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효충

  • 역사
  • 인물
  • 고려 전기
고려 예종 때, 국학생으로 「감이녀시」를 지어 풍자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국학생
  • 주요 작품감이녀시(感二女詩)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문수진 (신구전문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11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고려 예종 때, 국학생으로 「감이녀시」를 지어 풍자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예종 때 국학생(國學生)으로서 당시 왕이 풍악을 좋아하고 기생 영롱(玲瓏)과 알운(遏雲)이 노래를 잘 불러 여러 번 상을 내리므로 「감이녀시(感二女詩)」를 지어 풍자하였다.

중서사인(中書舍人) 정극영(鄭克永)이 이 사실을 왕에게 보고하였다. 예종은 불쾌하게 생각하였는데, 마침 고효충이 과거에 응시하였다. 예종은 그를 떨어뜨리라 명령하고 드디어 하옥시켰다. 송날 출신 호종단은 글을 올려 그를 변호하자, 예종이 석방하였다. 학사(學士) 호종단(胡宗旦)이 차자(箚子)를 올려서 고효충은 죄를 용서받았다. 인종 2년(1124) 중서시랑(中書侍郎) 김약온(金若溫)이 지공거(知貢擧), 병부시랑 김부식(金富軾)이 동지공거(同知貢擧)로 실시한 과거에서 장원으로 합격하였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 『파한집(破閑集)』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