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

대동여지도 중 경기도 고양 부분
대동여지도 중 경기도 고양 부분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경기도 서북부에 위치한 시.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경기도 서북부에 위치한 시.
개관

동북쪽은 양주시, 동남쪽은 서울특별시, 서남쪽은 한강을 경계로 김포시, 북쪽은 파주시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6°40′∼126°59′, 북위 37°34′∼37°44′에 위치한다. 면적은 268.05㎢이고, 인구는 102만 4546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3개 구, 39개 행정동(53개 법정동)이 있다. 시청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주교동에 있다.

자연환경

광주산맥의 말단부에 위치한 고양시는 동쪽은 높은 산지가, 서쪽은 낮은 구릉과 하천 퇴적지인 곡저평야로 구성되어 있다.

동쪽에 북한산(837m)이 양주시와 서울과의 경계를 이루고, 북쪽에는 우암산(329m)이 파주시와 경계를 이룬다.

주요 하천은 서남쪽에 한강이 동남∼서북향으로 흐르고, 북한산에서 발원한 창릉천은 서남진해 한강에 합류한다. 역시 북한산에서 발원한 곡릉천이 서북진해 파주시로 흘러가며, 곡릉천에서 나뉘어진 원당천은 서남진해 대장천과 합류한 뒤 한강으로 흐른다.

그리고 장월평천이 서남진하여 한강에 합류한다. 서남부는 한강의 범람원으로 넓은 충적지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창릉천이 한강으로 흘러들어 가는 곳에는 범람원과 하중도가 발달하였다. 1991년부터 한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제방을 높이 쌓고 신도시개발에 착수한 이래 범람원은 대지로 바뀌었다.

지질은 남부는 화강편마암으로, 동부는 결정편마암으로 되어 있다. 대륙성기후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연평균기온은 11.8°C, 1월 평균기온 -4.9°C, 8월 평균기온 25.5°C이며, 연강수량은 1,214㎜이다.

역사

신도시 개발과정에서 일산동구 백석동과 일산서구 대화동 일대에서 중기 구석기유물이 발견된 바 있다. 따라서 이 지역에도 최소한 10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대화동에서는 서기전 2000년경으로 추정되는 볍씨가 출토되어 신석기시대의 농경문화에 대한 새로운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일산 지역의 지영동 · 가좌동 · 오부자동에서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의 유적 또한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해도 12군데에 이르고 있다. 즉, 벽제 · 원당 · 신도 · 일산 지역에서 고인돌 · 동모주범 · 돌도끼 · 토기류 등이 출토되었다. 문봉동이나 신원동에는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다.

특히, 성사동에서 출토된 동모주범은 고양 지역에서 청동기를 제작했음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게다가 이러한 선사 유적들이 창릉천과 곡릉천 등의 작은 하천을 낀 마을 부근에서 발견된다는 특징이 있다.

삼국시대에 이 지역은 처음에는 백제의 영토였다. 그러나 475년(장수왕 63) 남진정책을 편 고구려에 의해 한성이 함락당함에 따라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 그래서 고양 지역은 고구려 북한산주(北漢山州)의 영현인 달을성현(達乙省縣)에 편입되어, 551년(양원왕 7)까지 76년간 고구려의 남진기지의 구실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 뒤 나제동맹군에 의한 북방 공략으로 백제가 잠시 수복하였다. 그러나 신라가 동맹을 파기하고 한강 유역에 속한 백제의 6군을 점령함으로써, 553년(진흥왕 14) 이후 신라 한양군의 속현인 고봉현(高峰縣)이 되었다.

이에 신라는 한강 유역 방위를 위해 신주정(新州停)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고양 일대에 북한산성과 행주산성 등을 축성하고, 임진강을 북쪽 경계로 한 북방기지로서 중요한 비중을 갖게 되었다.

후삼국시대에는 한강의 이남지역인 김포 · 강화 등지를 석권한 궁예(弓裔)의 후고구려 세력권 내에 있었다. 또한, 고려 초기까지는 계속 독립군현인 고봉현으로 불려왔다. 그 뒤, 1018년(현종 9) 양주의 관할에 두어 지양주사(知楊州事), 숙종 때는 남경유수관(南京留守官), 충렬왕 때는 한양부사의 관리를 받아왔다.

여기에는 고려 말 위화도회군 이후 이곳으로 유배되었던 최영(崔瑩)의 묘가 있다. 또한,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의 고릉(高陵)이 원당동에 있다.

1394년(태조 3) 서울을 한양부로 하고 양주를 별도로 둠으로써 고양시는 고봉현으로 독립되어 현감이 배치되었다. 그리고 행주(幸州) · 부원(富原) · 황조향(荒調鄕)을 폐합하였다.

1413년(태종 13) 고봉과 덕양현(德陽縣)을 합쳐 고양으로 고치고 현감을 두었다. 그 뒤 1471년(성종 2) 경릉(敬陵: 덕종과 비의 능)과 창릉(昌陵)이 있어서 군으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1504년(연산군 10)에 폐지되었고, 1506년(중종 1)에 복귀되었다.

1592년(선조 25)의 임진왜란 당시 원군으로 참전한 이여송(李如松)은 이듬해에 평양성을 탈환한 뒤 승승장구해 남하하다가 이 곳 벽제관전투에서 패전하였다. 그리고 지도면 행주내리의 행주산성에서는 권율이 왜장 우키타(宇喜多秀家)가 이끄는 왜병 3만여 명을 물리쳐 임진왜란 3대첩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생육신의 한 사람인 남효온(南孝溫)이 양화진(楊花津: 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그리고 김정국(金正國)이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고향인 이곳으로 낙향해 학문에 전심, 후학을 가르쳤다. 또한, 조선왕조의 서오릉(西五陵) · 서삼릉(西三陵)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따르면, 고봉 · 덕양 · 부원 · 황조향 · 율악부곡(栗岳部曲) 등이 폐합되어 고양군으로 불려왔다. 그 뒤 1895년(고종 32) 한성부의 소속군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군면폐합으로 한성부로부터 8개 면, 고양군으로부터 1개 면이 편입되었다.

1919년 3월 9일 한지면 보통학교에서 300여 명이, 23일 용강면 관란교(觀瀾橋)에서 500여 명이 독립만세시위를 벌였으며, 그 뒤에도 군내 각지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1917년 이후 현재의 판도를 유지하면서 한강 이북에서 서울특별시를 두르고 있는 형상으로 변천되었다.

1950년 6·25전쟁으로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있었으나, 전후 복구사업으로 회복되었다. 1961년 8월 서울특별시에 있던 군 청사를 원당읍 주교리로 옮겼으며, 1967년 3월 28일 신도면 화전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73년 7월 1일 신도면의 구파발리 · 진관내리 · 진관외리가 서울특별시로 편입되고, 신도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79년 5월 1일에는 원당면이 읍으로, 이듬해 12월 1일에는 중면이 일산읍으로, 벽제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이처럼 날로 늘어나는 군세에 맞추어 행정구역 조정과 변천을 계속하였다.

1985년 10월 1일에는 지도면이 읍으로, 신도읍 화전출장소가 역시 읍으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11월 1일 일산읍 백마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89년 서울특별시의 주택문제 해결책의 일환으로 일산지구 개발지원사무소가 설치되어 신도시건설사업을 추진하였다.

1992년 2월 1일 고양군이 시로 승격되었다. 이후 수차례의 법정동간의 경계 조정과 동의 신설이 있었다. 1996년 1월 3일에는 일산4동 · 대화동 · 장항2동 · 행신2동이 신설되고, 3월 1일에는 구제가 실시되어 덕양구와 일산구를 설치하였다. 2005년 5월 16일에는 일산구가 일산동구와 일산서구로 분리되어 현재 고양시는 3개 구로 늘어났다. 2005년 5월 16일에 일산2동을 일산2동과 중산동으로 분동하였으며, 일산4동을 정발산동으로 명칭 변경하였다. 2006년 10월 29일 백석동을 백석1동과 백석2동으로 분동하였다.

남북한 관계가 개선됨에 따라 개발이 촉진되고 있으며, 서울특별시와 접경한 지리적 여건으로 도시와 농촌이 병존된 수도권 위성 지역으로 발전과 변천을 계속하고 있다.

유물 · 유적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봉고성지 · 행주고성지 · 고토성지 등이 있다. 그리고 산성으로는 덕양구 지도동의 행주산성(사적, 1963년 지정), 신도동의 북한산성(사적, 1968년 지정) 등이 있다. 특히 일산서구 대화동에 있는 멱절산유적(경기도 기념물, 2004년 지정)에서는 최근 백제 초기 유물이 대량 출토되었다.

불교 유산으로는 덕양구 북한동의 태고사 내에 태고사 원증국사탑(보물, 1977년 지정) · 태고사 원증국사탑비(보물, 1977년 지정) 및 북한산 중흥사지(경기도 기념물, 1992년 지정), 지축동의 흥국사 극락구품도 · 흥국사 약사전 · 흥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이 있다. 흥국사 극락구품도는 1991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흥국사 약사전은 1985년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으며, 흥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2001년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유교 유산으로는 덕양구 고양동에는 고양향교(경기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가 있어 춘추로 석전제(釋奠祭)를 올리고 있으며, 행주외동에는 행주서원지(경기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민순 등 고양8현을 제향했던 문봉서원 터와 임진왜란 때의 도원수 권율(權慄)을 배향하는 기공사(紀功祠)가 있다.

덕양구 신원동에 월산대군사당(경기도 문화재자료, 1989년 지정), 벽제동의 벽제관지(사적, 1965년 지정)가 있다. 용두동의 서오릉(사적, 1970년 지정), 원당동의 고양 공양왕릉(사적, 1970년 지정) · 서삼릉(사적, 1970년 지정), 북한동의 북한산성 행궁지(사적, 2007년 지정) 등도 있다.

묘비로는 덕양구 행주내동의 행주대첩비(경기도 유형문화재, 1978년 지정)와 행신동의 유형장군묘(경기도 기념물, 1978년 지정), 덕양구 북한동의 북한산성 금위영이건기비(경기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 대자동의 최영장군묘(경기도 기념물, 1975년 지정) · 연산군시대금표비(경기도 문화재자료, 1995년 지정) 등이 있다.

그리고 원흥동에는 원흥리 신라 말 · 고려 초기 청자요(경기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가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일산서구 덕이동의 송포백송(천연기념물, 1962년 지정)이 있고, 일산서구 일산동에 일산밤가시초가(경기도 민속자료, 1991년 지정)가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무형유산으로는 주교동에 전승되어 내려오고 있는 고양송포호미걸이(경기도 무형문화재, 1998년 지정)와 휘몰이잡가(경기도 무형문화재, 1999년 지정) 등이 있다.

교육 · 문화

최초의 교육기관으로는 고양향교가 있다. 1688년(숙종 14)에 세워진 문봉서원은 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릴 때까지 많은 유생을 교육하였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09년고양리에 고양초등학교가 최초로 설립되었으며, 광복 후 많은 학교가 증설되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82개교, 중학교 41개교, 고등학교 40개교가 있고, 대학으로는 한국항공대학교, 농협대학교, 중부대학교 고양캠퍼스 등이 있다.

문화시설로는 덕양구의 고양시문예회관(주교동) · 덕양어울림누리(성사동) · 고양아람누리(마두동) · 중남미문화원(고양동) · 목암미술관(벽제동) · 배다리주박물관(성사동)과 일산지역의 고양꽃전시관(일산동구 장항동) · 한국국제전시장 KINTEX(일산서구 대화동) 등이 있다.

영화관으로는 덕양구 화정동, 일산동구 장항동에 롯데시네마, CGV, 메가박스 등이 들어와 있다.

민속

이 지방의 중요한 민속놀이로는 호미걸이가 있다.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농민들의 두레이자 축제로서, 일산서구 대화동 일대에서 전해내려 오고 있다. 도당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세 마을의 두레가 가장 오래되었다고 해서 구두레라 하였다.

이 호미걸이는 모를 심은 다음, 호미로 두 벌 김을 매고 손으로 또 두 벌 김을 훔치고 나서 피로를 풀 겸 해서 행하는 놀이이다. 음력 칠월 칠석 전후로 택일을 해 인근 동네의 네 두레를 초청해 논다.

사전에 동네 우두머리에게 건의해 대동회의를 열어 날짜와 절차 등을 결정한다. 그러고 나서 온 동네 사람들은 제각기 기구와 음식 등을 부담하고 준비를 서두른다. 당일이 되면 네 두레가 나온 동네 사람들 수백 명이 한데 모여, 음식과 춤으로 하루를 즐긴다.

호미걸이는 상산제 · 대동제 · 유가제의 순으로 놀지만, 각 두레패별로 따로 놀기도 한다. 특히, 상쇠의 선도로 길군악을 비롯해 열두 가락으로 진행되는 흥겹고 멋있는 놀이이다. 이 밖에도 계절에 따라 널뛰기 · 연날리기 · 그네뛰기 등의 세시풍속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일산동구 마두동의 정발산에서는 3년마다 음력 3월경 마두동 · 장항동을 비롯한 10개 마을이 함께 산신제를 지낸다. 이 산신제는 꽤 연조가 깊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산봉우리 위에서 행해진다.

우선 신망이 두텁고 재력이 있는 사람을 당주로 뽑아 제관으로 삼는다. 그런 다음 돼지머리를 바쳐 엄격한 절차에 따라 제례가 집행된다. 그리고 농사의 풍년, 동민들의 안녕, 마을의 무사를 비는 축문을 읽고, 전체 주민이 함께 축원을 한다.

각 마을별로 음식을 마련해 제가 끝나면 꽃피고 새 우는 산에서 온 동민들이 축제를 벌인다. 행사가 모두 끝나면 인근의 무당들이 모여 당주의 집에 가서 동네굿과 당주집 굿을 해 준다. 이 때 신수를 비는 사람들은 제각기 돈을 놓고 춤을 추며 밤새도록 논다.

그 밖에도 덕양구 화정동의 냉정마을에서는 해마다 산신제를 지낸다. 또, 일산동구 백석동에서는 흰돌이 있는 데서 도당굿을 하고, 또한 흰돌의 작은집이라 일컫는 방터골 도당산에서는 3리와 함께 산신제와 도당굿을 4년마다 지내고 있다.

설화 · 민요

이 고장에 전하는 대표적인 설화는 「행주치마 유래전설」이다. 이 설화는 덕양구 행주내동의 덕양산에 쌓은 행주산성에 얽힌 이야기이다. 임진왜란 때 권율이 이끄는 2,300여 명의 군사가 이 행주산성에 진을 치고 있을 때 왜군이 물밀듯이 닥쳐왔다.

산성에서는 남녀노소가 총 출동해 3만의 왜군을 세 번이나 격퇴하였다. 이 때 부녀자들이 덧치마를 만들어 입고 돌을 날라다주어 석전에서 커다란 공을 세웠다. 이 때부터 부녀자들이 입은 덧치마를 행주치마라 하였다.

이 고장에서 구전되는 민요는 여요(女謠) 몇 편과 어희요(語戱謠)가 채록되어 남아 있다. 노동요는 「들노래」가 유명하고, 김매기소리로는 「방아타령」을 부르는 것이 특색이다. 자료가 적은 것은 서울과 근접해 있어 일찍부터 도시화되어 채집 시기를 놓친 까닭이다.

타령요류는 서울 근교지방이 그렇듯이 서울을 중심으로 한 경기잡가가 주류를 이룬다. 지금 전하는 여요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나물캐기노래」와 「어머니노래」를 들 수 있다.

「나물캐기노래」는 4·4조의 문답체이다. 가사는 나물을 캐서 부모를 봉양하고 형제와 우애하겠다는 교훈적 내용으로 소녀의 고운 마음씨가 잘 나타나 있다. 그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아장아장 나물 가자/무슨 나물 가자느냐/개똥밭에 돌미나리/아식바식 도려다가/청강수물에 싹 데쳐서/한강물에 흔들어서/어머님은 은반상이요/아버님은 금반상이요/오라버니 꽃반상이요…….”

「어머니노래」 또한 4·4조의 문답체 노래인데, 젖 달라고 보채는 어린애를 달래는 내용이다. 그 밖에 「사랑노래」가 전하는데, 남녀 간의 연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춘아춘아 옥단춘아/네 집으로 구경 가자/앞뜰에는 꽃밭이요/꽃밭에는 나비 놀고/뒤뜰에는 연못이요/연못 안에 초당 보게/초당문을 펄척 여니/이쁜 색시 앉었길래/분을 주련 연질 주련/분도 싫고 연지도 싫고/나무 인경 주십시오…….”

산업 · 교통

경지면적은 5,250㏊ 로, 그 중 논이 2,294㏊, 밭이 2,956㏊이며, 가구당 경지 면적은 논 0.51㏊, 밭이 0.49㏊로 계속 감소하고 있다. 지형적인 이유로 논농사가 많았으나 1990년대의 대단위 아파트 건설로 인하여 많은 농경지가 잠식되었다. 주요 농산물은 쌀인데, 특히 쌀의 질이 좋기로 이름나 있다.

밭작물로 콩 · 감자 · 무 · 배추 · 파 · 고추 · 시금치 · 오이 · 상추, 특용작물로 들깨가 재배된다. 그리고 과실류로 배가 생산된다. 대도시 근교의 구릉지나 야산에서는 관상수 · 화훼 등을 기르는 수목원이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양계 · 양돈 · 젖소 · 사슴 · 노루 등의 목축업도 성하다. 임산자원으로 밤 · 도토리 등이 생산되고 있다. 농가인구는 전체 인구의 2.3%인 2만 448명인데, 그 수가 계속해서 줄고 있다. 제2차산업 인구는 전체 인구의 2.7%인 1만 4467명이다.

대부분의 지역이 수도권 개발제한구역에 묶여 있어 제조업이 발달할 수 있는 공간이 적다. 또한 용수개발도 부진해 제조업이 발달하지 못하였다. 주요 제조업으로 조립금속기계 · 비금속광물 · 종이인쇄업 · 섬유의류업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대도시 근교의 야산지역에는 상업 및 서비스 시설이 많이 들어서 있다. 특히, 음식업 · 주류판매업 · 여관업 등이 발달해 있다. 원당 · 송포 · 능곡 · 일산 · 고양 등에는 아직까지 5일장이 열리고 있으며, 시 지역에 모두 21개의 시장이 개설되었다. 게다가 일산신도시개발, 화정아파트단지 개발, 원당아파트단지 개발 등으로 인구가 급증하면서 금융기관이 124개에 이를 정도로 금융업이 크게 성장하였다.

관광지로는 행주산성과 호수공원이 있다. 행주산성은 주말에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으로 주변에 관광 음식점이 들어서 있다.

철도는 경의선이 서남부지역을 지나 동남∼서북진하여 고양시를 관통하고 있으며, 수도권 전철 3호선이 서울과 이어져 있고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가로질러 지나고 있다. 국도는 국도 1호선이 서울에서 출발해 신도, 벽제를 거쳐 고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국도 33호선이 김포에서 원당∼벽제를 지나 양주로 들어가고 있다. 지방도로 311호선이 삼송리에서 원당∼일산을 거쳐 파주로, 307호선이 송포에서 일산을 지나 동북진한다.

398호선이 화전 · 지도 · 일산에 이르고, 349호선이 신도를 남북으로 지나고 있다. 고양은 서울 지역으로의 통근 인구가 많아 서울∼임진각 간의 자유로, 서울 · 화정 · 일산간의 지방도로가 고속화도로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서울 · 벽제 · 봉일천 · 문산 간의 통일로도 많이 이용되고 있다. 서울∼고양 간에는 시내버스도 다니고 있다.

관광

광주산맥의 발단부인 북한산을 주봉으로 많은 산들이 서울시와 경계를 이루며 둘러싸여 있다. 따라서 중앙에는 잔구성 산지가 구릉을 이루면서 곳곳에 관광지를 발달시켰다. 가볼 만한 관광지는 통일로와 경의선 철도를 중심으로 세 지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통일로의 동북쪽 일대 벽제지역 동쪽과 신도지역 동북쪽 지역은 추가령구조곡과 임진강 사이에 펼쳐진 고양∼양주 구릉지대에 속하는 광주산맥의 발단인 북한산 중심의 노고산 · 개명산 등이 명승지이다.

이곳은 야산지대로 구릉성산지가 펼쳐지고 곳곳에 과수 · 관상수 · 화초 · 고등채소 등을 재배하는 관광농원이 분포되어 있다. 또한 경의선 아래쪽을 들 수 있는데, 이 지역은 평야지대로 땅이 비옥해 농경지가 발달되어 있다.

한때는 서울로 공급되는 근교농업이 발달했으나, 주거지역 확대로 아파트단지가 조성되어 농경지는 거의 소멸되었다. 그러나 주변에는 사적, 보물, 천연기념물 등이 있어 서울시민의 일일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태고사 원증국사탑비 · 행주산성 · 벽제관 터 · 북한산성 · 공양왕 고릉 · 서오릉 · 서삼릉 · 백송 · 정발산공원 등은 좋은 관광지가 되고 있다. 특히, 원당동에 있는 공양왕릉은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과 그의 왕비인 순비 노씨의 능침으로 알려져 있다.

능역에는 두 쌍의 석인 석호 비석이 있는데, 비문에는 ‘고려공양왕고릉’이라 새겨져 있다. 이는 조선 고종 때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소박한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행주산성은 서울과 접경을 이루는 한강 하류의 덕양산에 위치해 있다.

덕양산은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인 행주대첩이 벌어진 역사의 현장으로, 동남쪽은 한강으로 절벽을 이루고 서북쪽은 넓게 틔어 파주 · 문산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천혜의 요새다.

행주산성은 천혜의 지리적 조건을 잘 이용해 쌓은 토성으로,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무찌르고 대승을 이룬 곳이다. 이곳에는 권율장군 동상을 비롯해 많은 기념비가 서 있으며, 해마다 행주대첩이 이루어진 2월 12일을 기려 행주대첩제가 거행되고 있다.

구(區)
  1. 덕양구(德陽區)

시의 동부에 위치한 구. 면적 165.44㎢, 인구 44만 1988명(2015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화정동이다.

본래 고양군의 원당 · 신혈 · 하도 · 구지도 · 사리대 · 구이 등의 6개 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벽제(碧蹄) · 신도(神道) · 원당(元堂) · 지도(知道) 등 4개 면으로 개편되었다.

1967년 신도면의 남부에 화전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73년에는 신도면이, 1979년에는 원당면이, 1980년에는 벽제면이, 1985년에는 지도면이, 1985년에는 화전출장소가 각각 신도 · 원당 · 벽제 · 지도 · 화전읍으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1992년에는 전 지역이 고양시로 승격하였다.

1996년 고양시의 구제(區制) 도입에 따라 옛 벽제 · 원당 · 신도 · 지도 · 화전 등 5개 읍지역을 묶어 덕양구가 설치되었다. 지형은 대체로 동부와 북부가 높고, 중부에는 구릉지가 많으며 남부는 낮고 평평하다.

서울특별시와 경계를 지나는 동부는 북한산(837m) · 남장대(716m), 파주시 · 양주시와 접하는 북부는 개명산(622m) · 노고산(496m) · 명봉산(248m) 등이 있어 높은 편이다. 중부 및 일산동구와 맞닿은 서부는 구릉이 곳곳에 자리하고, 한강에 접해 있는 남부는 충적지가 넓다.

주요 하천은 곡릉 · 창릉 · 대장천이다. 곡릉천은 북동쪽에서 흘러들어 북부를 관류하다 일산동구와 행정경계를 이루면서 북서쪽으로 빠져나간다. 창릉천은 북한산지에서 발원, 남서류하면서 서울시와 마주한 다음 동부를 관류한다.

남서부에는 남쪽으로 흘러 한강으로 흘러드는 대장천이 있다. 토지이용을 보면 전체 면적의 47%가 임야이며, 26%가 경지이다. 그 중 논이 밭 면적의 약 두 배이다. 임야는 북부에, 경지는 창릉천 및 한강에 접해 있는 남부에 넓게 펼쳐진다.

대지는 창릉천 중류와 대장천 동부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대장천 동쪽에는 남북방향으로 길게 신도시(화정지구)가 조성되어 있다. 공업은 거의 전 지역이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미미하며, 새로 조성된 시가지를 중심으로 각종 서비스업이 활성화되었다. 토지 이용상 눈에 띄는 특징은 곳곳에 자리한 공원묘지와 골프장이다.

교통은 매우 편리하다. 경의선 · 서울교외선 철도와 함께 서울도심과 이어지는 수도권 전철 3호선도 개통되었다. 한강 북안을 따라 놓인 자유로 · 강변로와 중북부를 가로지르는 1번 국도 및 중앙부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39번 국도를 중심으로 도로망이 잘 갖추어져 있으며, 서울의 시내버스도 운행된다.

문화유적은 북한동에 태고사원증국사탑비 · 태고사원증국사탑 · 북한산성 · 북한산성금위영이건비, 행주내동의 행주산성 · 행주대첩비, 벽제동의 벽제관지, 원당동의 고려공양왕고릉 · 서삼릉, 용두동의 서오릉, 지축동에 흥국사극락구품도, 대자동의 연산군시대금표비 · 최영장군묘, 행신동의 유형장군묘, 고양동에 고양향교, 행주외동에 행주서원지 등이 있다.

주교(舟橋) · 성사(星沙) · 원당(元堂) · 신원(新院) · 원흥(元興) · 도내(道乃) · 북한(北漢) · 효자(孝子) · 지축(紙杻) · 오금(梧琴) · 삼송(三松) · 동산(東山) · 용두(龍頭) · 고양(高陽) · 벽제(碧蹄) · 선유(仙遊) · 대자(大慈) · 관산(官山) · 내유(柰遊) · 내곡(內谷) · 대장(大壯) · 신평(新坪) · 토당(土堂) · 화정(花井) · 행주내(幸州內) · 행주외(幸州外) · 강매(江梅) · 행신(幸信) · 향동(香洞) · 화전(花田) · 덕은(德隱) · 현천(玄川) 등 32개 동이 있다.

  1. 일산동구 一山東區

시의 서부에 위치한 구. 면적 59.94㎢, 인구 28만 5658명(2015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마두동이다.

본래 고양군의 중 · 사포 · 송산 등 3개 면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중(中)〉 · 송포(松浦) 등 2개 면으로 개편되었다.

1980년 중면이 일산읍(一山邑)으로, 1992년에는 전 지역이 고양시로 승격되었다. 1996년 고양시의 구제(區制) 도입에 따라 옛 일산읍과 송포면을 묶어 일산구가 설치되었다. 2005년 5월 16일 인구의 증가로 인해 일산동구와 일산서구로 분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형은 몇몇 산지를 제외하면 전 지역이 구릉지나 넓은 충적지로 구성되어 있다.

중앙부에 고봉산(209m)과 중서부의 황룡산(135m)이 주요 산지에 속한다. 구릉지는 덕양구와 맞닿은 동부와 북부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한강에 접한 남부에는 충적지가 넓게 발달했다. 이들 충적지와 구릉지가 만나는 곳에 동서방향으로 대략 3㎞ 정도의 폭으로 일산신도시가 들어섰다.

하천은 곡릉천과 장월평천이다. 곡릉천은 북동부의 동남에서 북서방향으로 흐르며, 덕양구와 경계를 이룬다. 장월평천은 서남부의 넓은 충적지를 관류한 다음, 파주시와 경계를 이루면서 한강으로 흘러든다. 중앙부에 있는 낮은 산지와 구릉지들은 남쪽의 한강과 북쪽의 곡릉천 물을 나누는 분수계가 된다. 곡릉천은 파주시에서 한강하구로 흘러든다.

토지 이용을 보면 전체 면적의 24%가 경지인데, 논이 밭보다 3배 넓다. 임야는 13%로 북부에 집중되어 있다. 토지 이용에서 눈에 띄는 특징은 7%가 넘는 대지와 약 3%에 이르는 공원용지이다. 대지와 공원용지는 신도시개발 결과 크게 늘었다. 공원은 호수공원과 정발산공원이 대표적이다.

일산신도시의 조성으로 유통업을 중심으로 한 각종 서비스업이 점차 활기를 띠고 있다. 남부와 북부는 농업이 중심 산업이며, 공업은 미미하다. 특히 남부의 충적평야에서는 맛좋은 쌀이 생산되고 화훼 재배도 활발하다.

교통은 서울에 접근이 쉬운 남부가 편리하지만 그렇지 못한 북부는 불편하다. 남부에는 경의선 철도와 수도권 전철(3호선) 및 한강 북안을 따라 뚫린 자유로가 동서방향으로 놓였다. 이 지역은 서울의 시내버스도 운행된다.

반면, 구릉지가 곳곳에 솟고 도로연장이 길지 않은 북부는 교통이 불편하다. 문화유적은 일산밤가시초가와 성녕대군 묘 및 신도비 등이 있다.

식사(食寺) · 중산(中山) · 장항(獐項) · 풍(楓) · 산황(山黃) · 백석(白石) · 마두(馬頭) · 사리현(沙里峴) · 지영(芝英) · 문봉(文峰) · 설문(雪門) · 성석(城石) · 정발산(鼎鉢山) 등 13개 동이 있다.

  1. 일산서구(一山西區)

시의 서부에 위치한 구. 면적 42.56㎢, 인구 29만 9900명(2015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대화동이다.

본래 고양군의 중 · 사포 · 송산 등 3개 면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중(中) · 송포(松浦) 등 2개 면으로 개편되었다.

1980년 중면이 일산읍(一山邑)으로, 1992년에는 전 지역이 고양시로 승격되었다. 1996년 고양시의 구제(區制) 도입에 따라 옛 일산읍과 송포면을 묶어 일산구가 설치되었다. 2005년 5월 16일 인구의 증가로 인해 일산동구와 일산서구로 분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형은 몇몇 산지를 제외하면 전 지역이 구릉지나 넓은 충적지로 구성되어 있다.

중앙부에 고봉산(209m)과 중서부의 황룡산(135m)이 주요 산지에 속한다. 구릉지는 덕양구와 맞닿은 동부와 북부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한강에 접한 남부에는 충적지가 넓게 발달했다. 이들 충적지와 구릉지가 만나는 곳에 동서방향으로 대략 3㎞ 정도의 폭으로 일산신도시가 들어섰다.

하천은 곡릉천과 장월평천이다. 곡릉천은 북동부의 동남에서 북서방향으로 흐르며, 덕양구와 경계를 이룬다. 장월평천은 서남부의 넓은 충적지를 관류한 다음, 파주시와 경계를 이루면서 한강으로 흘러든다. 중앙부에 있는 낮은 산지와 구릉지들은 남쪽의 한강과 북쪽의 곡릉천 물을 나누는 분수계가 된다. 곡릉천은 파주시에서 한강하구로 흘러든다.

일산신도시의 조성으로 유통업을 중심으로 한 각종 서비스업이 점차 활기를 띠고 있다. 남부와 북부는 농업이 중심 산업이며, 공업은 미미하다. 특히 남부의 충적평야에서는 맛좋은 쌀이 생산되고 화훼 재배도 활발하다.

교통은 서울에 접근이 쉬운 남부가 편리하지만 그렇지 못한 북부는 불편하다. 남부에는 경의선 철도와 수도권 전철(3호선) 및 한강 북안을 따라 뚫린 자유로가 동서방향으로 놓였다. 이 지역은 서울의 시내버스도 운행된다.

반면, 구릉지가 곳곳에 솟고 도로연장이 길지 않은 북부는 교통이 불편하다. 문화유적은 덕이동의 송포백송이 있다. 이 밖에 대화동에 멱절산유적 등이 있다.

일산(一山) · 탄현(炭峴) · 주엽(注葉) · 대화(大化) · 법곶(法串) · 구산(九山) · 가좌(加佐) · 덕이(德耳) 등 8개 동이 있다.

참고문헌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고양시통계연보』(고양시, 2008)
『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 2000)
『경기도사』(경기도, 1982)
『한국지명요람』(건설부국립지리원, 1982)
『한국구비전승의 연구』(성기열, 일조각, 1976)
고양시(www.goyang.go.kr)
고양교육청(www.kengy.go.kr)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