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광주광역시 북구 생룡동 지내마을 광산노씨 분묘에서 출토된 조선시대의 명기류.
내용
명기류 및 부장품이 나온 분묘는 노우섭(盧優燮 : 광주 북구 일곡동)씨의 18대조 중륜(仲崙), 17대조 한경(漢經), 16대조 옥손(玉孫)의 묘이다. 남포현령(南浦縣令) 증(贈)병조참판을 지낸 중륜의 묘에서는 거의 완벽한 보전상태의 청동 수저 및 젓가락이, 자헌대부(資憲大夫) 한성판윤(漢城判尹)을 지낸 한경의 묘에서는 구리거울[銅鏡]과 철제가위가 출토되었다.
최대출토처인 옥손의 묘에서는 철화백자 남녀 도우(陶偶 : 6점)를 비롯하여 술띠(1점), 유리구슬(7점), 철화백자 마형명기(馬形明器 : 2점), 바리와 받침이 있는 완형명기(盌形明器 : 7점), 대접모양의 명형명기(皿形明器 : 2점), 주둥이가 되바라진 병형명기(甁形明器 : 1점), 꼭지달린 뚜껑을 몸체와 붙여 만든 호형명기(壺形明器 : 4점), 뚜껑을 따로 분리시켜 만든 항아리형명기[大壺形明器 : 2점] 등 모두 32점이 나왔다.
도우는 남녀 각 3점으로 크기는 비슷하지만 표정은 각양각색으로 남자는 상투머리, 여자는 어여머리(머리 위에 얹은 머리)형태이며 양팔을 앞가슴에 모으고 있다. 머리 · 눈썹 · 눈 · 손 등을 철채(鐵彩)로 나타냈는데 일부 도우에는 옷고름과 옷섭까지도 표현하고 있다.
마형명기는 살찐 말의 형상으로 조금 둔해 보이나, 말안장이 선명하며 눈 · 갈기 · 굴레 · 광안 · 다래 · 말발굽 등을 철채로 나타냈다. 연한 회청색의 백자명기류는 대체로 유역이 고르게 입혀졌으며 형태적 균형미도 비교적 잘 갖추고 있다.
광산노씨 명기류는 경기도 창곡리 출토품(10점)이나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 온양민속박물관 · 호림박물관 등의 소장품보다 수량이 많을 뿐 아니라, 종류의 다양함에서도 비교 우위의 차별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명기 부장풍속이 절정을 이루었던 조선 중엽의 작품이다.
참고문헌
- 『중원무릉동조선시대분묘발굴조사보고』(충북대학교박물관, 1983)
- 「우리나라 명기에 관한 고찰」(최호림, 『한양대학교한국학논집』 14, 1988)
- 『문화재도록』(광주광역시, 1997)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