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여전도 목판 ( )

곤여전도 목판
곤여전도 목판
인문지리
물품
국가유산
조선 후기, 중국 광둥판 「곤여전도」를 바탕으로 조선에서 중간한 세계지도의 목판.
물품
재질
나무
용도
지도 인쇄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제작 시기
1860년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곤여전도 목판(坤輿全圖 木板)
분류
유물/과학기술/천문지리기구/지리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1986년 11월 29일 지정)
소재지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 (신림동,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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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곤여전도 목판은 조선 후기 중국 광둥판 「곤여전도」를 바탕으로 조선에서 중간한 세계지도의 목판이다. 벨기에 선교사 페르비스트의 「곤여전도」는 1674년 최초로 제작된 이후 1858년에 중국 광둥에서, 1860년에 조선에서 중간되었으나 지도의 목판은 현재 한국에만 남아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곤여전도 목판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 차원에서 귀중한 지도 문화재로 평가받는다. 1986년 11월 29일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정의
조선 후기, 중국 광둥판 「곤여전도」를 바탕으로 조선에서 중간한 세계지도의 목판.
연원

곤여전도 목판(坤輿全圖 木板)은 1674년(현종 15) 선교사 페르디난드 페르비스트(Ferdinand Verbiest: 1623∼1688)가 제작한 「곤여전도(坤輿全圖)」를 1860년(철종 11)에 조선에서 중간하였던 판목이다. 페르비스트는 중국에서 활약하였던 벨기에 출신의 선교사이다. 1672년(현종 13), 그림을 같이 수록한 세계 지리서 『곤여도설(坤輿圖說)』을 편찬해 발간하였고, 1674년에는 서구식 세계지도 「곤여전도」를 제작하였다. 「곤여전도」는 이후 1858년(철종 9) 중국 광둥[廣東]에서 중간되었는데, 1860년의 조선 중간본은 이것을 바탕으로 제작한 것이다.

형태와 제작 방식

목판은 3쪽 양면으로 모두 6면이다. 서반구와 동반구가 들어 있는 지도 부분은 완전히 남아 있는 반면, 양쪽의 지진과 인물, 강과 하천, 산악 등에 대한 해설 부분 목판은 빠져 있다. 「곤여전도」는 시점을 적도상에 둔 평사도법으로 동서 양반구를 분리하여 그린 지도로, 앞서 저술한 『곤여도설』을 세계지도와 결합하였다. 『곤여도설』에는 지도가 수록되어 있지 않아 각 지역을 이해하는 데 불편함이 있었고, 이를 해결하고자 「곤여전도」를 만든 것이다. 대형 세계지도를 제작하고, 지도의 여백에는 『곤여도설』에 수록된 내용들을 그대로 주기로 옮겼다. 또한 『곤여도설』의 뒤편에 수록된 각종 동물이나 선박 그림도 대륙과 해양에 그려 놓았다.

변천 및 현황

「곤여전도」는 1674년에 최초로 제작된 이후 두 번에 걸쳐 중간되었으나, 지도의 목판은 현재 한국에만 남아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곤여전도 목판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 차원에서 귀중한 지도 문화재로 평가된다. 1986년 11월 29일 보물로 지정되어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오상학, 『한국 전통지리학사』(들녘, 2015)
이찬, 『한국의 고지도』(범우사, 1991)

인터넷 자료

관련 미디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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