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5월 ‘공민학교 설치요강’이 제정되면서부터 제도상 정규교육기관으로 인정되어 활발하게 추진되었다.
소년과·성년과·보수과를 두었으며, 지방에 따라 필요한 과만 설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소년과의 수업연한은 2, 3년이며, 입학 자격은 13세 이상이다. 수업과목은 공민·국어·국사·지리·산수·이과·음악·체조·가사·재봉 등으로, 당시의 초등학교와 동일한 과정을 이수하도록 하였다.
성년과는 초등학교에 취학하지 못한 18세 이상된 사람이 입학할 수 있으며, 주로 공민·국어·산수를 1, 2년 동안에 배우도록 되어 있었다.
보수과는 13세 이상된 초등학교 졸업자가 입학할 수 있으며, 공민·국어·국사를 1년 동안에 마치도록 되어 있었는데, 뒤에 고등공민학교로 개편되었다. 설립 운영자는 시·읍·면·이·동 또는 공장·회사·종교단체·성인교육협회·기타 독지가 등이었다.
1949년 12월 <교육법>이 제정, 공포되면서부터 교육 목적의 형식화는 물론, 성격과 수업연한 등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법제화된 당시의 설립 목적은, 초등교육을 받지 못하고 학령을 초과한 자 또는 일반 성인에게 국민생활에 필요한 보통교육과 공민 사회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것으로 고정시켰고, 초등학교 의무교육기간 6년의 절반인 3년으로 단축하여 기본교육을 완성하도록 하였다.
교과는 초등학교에 준하는 과정을 두고 학급당 학생수는 특별한 경우 이외에는 60명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제한하였으며, 수업 일수는 연간 170일 이상이었다. 또한 종래 국문강습소 등에서 실시해 오던 문맹퇴치활동 및 각종 성인교육활동을 일원화하는 동시에, 문맹자에게 의무적으로 우리 글을 습득하게 하기 위한 조처로 성인반을 두었다.
성인반의 수업 일수는 70일 이하로 하였고, 교과는 국어·사회생활·산수·과학을 내용으로 하되 문자 해득을 주로 하였다. 1946년 8월 학생수 77만 7,868명, 교사 1만 2,248명이었으며, 1947년 8월 학교수 1만 5,506개 학교, 학생수 84만 9,008명, 교사 2만 507명이었다.
1950년대 이후 의무교육의 강화에 따라 학교와 학생수가 해마다 줄고 있어, 1950년 100만 명을 웃돌던 학생수가 1978년 1,000명, 1983년 224명으로 줄어들었다.
이와 같이, 학교수가 1977년도에 11개 학교에서 1979년도에 5개 학교로, 다시 1983년도에 4개 학교로 감소하는 것은 의무교육의 확대에 따른 현상이었다.
공민학교 교육은 1945년 8·15광복 이후 크게 성하여 1950년대 초반까지 학생수가 일백만 명을 초과하였으나 의무교육의 강화에 힘입어 그 수는 차차 격감되어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불과 100여 명의 수준으로 줄게되어 1985년부터는 학교수 1개 학교를 그대로 유지하여 1997년 현재까지 학교수 1개교, 학생수 195명으로 퇴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현상이 공민학교 교육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나라의 문맹 인구가 아직도 상당수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