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고흥남(高興男). 경기도 안성 출신.
1919년 4월 최은식(崔殷植)·홍창섭(洪昌燮)·이유석(李裕奭) 등이 주동이 되어 전개한 양성면(陽城面)·원곡면(元谷面)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여 주재소 건물과 숙직실을 파괴, 방화하였다.
이어 양성우편소 및 일본인이 경영하는 잡화상을 파괴하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혀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7년을 언도받았다.
1982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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