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점. 1990년 광주광역시 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광주역사민속박물관 소장. 이 명기류는 1987년 광주광역시가 생룡동 일대에 우치공원 용지를 조성하던 중 선대의 분묘를 이장하면서 발견되었다.
명기류 및 부장품이 나온 분묘는 노우섭(盧優燮 : 광주 북구 일곡동)씨의 18대조 중륜(仲崙), 17대조 한경(漢經), 16대조 옥손(玉孫)의 묘이다. 남포현령(南浦縣令) 증(贈)병조참판을 지낸 중륜의 묘에서는 거의 완벽한 보전상태의 청동 수저 및 젓가락이, 자헌대부(資憲大夫) 한성판윤(漢城判尹)을 지낸 한경의 묘에서는 구리거울[銅鏡]과 철제가위가 출토되었다.
최대출토처인 옥손의 묘에서는 철화백자 남녀 도우(陶偶 : 6점)를 비롯하여 술띠(1점), 유리구슬(7점), 철화백자 마형명기(馬形明器 : 2점), 바리와 받침이 있는 완형명기(盌形明器 : 7점), 대접모양의 명형명기(皿形明器 : 2점), 주둥이가 되바라진 병형명기(甁形明器 : 1점), 꼭지달린 뚜껑을 몸체와 붙여 만든 호형명기(壺形明器 : 4점), 뚜껑을 따로 분리시켜 만든 항아리형명기[大壺形明器 : 2점] 등 모두 32점이 나왔다.
도우는 남녀 각 3점으로 크기는 비슷하지만 표정은 각양각색으로 남자는 상투머리, 여자는 어여머리(머리 위에 얹은 머리)형태이며 양팔을 앞가슴에 모으고 있다. 머리 · 눈썹 · 눈 · 손 등을 철채(鐵彩)로 나타냈는데 일부 도우에는 옷고름과 옷섭까지도 표현하고 있다.
마형명기는 살찐 말의 형상으로 조금 둔해 보이나, 말안장이 선명하며 눈 · 갈기 · 굴레 · 광안 · 다래 · 말발굽 등을 철채로 나타냈다. 연한 회청색의 백자명기류는 대체로 유역이 고르게 입혀졌으며 형태적 균형미도 비교적 잘 갖추고 있다.
광산노씨 명기류는 경기도 창곡리 출토품(10점)이나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 온양민속박물관 · 호림박물관 등의 소장품보다 수량이 많을 뿐 아니라, 종류의 다양함에서도 비교 우위의 차별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명기 부장풍속이 절정을 이루었던 조선 중엽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