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평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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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제도
후삼국시대 태봉(泰封)의 최고중앙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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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후삼국시대 태봉(泰封)의 최고중앙관서.
내용

904년(효공왕 8) 궁예(弓裔)가 국호를 마진(摩震)으로 고치고 연호를 무태(武泰)라 하며 관제를 정비할 때 설치하여, 내정을 통괄하게 하였다.

그 장관은 광치내(匡治奈)라 하였으며, 소속 관원으로 고려의 시랑(侍郎)격인 서사(徐事)와 원외랑(員外郎)격인 외서(外書)를 두었다.

광평성 아래에 병부(兵部)·대룡부(大龍部)·수춘부(壽春部)·봉빈부(奉賓部)·의형대(義刑臺)·납화부(納貨府)·조위부(調位部)·내봉성(內奉省)·금서성(禁書省)·남상단(南廂壇)·수단(水壇)·원봉성(元鳳省)·비봉성(飛鳳省)·물장성(物藏省) 등을 두고, 각각 사무를 분담하였다. 태봉 멸망 후에 고려의 정치기구로 이어졌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귀족적 통치기구의 성립」(이기백, 『한국사』 5, 국사편찬위원회, 1981)
집필자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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