 건봉산(911m) · 대작산(742m), 북쪽에 작봉(1,042m)이 있다. 회양군 내금강면에서 발원하는 남강 본류는 상류에서는 동류하다가 남류하는 등 구조곡을 따라 흐르다가 해삼대 · 내허평 · 굴변우를 지나면서 북류하고, 사비리 · 신대리 · 외면리를 지나 내점리에서부터 다시 동류해 고성을 지나 동해로 흘러든다.

강의 상류인 신탄리에서부터 강 연안의 범람원 폭이 1㎞ 이상이 되며, 이 곳에 넓은 논밭이 발달해 식량작물의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강의 하류에서는 범람원 폭이 2㎞에 달한다. 남강 하구에는 북쪽방향으로 발달한 큰 규모의 사취가 발달했는데 영랑호 같은 석호가 있다.

신대(新垈) · 외면(外沔) · 덕산(德山) · 사비(沙飛) · 고미성(姑味城) · 신탄(新炭) · 사천(沙泉) · 상원(上院) 등 8개 법정리가 있다.

  1. 죽왕면(竹旺面)

군의 중앙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50.20㎢, 인구는 4,107명(2015년 현재)이다. 면 소재지는 오호리이다.

본래 간성군 지역으로 죽도의 이름을 따서 죽도면이 되어 오리진(五里津) · 구돈(九頓) · 서성(西城) 등 13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왕곡면(旺谷面)의 향목(香木) · 선유(仙遊) · 용포(龍浦) · 가진(加津) 등 11개 리를 합하면서 죽왕면이 되었다.

1963년 이전에는 인접한 양양군에 속해 있다가 이후에 고성군에 편입되었다. 면의 남쪽 죽변봉(680.9m) 기슭에서 시작하는 황포천과 인정천은 짧고 작은 하천이지만, 하구 가까운 해안에 넓은 평야를 발달시켜 벼농사의 중심지를 이룬다. 또한 오호리 · 문암리 · 삼포리 해안에는 작은 규모의 포구가 발달해 어촌이 형성되어 있다.

경지면적은 8.44㎢인데 이중 논의 면적이 5.81㎢로서 대부분을 차지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을 비롯해 수수 · 옥수수 · 메밀 · 콩 · 팥 · 녹두 · 고구마 · 감자 · 참깨 · 들깨 등의 특용작물이며, 사과 · 배의 생산도 많다.

면의 최북단 향목리에는 향목리농공단지가 있다. 오호리에는 석호인 송지호가 있고, 주변에 있는 송지호해수욕장은 삼포해수욕장 · 문암해수욕장과 함께 국민관광지로 선정되었다. 그 외에 문암리에는 백도해수욕장이 있다. 국가유산으로는 함희석효자각, 함씨4세5효자각, 왕곡마을 민속촌, 어명기전통가옥, 문암리 지역의 신석기 · 철기시대 유적지 등이 있다.

오호(五湖) · 향목(香木) · 가진(加津) · 공현진(公峴津) · 오봉(五峰) · 인정(仁亭) · 구성(九城) · 삼포(三浦) · 야촌(野村) · 송암(松巖) · 문암(文巖)과 주민미거주지역의 마좌(麻佐) 등 12개 리가 있다.

  1. 토성면(土城面)

군의 최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120.51㎢, 인구는 8,267명(2015년 현재)이다. 면 소재지는 천진리이다.

본래 간성군 지역으로 운보리에 있는 토성의 이름을 따서 토성면이라 해 학야동(鶴也洞) · 원기(院基) · 동로(東老) 등 10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운봉 · 학야 · 신평 · 도원 등 18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9년에 간성군이 폐지될 때 양양군에 편입되었다가 1963년 고성군에 편입되었다. 1973년 사진리와 장천리가 속초시로 이관되었다.

면의 서쪽에 있는 신선봉(1,204m) 동쪽 산록에서 시작하는 천진천과 미시령(825m) 동쪽 산록에서 시작해 면의 남부 중앙을 동류하는 용촌천은 짧고 직선으로 동해로 흐르는 작은 하천이지만, 하천유역에는 넓은 구릉지가 발달해 있고 해안에는 좁은 해안평야를 발달시켰다.

식량작물 재배면적은 13.34㎢이며 벼 생산량이 식량작물 생산량의 75% 이상을 차지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을 비롯해 감자 · 콩 · 팥 · 옥수수 등이 생산되며, 해안의 아야진 일대는 어업이 발달하였다.

면의 남서쪽에는 설악산국립공원이 가깝고 미시령을 통해 속초시로 연결되는 466번 지방도로가 지나면서 영서지방과의 교통이 편리해져 대명설악레저타운과 현대설악콘도미니엄이 건설되고, 신평리에는 제17회 세계잼버리대회가 열렸던 대회장이 있다. 도로는 동해안을 따라 남북방향으로 뻗은 7번 국도가 있고 그 외에 지방도가 있다.

천진 · 봉포해수욕장과 석호인 광포호가 있고, 국가유산으로는 신평리에 화암사, 화암사 범종, 청간리에 관동팔경의 하나인 청간정이 있다. 청간정에는 이승만 대통령 친필 청간정 현액이 있다. 교암리천학정, 성대리열녀 영월엄씨 비, 용천2리노상언효자각(盧象彦孝子閣) 등이 있다.

천진(天津) · 청간(淸澗) · 아야진(我也津) · 교암(橋巖) · 백촌(栢村) · 운봉(雲峰) · 학야(鶴也) · 도원(桃院) · 성대(城垈) · 용암(龍巖) · 신평(新坪) · 인흥(仁興) · 성천(星川) · 원암(元巖) · 용촌(龍村) · 봉포(鳳浦) · 금화정(錦花亭) 등 17개 법정리가 있다.

  1. 현내면(縣內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91.28㎢, 인구는 2,711명(2015년 현재)이다. 면 소재지는 대진리이다.

본래 열산현(烈山縣)이 있었으나 조선시대에 간성군 현내면이 되어 열산(烈山) · 마직(馬直) · 명파(明波) 등 14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죽정 · 산학 · 초도 등 13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6년고성군에 편입되고, 1919년 5월 15일에 간성군이 고성군으로 개칭되어 현내면이 되었다.

면의 남쪽 노인산(383m)과 서쪽의 작은 까치봉(682m)과 큰 까치봉(742m) 산록에서 시작한 작은 하천들이 북류 또는 동류하는 하천들을 모아 배봉천을 이루며 북쪽으로 흐르다가 동해안의 명파리 부근에서 동해로 흘러든다.

면의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이 하천유역좁은 하안평야가 발달해 있다. 면의 북쪽 명파리 · 저진리 일대를 흐르는 작은 하천도 명파리 부근에서 배봉천과 합류하면서 좁은 해안평야를 이룬다.

식량작물 재배면적 493㏊에서 1,647t의 식량작물이 생산되는데, 주요 농산물은 쌀을 비롯해 수수 · 옥수수 · 메밀 · 콩 · 팥 · 녹두 · 무 · 배추 · 양배추 · 파 등의 생산도 많다. 대진항을 중심으로 어업이 발달했는데 주로 해삼 · 멍게가 많이 잡힌다. 현내면에는 농수산물을 가공 · 제조하는 업체가 11개 있다. 도로는 면의 동해안을 따라 남북방향으로 뻗은 7번 국도가 있으며, 마차진리에는 통일안보공원이 있고 명호리에는 통일전망대가 있다.

대진(大津) · 철통(鐵桶) · 초도(草島) · 죽정(竹亭) · 산학(山鶴) · 화곡(禾谷) · 마달(馬達) · 마차진(麻次津) · 명파(明波) · 배봉(培峰)과 주민미거주지역의 제진 · 검장(劍藏) · 사천(泗川) · 송현(松峴) · 대강(大康) · 송도진(松島津) · 명호(明湖) 등 16개 법정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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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지』(강원도지편찬위원회, 1959)
고성군(http://www.gose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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