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구려 왕실과 같은 고씨임을 볼 때, 계루부(桂婁部)출신의 귀족임을 알 수 있다.
당태종이 645년 고구려를 침략하여 요동성(遼東城)을 함락하고 이어 안시성(安市城)을 포위하자, 고구려는 당시 남부욕살(南部褥薩) 고혜진(高惠眞)과 북부욕살이던 그를 파견하여 안시성의 군사를 돕도록 하였다. 이에 두 사람은 고구려와 말갈의 연합군 15만여명을 거느리고 당군과 대항하였다.
이 작전중 고연수는 당군의 계략에 말려 3만여 군사를 잃고 고혜진과 함께 당나라에 항복하였다. 당태종은 고연수를 홍려경(鴻臚卿)에 임명하였다.
그뒤 안시성전투에서 당군의 피해가 계속되자, 그는 군사를 돌려 무방비상태에 가까운 오골성(烏骨城 : 지금의 鳳凰城)을 공격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태종에게 건의하였으나, 그 계책은 당나라의 장군 장손무기(長孫無忌)의 반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그뒤 당군과 같이 전장에 있었는데, 자신의 행동과 처지를 비관하다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