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학 ()

목차
과학기술
개념
빛에 성질 및 관련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빛에 성질 및 관련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
내용

영어로는 Optics로 통칭한다. 광학은 자연과학 분야 중에서 가장 예로부터 발달하였으며, 현재 이의 학문적 영역은 매우 광범위하다.

광의의 개념으로는 기하광학(幾何光學), 파동광학(波動光學 또는 物理光學)과 양자광학(量子光學)으로 구분하고 있으나 학문적 영역은 분명하지 않다. 더욱이 광학관련 기술을 다음과 같이 좀더 협의로 분류하는 경우가 있다. 즉, 광원, 광검출, 시각·광정보처리, 광설계기술, 광소자, 광계측기술, 광재료, 비선형광학 등이다.

기하광학은 빛의 반사와 굴절의 법칙을 바탕으로 렌즈 또는 거울 등의 면에 상(像)을 현성하고, 현성된 상의 성질은 광선들의 집합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가정하고 이것을 기하학적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빛을 전자파로서 물리적인 성질을 취급하는 것을 파동광학이라 한다. 파동광학에서 보는 빛은 광파(光波)로서 전파(傳播)·간섭(干涉)·회절(回折)·편광(偏光)·분산(分散) 등의 성질을 갖는다.

양자광학은 빛의 스펙트럼과 물질의 광학적 성질을 다루는 분광학의 분야이며, 물질에서 방사 또는 흡수되는 빛의 스펙트럼을 해석하고 물질의 에너지 준위와 천이확률 등을 다룬다.

고대에 빛을 응용하기 시작한 역사는 인류가 거울을 일상생활에 사용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서 서기전 1500년 이상으로 추정한다. 가장 오래된 거울은 나일강 유역의 세소트리스(Sesostris) 2세 피라미드(서기전 1900년) 근처에 있는 당시 노동자의 거주지역에서 몇 가지 공구와 함께 완벽하게 보존된 형태로 발굴되었다.

또한 빛의 본질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서기전 600년부터 300년 기간에 활동한 그리스 자연철학의 창시자들, 피타고라스(Pythagoras)·플라톤(Platon)·데모크리토스(Democritus)·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엠페도클레스(Empedocles) 등이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는 보인다는 감각은 눈과 물체 사이에 어떤 매질이 있고, 이 매질의 운동에 의해서라고 생각하였다.

유클리드(Euclid)는 서기전 300년에 저술한 『반사광학 Catoptics』에서 빛의 직진성을 설명하는 반사의 법칙을 발표하였다. 서기 475년에 서로마제국의 멸망으로 유럽은 오랫동안 과학의 암흑기에 있었으나 광학분야는 아랍 과학자 알하젠(Alhazen)의 노력으로 발전하였다.

그가 서기 1000년경에 저술한 『광학』에서는 입사광선과 반사광선을 매질의 경계면에 세운 수직면과 함께 같은 편면상에서 다루는 반사의 법칙을 완성하였다. 또한 구면거울과 포물면거울에서 광선의 반사를 연구하고, 사람 눈의 해부도를 발표하였다.

광학이 근대광학의 한 분야로서 확립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에 들어서이다. 망원경과 현미경 등의 광학기기가 발달되고, 스넬(Snell, W.)은 굴절의 법칙을 실험적으로 발견하고, 뢰머(Romer, D.O.C.)는 광속도의 유한성을 주장하고 광속을 3.0×{{#309}}㎝/sec 으로 계산하였다. 뉴턴(Newton, I.)은 백색광을 프리즘으로 분산하여 색깔들의 혼합을 설명하고 빛의 입자성을 주장하였다.

거의 같은 시기에 호이겐스(Huygens, C.)는 빛의 파동설을 설명하고 빛의 편광현상을 발견하였다. 이와 같이 17세기는 뉴턴과 호이겐스의 연구를 중심으로 광학을 현저하게 발전시킨 시대이다.

18세기에는 17세기에 비해 정체되었으나 오일러(Euler,L.)와 같은 수학자는 호이겐스의 주장에 동조하였다. 우주공간은 미세하고 희석된 에테르(ether)들이 충만되어 있다고 설명하고, 광원의 진동은 에테르를 진동시켜서 이것들이 빛으로 되어 전파한다고 설명하였다.

또한 색깔을 파의 진동수로 표현하고 색수차는 렌즈들의 조합으로 제거할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 이것은 천체망원경과 광학기기들의 성능을 크게 발전시키는 계기가 된다.

19세기의 광학은 파동설을 완성하는 역사이다. 파동설의 부활을 먼저 시도한 것은 토마스 영(Thomas Young)이며, 그는 간섭의 원리를 발표하고 뉴턴이 설명하지 못한 바의 얇은 막의 색깔무늬 현상을 설명하였다. 같은 시대의 프레넬(Fresnel, A. J.)은 호이겐스가 설명한 파동의 개념과 간섭원리를 복합하여 여러 가지 회절현상을 설명하였다.

또한 프레넬은 아라고(Arago, D. F. J.)와 함께 간섭에 대한 편광효과를 실험하고 빛의 횡파설을 발표하였다. 19세기 중엽에 천체를 응용하지 않고 최초로 광속도를 측정한 것은 피조우(Fizeau, A. H.)의 실험이며 이 때 계산된 광속도는 31만5300㎞/s이다. 이러한 광학분야의 발전시기에 전자기분야에서도 중요한 법칙들이 발견되었다.

특히 패러데이(Faraday, M.)는 전자유도의 법칙을 발견하고, 맥스웰(Maxwell, J. C.)은 전자기현상에 관한 모든 실험적인 지식을 몇 개의 수학 방정식으로 유도하였다.

맥스웰은 전자기는 에테르를 전파하는 횡파라고 단정하고, 전자기파의 속도는 피조우 등이 측정한 광속도와 일치한다고 발표하였다. 맥스웰 이후 빛의 전자파설과 에테르의 존재에 대한 연구는 마이켈슨(Michelson, A. A.)과 몰리(Morely, E. W.)에 의해 진행되었으나, 에테르는 어디에나 퍼져 있는 발광체라는 주장에는 동의를 얻지 못하였다.

에테르의 존재가 대체로 부정적인 시기에 아인슈타인(Einstein, A.)은 상대성이론을 발표하였다. 이 이론에서 에테르의 존재를 부정하고, 빛은 빛을 내는 물체의 운동상태와 무관하게 항상 빈 공간을 일정한 속도로 진행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20세기 광학을 현대광학의 개념으로 새로이 정립하는 계기가 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플랑크(Plank, M. K. E. L.)가 극미세의 현상을 다루는 양자역학의 개념에 근거하였으며, 빛은 작은 미립자들로 이루어졌고 고유의 진동수를 가지고 있다는 새로운 형태의 입자론을 제시하였다.

그 이후 보어(Bohr) 등의 노력으로 양자역학은 충분히 검증되었고, 20세기 후반부터 광학은 응용광학으로서 르네상스 시대를 이룩하였다. 푸리에 해석과 광정보처리 기술, 초고속컴퓨터에 의한 회절한계의 광시스템설계, 이온층연마기술에 의한 초정밀광소자제작, 다층박막코팅기술 등의 보편화를 실현하였다.

또한 레이저의 발견은 섬유광학, 광통신기술, 광재료기술 등을 새로이 창조하는 계기가 되었다. 더욱이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많은 응용광학 기술들이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되었으며, 이것은 스마트 폭탄, 첩보위성, 살인광선, 야간용 적외선기기 등으로 다양하다.

현재 민생용과 산업용의 여러 분야에 응용광학의 부품들이 적용되고 있으므로 가까운 장래에 우리의 생활 환경은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견한다.

우리나라에서 광학교육을 처음으로 시작한 것은 1948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광학 강의가 개설되면서이다. 당시 우리나라의 광학분야는 다른 과학분야에 비해 인력자원과 시설 면에서 매우 열악한 환경에 있었으나 1950년의 6·25 전쟁은 이것마저 황폐화시켰다.

이러한 와중에서도 많은 젊은 과학자들이 외국 유학의 길을 떠났으며, 그들은 첨단 광학분야를 전공하고 1960년대 초부터 귀국하기 시작하였다.

한국원자력연구소와 한국과학기술연구소가 1960년과 1966년에 각각 설립되고, 또한 한국과학원이 1971년에 설치되면서 광학분야는 귀국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연구와 교육환경이 준비되었으며, 1970년대 중반부터 대학과 연구소에는 광학과 레이저의 연구집단들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 초부터 광학분야의 연구는 더욱 활성화되었고, 각 연구그룹들은 기존의 학회(한국물리학회·대한전기학회·대한전자공학회)를 중심으로 활동을 하고, 이의 규모와 분야는 점차적으로 다원화되었다. 한편 관련 제조업체가 창립되기 시작하였으며 레이저가 종래의 제품 기술에 접목되면서 새로운 분야를 창출하였다.

우리나라 광학분야가 국제적 활동무대에 발판을 마련하기 시작한 것은 1975년 8월에 ICO(International Commission for Optics)에 가입하면서이다.

1980년대 초부터 기존의 학회에는 광학 관련 전문위원회가 설립되었는데, 1981년 10월에는 한국물리학회 광학 및 양자전자학 분과위원회, 1983년 8월에는 대한전기학회 파동 및 양자전자 연구회, 1983년 11월에는 대한전자공학회의 광파·양자 전자연구회 및 마이크로파·전파연구회가 각각 설립되었다.

각 전문위원회는 매년 발표논문의 편수는 증가하고 질적 수준은 향상하고 있으므로 1986년 2월부터 세 학회는 합동으로 매년 파동 및 레이저 학술발표회를 개최하기로 하였으며, 합동학술발표회 또한 해를 거듭할수록 성공적으로 개최되었고, 학계와 산업계는 적극적으로 호응하였다. 1989년 10월에는 광학 관련의 모든 분야를 포괄하는 한국광학회를 한국과학원에서 창립하였다.

대부분의 국내 대학은 광학 관련 분야의 기초 교육을, 물리학과 계열은 광학 또는 일반물리학의 과목으로, 공학계열은 광학 또는 광전자공학 등의 과목으로 학기 당 20∼45시간 강의를 편성하고 있다. 매년 2년제와 4년제의 대학과 대학원에서 많은 인력이 배출되어 대학·연구기관·산업체 등에 취업하고 있다.

1999년 12월 현재 한국광학회의 통계에 의하면, 회원 수는 1,400명이므로 창립 당시의 180명에 대해 약 8배, 학술분과 위원회는 광기술, 광자기술, 광정보처리, 광과학, 양자전자, 시각 및 광학의 6개, 국내 학술회의는 7회 개최에 발표논문 수 784편, 국제 학술회의는 2회 개최에 발표논문 수 834편, 국문 논문지는 6권에 게재 논문 수 86편, 영문 논문지는 2권에 게재 논문 수 16편이다.

광학 관련 산업체는 1988년 2월에 한국광학기기협회를 설립하고, 현재 협회 주관으로 광산업의 육성정책 심의와 광학 관련 제품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회원사는 76개사이며 매월 홍보지를 출판하고 있다. 회원사의 업종을 대분류하면 레이저 응용 기기, 렌즈 등의 광학부품, 사진기, 쌍안경 등의 8개 품목이다.

지난 20세기의 과학기술을 ① 트랜지스터 발견과 집적회로 기술, ② 레이저 발견과 광통신 기술, ③ DNA의 2중 난선구조 발견과 생명공학기술로 요약하면, 레이저 발견과 광통신기술은 21세기형의 과학기술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광학은 전자공학 기술과 상호 보완을 하면서 생명공학 발전의 결정적 환경을 제공할 것으로 예견된다. 우리나라의 광산업은 교육 및 연구기관과 학술단체와 함께 삼위일체로서 이루어 발전을 거듭할 것이다.

교육은 고도의 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 연구는 기초연구를 기둥으로 하는 첨단 응용연구 체제, 학술단체는 학문과 산업의 가교에 대한 역할을 각각 지향할 것이다.

참고문헌

『한국광학회10년사 1990-1999』(한국광학회, 2000. 2)
Hand Book of Optics by Optical Society of America(McGraw Hill, 1995)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