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효충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예종 때, 국학생으로 「감이녀시」를 지어 풍자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주요 작품
감이녀시(感二女詩)
주요 관직
국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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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고려 예종 때, 국학생으로 「감이녀시」를 지어 풍자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예종 때 국학생(國學生)으로서 당시 왕이 풍악을 좋아하고 기생 영롱(玲瓏)과 알운(遏雲)이 노래를 잘 불러 여러 번 상을 내리므로 「감이녀시(感二女詩)」를 지어 풍자하였다.

중서사인(中書舍人) 정극영(鄭克永)이 이 사실을 왕에게 보고하였다. 예종은 불쾌하게 생각하였는데, 마침 고효충이 과거에 응시하였다. 예종은 그를 떨어뜨리라 명령하고 드디어 하옥시켰다. 송날 출신 호종단은 글을 올려 그를 변호하자, 예종이 석방하였다. 학사(學士) 호종단(胡宗旦)이 차자(箚子)를 올려서 고효충은 죄를 용서받았다. 인종 2년(1124) 중서시랑(中書侍郎) 김약온(金若溫)이 지공거(知貢擧), 병부시랑 김부식(金富軾)이 동지공거(同知貢擧)로 실시한 과거에서 장원으로 합격하였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파한집(破閑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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