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제주목사, 청송부사, 남원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70년(선조 3)에 다시 관직에 복귀하여 1573년(선조 6)에 지평, 장령, 사간에 제수되었고, 1576년에는 의주목사, 그뒤 호조참의를 거쳐 1578년에는 동지사(冬至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이듬해 황해도관찰사에 제수되었으나 사직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1581년에 제주목사에 제수되었으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청송부사(靑松府使)로 다시 제수되었다. 1585년에 남원부사로 제수된 뒤 얼마되지 않아 파직되었다.
무재(武才)를 겸비하여 국가에 위급한 일이 있으면 큰일을 맡길만하다 여겼는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들 곽재우가 의령에서 일어나 왜를 쳐서 큰 공을 세우니 사람들이 아버지의 기품을 닮았다고 하였다.
참고문헌
- 『명종실록(明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 『동명집(東溟集)』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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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가계 : 『국조문과방목』 卷之七(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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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곽월과 곽재우 : 선조수정실록26권, 1592년(선조 25) 6월 1일. "현풍인 곽재우가 거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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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생원 급제 : 『가정25년병오4월15일생원진사방목증광(嘉靖二十五年丙午四月十五日生員進士榜目增廣)』(평산신씨 문희공파(文僖公派) 충헌공계(忠憲公系) 승지공(承旨公[諱汝述]) 종중(宗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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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七(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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