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은 ‘도를 꿰는 도구[貫道之器]’이다. 즉, 문장은 문장이라는 형식을 빌려 도를 전달하고 설명하는 도구라는 뜻이다. 문장론은 시문의 형식미보다는 이치를 드러내는 데 중점을 둔 것으로, 문장은 도에서 나오고 도는 문장을 통해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한유(韓愈)는 문장을 성인(聖人)의 도(道)를 전하는 도구로 보았다. 유종원(柳宗元)은 문장을 성인의 도를 밝히는 도구라고 보았다. 자신들을 정통 유학의 계승자로 자임하여 도통(道統)과 문통(文統)을 주장하였다. 이 점은 송대(宋代)의 주돈이(周敦頤)가 “글은 도를 싣는 것이다.”라고 제창하였던 문이재도(文以載道)와 유사하다. 그래서 ‘문이재도설’ 혹은 ‘재도론(載道論)’이라고 불렸다.
명도론 혹은 재도론에 앞서서 수(隋)의 왕통(王通)은 『중설(中說)』 「천지(天地)」편에서 “배움이란 것은 두루 암송하는 것을 말하는가? 반드시 도로 관통하여야 한다. 문(文)이란 구차하게 짓는 것을 말하는가? 반드시 의리로 통괄하여야 한다.”라고 하였다. 문장을 도통과 윤리와의 관계 속에서 파악한 것이다. 왕통의 이 관도제의설(貫道濟義說)은 재도론의 선성(先聲)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다. 당(唐)의 이한(李漢)은 「창려문집서(昌黎文集序)」에서 “글은 도(道)를 꿰는 그릇이다.”라고 하였다. 송(宋)의 주희(朱熹)는 이에 대하여 “문(文)은 모두 도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다. 어찌 문이 도를 꿴다는 이치가 있을 수 있는가?”라고 반론을 하였다.
그래서 관도론은 도학가가 주장하는 재도론과는 다르게 문장가가 문학의 가치를 부분적으로 인정한 주장인 것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관도’는 ‘재도’와 구분 없이 혼용된다. 오히려 ‘관도’가 도문일치(道文一致)의 취지를 더욱 잘 전달하는 개념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서거정(徐居正)이 「동문선서(東文選序)」에서 “문이란 관도의 그릇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진동문선전(進東文選箋)」에서 “문사(文詞)는 재도의 그릇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재도론의 예이다. 조선 후기의 이헌경(李獻慶)이 「점필재선생문집서(佔畢齋先生文集序)」에서 ‘재도’는 이치에 닿지 않고 ‘관도’가 옳다고 논한 것은 관도론의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