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 활동이 그러하듯이 교육과정도 교육활동을 통한 ‘개인과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다. 교육과정이 존재하는 맥락에서 보면, 평생학습 중 교수자의 도움을 받는 교육은 가정, 학교, 기업, 사회, 가상공간 등을 마당(field)으로 하여, 교수자와 학습자가 교육목적과 목표, 교육 내용과 활동 및 경험, 수업, 교육평가와 개선 등을 둘러싸고 상호작용하는 데서 교육과정의 핵심은 드러나며, 이는 공식적 제도(법, 행정, 기관, 시설과 설비, 예산 등)와 비공식적 문화(관례, 전통, 역사 등) 속에서 구현된다.
교육과정(curriculum)의 어원은 라틴어 동사 쿠레레(currere)로 경주로에서 달린다는 데서, 이는 출발과 도착이 있는 달려가는 길(走路, course)을 포함한다. 좁게는 교육활동의 소재나 학생의 성장‧발달을 위해 이수해나가는 교과목들의 목록을 의미한다. 즉, 초기의 교육과정은 문화유산 중에서 엄선한 글(문법, 논리학, 수사학, 문학 등)을 엮어 학교에서 가르치는데 사용한 ‘교과목’ 목록이었다. 교과목은 실제로는 학습 내용이나 활동, 그 경험을 사전에 선정 조직한 것이다. 이는 학교요람이나 수업시간표에 잘 드러난다. 오늘날은 정태적인 교과목이나 교수학습계획을 넘어 교육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계획-실행-성과 평가 및 개선에 이르는 ‘교육의 과정(過程)’으로 의미가 확장되기도 한다. 교육과정에서 계획-실행-성과 중 어느 한 면을 강조하는 것은 정책의 철저한 기획, 여행의 여정 그 자체, 상품의 결과적 품질을 강조하는 것에 비견된다. 학습자 입장에서는 학교의 지도하에 겪는 ‘경험의 총체’이다. 어린 아이에서 사회적으로 제구실하는 어른에 이르는 길에서 만나는 온갖 영향력, 나아가 한 사람의 ‘일생동안 배우고 겪는 것’이다. 교육은 사람을 사람답게 기르고 사회를 사회답게 가꾸는 일과 관계되므로, 공교육의 교육과정은 한 국가사회나 세대를 만든 교육적 영향력이라고 폭넓게 정의할 수도 있다. 그만큼 한 나라의 교육과정은 ‘국민조형력’을 가진다.
교육과정 분야의 기본질문은 “교수자와 학습자가 만났을 때 ‘무엇’을 가르치고 배울 것인가?”이다. 이 질문은 위로는 ‘왜’ 그것을 가르치고 배우는가의 교육목표, 아래로는 ‘어떻게’ 가르치고 배울 것인가의 교수학습이나 수업, 나아가 ‘제대로’ 가르치고 배울 것인가의 교육 성과평가 및 개선과 차례로 관련된다. 즉 교육과정은 위로는 교육목표 달성의 수단이자, 아래로는 교수학습을 위한 계획이자 준비이며, 교육평가의 대상이 된다. 주요 질문에 대한 대답은 ‘현행 교육과정에 대한 비판적 이해와 보다 바람직한 미래 교육과정의 창의적 개발’이다. 이 질문에 따르면 많은 문화유산과 당면한 요구 중에서 어떤 것은 선택‧포함(inclusion)하여 가르치고 배우지만, 다른 많은 것들은 무선택‧배제(exclusion)한다. 포함과 배제의 수준과 범위는 사회, 학문이나 교과, 집단으로서 학습자의 요구에 따라 달라진다. 이렇게 포함과 배제의 엄선(취사선택)을 거친 교육과정은 교육폐단을 개선하는 시정서로서, 온갖 교육활동의 규범적 지침서, 교육을 위한 종합적인 비전과 계획서로서 ‘기준’ 문서로 표현된다. 일반‧공통‧세계적인 국가교육과정기준과 학교교육과정기준, 총론과 각론 기준 문서가 그것이다.
교육과정의 종류를 대분류해보면 교육적 계획‧실행 · 평가‧통제‧예측 등이 가능한 공식적 교육과정, 그것의 그림자로서 긍정적‧부정적인 교육효과를 초래한 잠재적(latent) 교육과정, 또 전통‧정치‧종교‧관행 등으로 의도적으로 삭제‧약화하거나 숨기는 영(零, null) 교육과정으로 나뉜다. 일반적으로는 학교교육에서의 공식적 교육과정을 지칭한다. 공식적 교육과정은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는데, 입체적‧가시적으로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수준(주체), 구성(대상), 단계(활동)의 3차원이 6면체로 교차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먼저 교육과정은 세계, 국가, 지역, 학교 등에서 활동하는 주체에 의해 계획되고 집행된다. 이는 교육과정의 존립 ‘수준(level)’으로서, 학교교육을 위한 계획으로서 교육과정기준은 일반적‧보편적‧세계적인 사항은 ‘국가’교육과정 기준에, 실제적‧구체적‧지역적인 사항은 ‘학교’교육과정 기준에 담게 된다. 학년군이나 교과군에 따라 집권과 분권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국가교육과정 기준이 학교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앙집권적인 편이다.
다음으로 각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혹은 주체의 활동 대상으로서 교육과정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의 ‘구성(component)’영역을 보면, 전체 교육활동이나 분야를 아우르는 총론과 그 부분인 각론으로 이루어진다. 각론은 다시 국어, 수학, 과학 등과 같은 과업지향적인 교과와, 진로, 창의성, 사회성 등과 같이 여러 교과에 걸쳐 이루어지는 범교과 학습주제와, 자치‧봉사‧동아리 활동과 같은 인화지향적인 교과외 특별활동 혹은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이루어진다. 학교나 사회 전반(세계, 국가, 지역)을 아우르는 교육과정 ‘총론’이 낱낱의 과목이나 활동이 이루어지는 학급과 교사의 교육과정 ‘각론’보다 앞서는 편이다.
끝으로 변화하는 교육과정은 교육활동을 따라 계획, 실행, 성과가 평가되고 개선되는 변화 ‘단계(cycle)’의 한 살이를 겪는다. 교육과정은 학교 실행이나 교실 수업 전의 ‘계획’ 부분이 중요한데, 이것은 현행 교육과정에 대한 비판적 이해를 통해 보다 나은 교육과정을 창의적으로 개발하기 위한 정책결정, 변화 결정에 따른 새로운 교육과정의 연구 개발, 교육과정을 구체적인 교과서 참고자료 등으로 개발하는 교재 개발 등으로 나뉜다. 결국 공식적 교육과정은 크게 보면 24개의 존립수준(주체), 23개의 구성영역(대상), 3~5개의 변화단계(활동)가 6면체로 교차하는 모양으로 나타낼 수 있다.
교육과정은 사회, 학문이나 교과, 학습자의 요구를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절충하여, 그 목표, 정의, 내용, 활동, 유형 등이 결정된다. 사회와 학습자의 요구에 기초하여 교육의 일반목표나 교육과정 ‘총론’을 기획하고, 학문과 교과의 요구에 기초하여 교육의 특수목표나 교육과정 ‘각론’을 구성하는 편이다. 사회는 문명, 세계, 국가, 산업 등으로 교육과정에 실용주의적 요구, 학문은 개념과 원리나 법칙 등으로 이루어진 구조주의적 요구, 학습자는 지식이나 의미의 주도적 구성 여부인 구성주의적 요구의 영향력을 종합 절충하여 실제로 교육과정은 다양한 모양으로 나타난다. 즉 사회의 실용적 요구는 직업, 사회적응, 사회개조 교육과정 등으로, 학문의 구조적 요구는 교과, 학문, 성취 중심 교육과정 등으로, 학습자들의 요구는 경험(아동), 인간, 인지 중심 교육과정 등으로 다양한 유형으로 나타나며, 중핵 교육과정이나 구성주의 교육과정은 이들을 ‘종합 절충’한 것들이다.
학습자들이 배우는 교육과정은 ‘모든’ 학습자의 기초 기본 공통적인 것에서 점차 ‘각 집단’의 서로 다른 심화 특수 전문 직업적인 것으로 옮아간다. 학교의 교육과정은 공통필수에서 서로 다른 것들 중에서 선택해서 이수해도 되는 상이선택으로 옮아간다. 이런 이행은 학습자의 발달이나 교과 특성에 따라 다르게 이행되는데, 체육, 예술 등과 같이 소질과 적성이 조기에 발현되고 전성기가 일찍 도래하면 비교적 어린 나이에, 기술공학, 과학, 수학과 같은 분야는 그 다음에, 인문사회 분야는 가장 늦게 분화하여 상이선택 교육과정으로 옮아가는 편이다. 모든 학습자의 공식적 최종 교육과정은 직업준비 교육과정이다. 즉 현대산업사회에서 학교교육은 직업준비교육으로 마무리되어야 온전한 것이 되고 있다.
원시시대에는 미신이 교육의 근본이었고, 생활이 교육의 내용이었으며, 경험이 교육의 방법이었다. 산천과 들판이 그들의 교실이었고, 고기잡이, 사냥, 농사, 전쟁 어느 때든지 학습의 시간이었으며, 집단의 연장자가 그들의 스승이었다. 또한 성년식을 통하여 교육이 이루어지기도 했는데, 이를 통해 인내와 극기를, 어른에 대한 복종과 존경을, 가족을 부양하는 것을 배웠다. 이는 그 사회 집단의 존속과 발전을 위한 사회적 · 정치적 · 도덕적 의미를 지닌다.
부여와 삼한 시대에는 모계제도가 부계제도로 변화되었고, 계급이 발생하였으며, 봉건제사회로 나아가는 시기였다. 남자인 가장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를 갖게 되었고 대가족이 정치의 기본이 되며, 따라서 이 가족을 유지하는 질서인 가족주의적 도덕이 중요했다. 도덕교육뿐만 아니라 계급의 발생으로 인해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데 복종이 필요하게 되었고, 예의를 중시하였다. 그리고 특권계급, 관리들만이 그 시대의 지식을 배웠고 그로 인해 그들만이 교육권과 학습권을 가졌다. 왕과 특권지배층이 다수의 미신과 문맹에 허덕이는 노예를 다스리기 위한 교육과정이 있었다. 농업생산이 주요한 국책이고 민생이 본위가 되어 있는 때이므로 현실생활에 필요한 실천교육이 자연적으로 요구되었고, 백성은 근면, 순종에 대한 실천 지식을 학습하였다. 한편, 당시 백성들은 전쟁에 참가하는 병역의 의무를 가졌고 부족국가는 국가보호의 중요성을 백성들에게 가르쳤다.
삼국은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확립하면서, 3국간, 외세와 잦은 전쟁으로 무를 숭상한 편이고, 한민족으로 통일되어 수준 높은 불교 및 유교 문화를 이룩하였다.
① 삼국: 우리나라의 제도적 학교교육은 고구려의 소수림왕 2년(372)에 설립된 태학(太學)에서 그 효시를 찾을 수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태학에서 자제를 교육했다는 짧은 기록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당시 사회에 익숙한 재래식 교육에 중국의 학제를 참고하여 세운 것으로 보인다. 태학은 귀족 자제를 대상으로 한 관리양성의 관학 교육기관으로 유교 경전을 주로 가르쳤다. 오경삼사(五經三史)를 비롯하여 『삼국지(三國志)』, 『진춘추』를 주요 교재로 하였고, 의학, 역학, 산학 관련 서적 및 악서(樂書), 병서(兵書) 등도 읽었으리라 본다. 한편, 서민을 대상으로 하는 경당(扃堂)이라는 사설 교육기관이 서울과 지방에 있었는데, 여기서는 문무일치의 교육을 실시하였고, 오경과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 『삼국지』, 『진춘추』, 『옥편』, 『자통』, 『자림』, 『문선』 등을 읽고 무술을 익혔다는 기록이 있다. 수 · 당과 경쟁에서 문(文)보다 무(武)를 숭상한 편이었다.
일찍부터 중국 등 여러 나라들과 교류하면서 백제는 고구려나 신라 못지않은 훌륭한 문화를 누리고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교육이 발달하였을 것이라 짐작된다. 『일본서기(日本書紀)』와 『고사기(古事記)』에 의하면, 백제인 아직기(阿直岐)가 일본에 건너가 응신천황 태자의 스승이 되었으며(284년), 왕인(王仁) 박사가 일본에 초청되어 『논어(論語)』와 『천자문(千字文)』을 전하였다. 백제에는 일찍부터 모시박사 · 의박사 · 역박사 · 오경박사 등 각종 전문 박사제도가 있었는데, 박사는 교육을 담당한 관직명이었다.
중국 문화의 유입이 상대적으로 늦었던 신라는 ‘화랑도’라는 고유한 교육제도를 두었다. 신라의 화랑도교육은 ‘세속5계’를 통해 용감하고 실천적인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도덕적 · 정서적 · 신체적 · 사회적 · 군사적 훈련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교육과정에 있어서도 지적인 면보다는 활동적인 것을 주로 하여 무술연마와 독서를 통한 이성도야, 노래와 풍류 등을 통한 정서도야, 지리조사와 명승고적순례 등을 통한 심신단련과 호연지기를 기르는 것을 교육내용으로 하였다. 화랑도는 유 · 불 · 도 삼교의 사상을 포함하는데, 오상 · 육예는 유교의 가르침이고, 삼사 · 육정은 불교의 사상이었다.
② 통일신라와 발해: 삼국을 통일하여 비로소 ‘한민족’을 형성한 통일신라의 신문왕(682) 때 설립된 국학(國學)에서는 유교의 경전을 주로 하여 3과로 나누어 교육을 실시하였다. 『논어』와 『효경(孝經)』을 필수로 하고 『예기(禮記)』, 『주역(周易)』,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모시(毛詩)』, 『상서(尙書)』, 『문선(文選)』을 추가로 두었으며, 그 밖에 의박사, 산박사, 제업박사, 천문박사, 누각박사 등 다양한 기술교과 분야가 있었다. 국학의 교육목적은 유학의 교수와 연구 및 관리양성이었으며, 입학 자격은 15~30세 사이 6두품 출신의 귀족 자제였고, 수업연한은 9년이었다. 국학을 졸업하면 대나마 혹은 나마의 자격이 주어졌다. 우수한 학생을 당나라에 유학시켰는데 일부는 당의 빈공과에 급제하여 벼슬을 지냈다.
『신구당서』와 『해동역사(海東繹史)』 등에 적힌 내용으로 미루어볼 때 발해는 고구려의 문물제도를 계승하였고 당의 관제를 상당 부분 모방하였다. 통일신라처럼 많은 왕족과 민간인 자제들을 당으로 유학 보냈고, 빈공과에 급제하여 당의 관료가 된 이들도 있어 해동성국으로 칭하여졌다. 또한 정혜 · 정효공주 묘지를 보면 귀족층 여성들도 유교 경전 교육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관학(官學)과 사학(私學)의 유교적 교육과정을 통해 주로 관료가 양성되었고, 상대적으로 유교적 문을 숭상하고 무를 천시하였고 기술 등을 잡학으로 여겼다.
① 관학: 중앙의 국자감(國子監)과 학당 및 지방의 향교가 있었다. 국자감은 일종의 종합대학에 해당하는 것으로 6학이 있었는데 이는 유학부와 기술학부로 나뉜다. 유학부에는 국자학 · 태학 · 사문학이 있었고, 기술학부에는 율학 · 서학 · 산학이 있었다. 관학인 향교와 학당은 중등 정도의 경전 위주 교육을 실시하였다. 지방 학교로서 향교는 성종 6년(987), 12목(牧)에 경학박사와 의학박사 각 1명을 파견하여 지방 관리와 백성의 아들을 가르치게 한 제도로 점차 군(郡) 단위까지 전국적으로 설립되었다. 과거 준비가 중요한 목적이었으므로 제술(製述: 작문)과 명경(明經: 효경, 논어, 9경)을 위주로 의학과 율학 · 서학 · 산학 등의 교과도 교수되었다. 학당은 국자감의 3학에 입학할 수 없는 서민을 위한 교육제도였다. 송나라의 영향으로 문을 숭상하고 무를 천시한 결과 국방의 위기와 무반정치를 초래하였다.
② 사학: 사학으로는 십이도(十二徒)와 서당이 있었다. 최충은 은퇴 후 사학을 설립(1055년)하여 9경 3사와 제술을 가르쳤고 이에 많은 학생들이 모여들어 그들을 수용하기 위해 9재를 짓고 사학의 이름을 ‘문헌공도(文憲公徒)’라고 하였다. 이를 본받아 11개의 사학이 더 세워져 ‘12도’라고 불렸다. 이는 국자감 유학부와 유사하고 오늘날 사립대학에 해당한다. 사학에서는 구경과 삼사 및 시문을 주요 교육내용으로 하고 매년 여름에 승방(僧房)을 열어 하과(夏課)를 닦는 등 교과뿐만 아니라 예의범절에서도 좋은 교육성과를 나타냈다. 과거의 시험관인 ‘지공거(知貢擧)’들은 십이도의 교수들이 적지 않아 과거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십이도를 선호하였다. 서당은 기초교육을 제공한 초급의 사설 교육기관이었다.
양반사대부가 집권층으로 엄격한 신분계급질서 속의 교육은 과거(科擧)를 통한 개인의 입신양명과 지배층의 관료양성 등이 주목적이었다. 교육내용도 유학경전에 치중되어, 동아시아와 세계 문명의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때가 많았다.
① 관학: 관학에는 성균관, 향교와 사학(四學), 기술교육기관, 왕실교육기관 등이 있었다. 최고 학부인 성균관의 주요 교과는 『소학』‧『논어』‧『맹자』‧『중용』‧『대학』의 4서와 『시경』‧『서경』‧『주역』‧『예기』‧『춘추』의 5경 위주로 한 경서와 제사(諸史)의 강독 및 제술 등이었다. 『소학』은 유교사회의 도덕규범 중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내용을 수록한 유학교육의 입문서여서 모든 교육기관의 필독서였다. 반면, 노장(老莊), 불서(佛書) 및 백가(百家), 잡류(雜類) 등은 유교사상에 비추어 금기시되었다. 원점절목(圓點節目)‧권학사목(勸學事目)‧학교사목(學校事目) 등 성균관의 학칙에는 교육과정과 성적 평가 방법 및 일상생활에 관한 생활규칙 등이 담겨있다. 중등단계의 관학인 향교나 사학도 성균관과 유사한 학제와 교육내용으로 사서‧오경‧제술 등 유학을 가르치는 것 이외에 지방의 향풍을 순화하고 백성을 계도하는 역할도 담당하였다. 여씨향약과 각종 ‘행실도’ 등이 교재로 사용되었다.
기술교육에는 역학, 의학, 산학, 율학, 천문학, 지리학, 명과학과 기타 화학, 도학, 악학, 자학, 무학 등이 있었다. 이를 ‘잡학(雜學)’이라 할 만큼 천시하여 중인 이하의 신분이 주로 배우고, 과거를 통하여 자격을 부여받거나 해당 관서에 등용되었다. 서구의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은 이 분야에서 일어난 것인데, 조선시대에는 사농공상 신분질서에 사로잡혀 과학기술의 변화가 더뎠다. 또한 왕실의 특수교육기관인 경연에서는 국왕에게 학문과 치국의 도를 강론하고 때때로 국가 정책에 대하여 논의하였으며, 세자시강원은 왕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곳으로 유학의 경서와 역사를 가르쳤고, 종학은 세자를 제외한 왕족(종친)의 교육을 담당하는 곳이었다.
② 사학: 후기로 갈수록 양반 계급의 증가로 교육에 대한 수요도 함께 증가하여 사대부와 유학자들이 운영하는 사학이 번창하였다. 중등교육을 담당한 서원은 전통적인 유교경전과 문장 공부가 중심을 이루는 것으로 각각의 서원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대개 소학, 사서‧오경, 가례(家禮), 역사, 성리학, 격몽요결, 근사록(近思錄) 등이 교수되었다. 초등교육기관인 서당은 천자문에서 시작하여 『동몽선습(童蒙先習)』, 『유합(類合)』, 『훈몽자회(訓蒙字會)』, 『명심보감(明心寶鑑)』, 『통감(通鑑)』, 『소학』, 『사서삼경』, 『사기』, 당송문(唐宋文) 및 당률(唐律)이 교수되었다. 서당은 청소년들에게 한문의 독해 능력을 부여하고 유교에 대한 초보적인 지식을 보급하는 데에도 기여하였다.
③ 농업과 여성 교육: 조선시대에는 농업을 중시 여겨 다양한 농업기술 지침서를 간행하였는데, 고려 말 발간되었던 『농상집요(農桑輯要)』를 우리말로 번역하였으며(1414년), 세종 시기에는 『근농교서(勤農敎書)』를 보급하기도 하였다. 서당의 한문 독해 교육과 결합하여 농서의 독해에 지장이 없는 농촌지식인들을 형성시키고, 이들은 농업지식의 보급자로 활약하였다. 조선사회에서 여성은 제도 내에서 교육받기 어려웠고, 가정에서도 유교적 가치관에 근거하여 정절과 남녀 내외와 같은 이념이 정착되는 수단으로 교육이 활용되었다. 설순이 편찬한 한문본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소혜왕후가 찬술한 『내훈(內訓)』은 후대에도 여성들에게 널리 읽혔다. 중상류층 부인의 수학 내용 및 범위는 『사기』, 『논어』, 『시전』, 『소학』, 『여사(女四書)』 등이었다.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에는 여성도 편지와 소설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나아졌으나 대부분 문맹이었다.
조선후기 천주교 전래와 더불어 현실적‧실용적 학풍이 일었으나 천주교 탄압과 더불어 수백 년간의 전통 유교적 학풍을 이겨내지는 못하였다. 개신교의 전래로 교육, 의료, 종교기관 등에서 서양식 과학기술에 눈뜨기 시작한 개화기는 현대적 의미의 학제와 교원양성, 교과목 및 교과서의 근간이 잡혀가던 시기였으나, 서양문물을 먼저 받아들여 제국주의 식민지개척을 모방한 일제에 의해 강점당하였다.
1870년대 개항과 함께 신교육제도를 받아들여 각급학교에 대한 법령이 공포되었으며, 교과목이 마련되었다. 소학교령(1895.7)에 따르면 초등교육기관인 소학교에 심상(尋常)과 3년과 고등과 2~3년을 설치할 수 있었다. 심상과의 교과목은 수신 · 독서 · 작문 · 습자 · 산술 · 체조로 하되, 체조를 빼고 한국지리, 역사, 도화, 외국어에서 한 과목 혹은 몇 과목을 과할 수 있게 하였으며, 여학생에게는 재봉을 가르쳤다. 고등과의 교과목은 수신 · 독서 · 작문 · 습자 · 산술 · 본국지리 · 본국역사 · 이과 · 도화 · 체조와 여학생의 재봉이 있었다. 외국어를 더하거나 외국지리, 외국역사, 도화 중에서 한 두 과목을 뺄 수 있었다.
중학교(1899)는 수업연한을 7년으로 하고 이를 다시 심상과 4년과 고등과 3년으로 나누었으나, 실제로 고등과가 설치된 학교는 없었다. 심상과에는 윤리 · 독서 · 작문 · 역사 · 지지(地誌) · 산술 · 경제 · 박물 · 물리 · 화학 · 도화 · 외국어 · 체조, 고등과에서는 독서 · 산술 · 경제 · 박물 · 물리 · 화학 · 외국어 · 법률 · 정치 · 공업 · 농업 · 상업 · 의학 · 측량 · 체조로 정하였다. 학부가 주로 편찬한 교과서는 국어, 수신‧윤리, 국사, 지리, 산술 등이었다.
교사양성을 위한 사범학교(1895)는 본과 2년, 속성과 6개월로 편제하고 부속소학교를 두었으며, 1899년에는 본과의 수업연한이 4년으로 연장되었다. 외국어학교는 일어학교와 한어학교의 수업연한을 3년, 영어, 법어(法語: 프랑스어), 아어(俄語: 러시아어), 덕어(德語: 독일어) 학교는 5년으로 하였으며, 학과목은 해당 외국어로 된 보통학과 한문으로 독서 · 작문 · 한국역사 · 지리 등을 가르쳤다.
차별적인 직업준비중심의 질 낮은 실업교육이 행해졌고, 3·1운동 이후 느슨한 유화정책을 거치면서, 말기에는 우리 민족을 일본에 철저히 동화 · 말살시키려고 우리말과 글을 빼앗고 2차 대전에 학생들까지 동원하였다.
① 무단통치기(1910~1919): 일제는 조선교육령을 제정(1911.8)하여 학제를 전면 개편했는데, 한국인이 다니는 학교 수와 그 수업 연한을 줄이고 교육내용은 실용적인 것으로 하였다. 한국인에게 최소한의 교육을 제공하여 자립과 독립심을 갖지 못하게 하면서 직업전선에 조기에 투입시키려는 우민화교육정책의 일환이었다.
보통학교에서는 조선어 수업시간이 줄었고 대신 일본어를 국어라 하여 수업시간을 늘렸다. 수신과는 국법 준수, 공덕 숭상, 공익 진력 등이 강조되었는데 이는 일본법을 준수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고등보통학교의 교과목은 수신, 국어(일본어), 조선어 및 한문 등이었는데, 교과들을 통합하여 한국인의 전문적인 지식 습득을 방해하였다. 수학, 외국어 시간도 대폭 축소되었으며 우리 역사와 지리는 전혀 가르치지 않았다. 정숙하고 근검한 여자 양성을 강조한 여자고등보통학교의 교과목도 유사했는데 수신과를 통해 예의범절을 더욱 강조하였다.
② 문화통치기(19191931): 3·1운동을 거치면서 유화적인 통치 방침[내지(內地)준거주의]에 따라 학제는 일본과 유사해졌다. 그러나 한국인 학교에는 모두 ‘보통’을 붙였고, 한국 내 일본인 학교는 소학교, 중학교, 고등여학교라고 칭하였다. 46년제 보통학교 교과목의 ‘조선어, 일본역사, 지리, 재봉, 수공’에서 변경이 있었다. 낮은 질의 실용적 교육이라는 비난을 무마하기 위하여 역사, 외국어 등 인문교과의 시수를 다소 증가시켰다가 다시 실용적인 방향으로 개정(1929.6)하여 보통 수준의 지식 및 기능과 직업 교과를 강조하였다. 고등보통학교에서 교과들을 분리하고 영어 시수를 늘렸지만 조선어 시수는 감축하였다. 실업교육의 수업연한은 3~5년으로 연장되었다. 전반적으로 실업적인 지식, 기능뿐만 아니라 상식, 인격 도야를 위한 보통학과의 비중이 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회유책의 일환이었다.
③ 민족말살통치기(1931~1945): 제3차 조선교육령을 개정(1938)하여 학교의 명칭을 ‘내선일체 방침’에 따라 한국과 일본에서 통일시키고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 교육을 강화하였다. 공립학교에서 한국인과 일본인의 공학이 허용되었고 교원양성과정도 통합되었다. 어려운 시기에 「한글맞춤법통일안」이 제정(1933년)된 것은 교육을 위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조선어’ 이외에는 양국에서 동일했다.
1941년 초등학교령에 따른 6년제 국민학교의 교과에서는 ‘수신, 국어, 국사, 지리’가 국민과로, ‘산술, 이과’가 이수(理數)과로, ‘박물’과 ‘물리 및 화학’을 이과로, ‘체조, 무도’가 체련과로, ‘음악, 습작, 도화, 공작, 가사, 재봉’이 예능과로, ‘농업, 공업, 상업, 수산’이 직업과로 통합되었다. 중학교에서는 실업교육의 비중이 높아졌고, 전문적 지식교육 과목을 폐지하고 생활교양교육인 공민과를 새로 개설하였다. 일제강점기 실업교육은 황국신민화 정책에 부응하는 산업기능인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고, 학교교육은 전시(戰時)에 동원되었다.
① 일제강점기 전기 교육진흥운동: 선각자들은 부국자강을 위한 능력을 기르기 위해 학교를 설립하고 신학문을 받아들이려 하였다. 일제식민 지배가 굳어지면서 한편으로는 교육을 입신출세의 발판으로 이용하려는 풍조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일본식 교육을 받은 학력이 있어야 은행, 기업체 등에 취업할 수 있었고, 임금에도 학력차가 반영되었다. 1910년대에는 교육구국운동의 일환으로 일본 등지에서 귀국한 한국인 유학생을 중심으로 새로운 지식과 교육사상을 수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1920년대 전반기에는 ‘교육진흥운동’이 일어나 조선총독부에 대한 식민지 교육 개선 요구, 합법적인 학교설립운동, 교육진흥운동 등이 다양하게 나타났다. 교육진흥운동의 핵심은 각급 사립학교 설립 운동이었는데 일제의 3면1교주의(三面一校主義)정책에 대응한 보통학교 설립운동이 주를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일제의 사립학교 설립요건 강화라는 방해로 인해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민립대학 설립운동도 일제의 관립대학인 경성제국대학 설립으로 인해 저지되었다.
② 학생 운동과 야학: 학생운동에서는 서구에서 성행한 마르크스주의 사조를 도입하여 이론적 · 과학적으로 체계화시켜 나갔다. 조선학생총연합회(1924), 사회주의 색채가 짙은 조선공학회(1925.5), 이를 계승한 조선학생과학연구회(1925.9)가 설립되었다. 이들은 학생 강연 활동과 농촌계몽 운동에 주력하였고, 식민통치에의 저항은 동맹휴학이었다. 이후 광주학생운동(1929)에서 정점을 이룬 후, 신간회의 해체와 더불어 조직 내외의 압력과 분열로 1930년대 이후에는 소규모 독서회와 같은 그룹운동으로 방향이 전환되었다. 1930년대 후반에는 사회주의적 지식인 운동이 대내외적인 한계 상황에 직면하여 민족주의적인 운동으로 전환되었다.
1920년대부터 야학이 성행하였는데 그 설립자는 주로 지방유지, 노동 · 농민단체, 청년회 · 종교단체였다. 야학의 교사들은 지역의 선각자나 진보적인 지식인 계층이었으며 스스로 야학을 설립하여 무보수로 가르치는 경우도 많았다. 야학의 교육내용은 반일애국사상을 고취하고 일반문화 및 지식수준 향상을 위한 교육이었다. 이 때 야학에서 일본어교육은 일제의 탄압을 방지하고 서적들을 번역 · 교육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노동야학운동은 1930년대 이후 개량적인 문자보급운동 등과 혼재되면서 점차 위축되었다.
③ 간도 지방에서의 민족교육: 다른 한편 구국독립을 위한 민족교육이 간도지방에서도 진행되었다. 이 지역으로 망명한 민족주의자들은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민족교육운동에 열중하였고 북간도에서 최초 근대교육기관인 서전서숙(1906년)을 시작으로 민족운동가, 종교인, 일반민간인 등이 간도 각 지방에 많은 사립학교를 설립하였다. 1920년대에는 사회주의 영향으로 공산주의자들도 이에 합류하였다. 이는 3·1운동 이후 무력투쟁보다 교육문화계몽을 통한 실력양성운동과도 관련되었다. 교육내용은 조선역사와 지리, 조선어, 창가, 체조교육 등으로 민족의식 및 항일사상 고취에 주목적을 두었으며 근대식 신교육에도 힘썼다. 당시 중국과 일제의 간섭에도 불구하고 북간도 교육기관은 독립운동의 토대가 되었다. 3부가 통합(1929년)된 국민부는 행정조직과 군사조직을 갖추고 반일자치활동과 친일세력 소탕에 주력했고, 군사양성의 군정과 자치기관의 민정을 분리하였다.
남한은 미군정, 북한은 소군정의 영향을 받아 각각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체제에 맞는 교육이 시작되었다. 이념적 좌우 대립이 심각하였고, 북한의 남침으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으면서 이후 남북한의 교육은 체제와 이념에서 정반대 방향으로 달라졌다. 일제 식민지교육을 청산하면서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와 대외개방적인 시장경제 자본주의와 사유재산 보호, 인권 존중과 사상 및 언론의 자유 등을 강조하는 체제를 정착시키는 교육에 힘썼다. 각급학교의 교육과정도 변화를 거듭해오고 있다. 교육기회의 점진적 확대는 교육과정의 내용적 특성을 대중적인 것으로 변화시켜왔다. 학교의 공식적 교육과정에 영향을 미친 국가교육과정 문서의 변화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미군정기에는 학교교육 통해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이식하고 식민지교육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였다. 교육에 대한 긴급조치(1945.9.10)로 초등학교의 수업이 시작되어 우리말과 글과 역사를 가르치게 되었다. 미군정 학무국에 의한 교육방침에 따라 교수 용어는 일본어 대신 한국어로, 또 조선의 이익에 반하는 교과목들, 특히 일제황민화교육을 주도했던 과목들이 일체 금지되었다. 그럼에도 일본식 교육을 받은 교원들에 의해 이후에도 오랫동안 주입식 교육, 지필시험, 성적 서열과 체벌 등이 계속되었다. 미군정청 학무국에 ‘교수요목제정위원회’를 조직하여 교수요목(敎授要目: 어떤 과목에서 가르칠 교수내용 목록)을 발표(1946.11)하고 한글로 된 교과서 편찬에 주력하였다. 교수요목의 특색은 ① 교과지도내용의 상세화, ② 분과주의 채택과 체계적 지도를 통한 지력배양, ③ 홍익인간의 이념에 의한 애국애족교육과 일제잔재의 제거 등을 들 수 있다. 급히 마련한 교수요목은 교과별로 가르칠 주제를 열거하였고, 내용과 수준이 학생들의 지적능력에 비해 너무 높았다. 교육과정 운영은 학교장에게 융통성을 발휘하게 하였으므로, 운영의 실제에 있어서는 학교마다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정부 수립 후 1949년에 교육법이 공포되어 교육의 체계를 갖추고자 하였으나 6·25전쟁의 발발로 우리나라 교육은 또다시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이 시기의 교육과정은 유교적 봉건주의, 일제식 군국주의, 분단과 한국전쟁으로 반공이념이 가미되었다.
전쟁으로 파괴된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현실생활을 개선하고 향상시킬 사회 개선의 의지를 강조하였으며 정부 수립 후 제정 · 공포한 교육법의 교육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교육과정을 기획하였다. 이는 미국식 진보주의, 생활중심의 교육사상을 반영한 것이다. 학교에서 펼쳐지는 교육과정을 ‘학교의 지도 하에 학생이 겪는 모든 경험’으로 보고 교과활동과 특별활동의 2대 영역으로 구성하였다. 사회생활과를 중학교까지 설치하고, 초 · 중학교의 이과를 자연 혹은 과학으로 바꾸어 광역형 교육과정 운영방식을 도입하였으며, 실업교과의 비중을 강화하여 학교교육의 실용적 용도를 높였다.
초등의 교과 편제는 교수요목시대와 같았으나 전쟁 직후로 체육 대신 보건을, 반공 · 도의 · 실업교육을 강조하였으며, 아직 자유민주주의를 학습하기에는 사회적 여건이 충분하지 않아 대신 반공교육을 강조한 도덕과목을 신설하여 주 1시간씩 필수로 부과하였다. 중학교 교육과정에서 교과활동은 국어, 수학, 사회생활, 과학, 체육, 음악, 미술, 실업가정과였으며, 선택교과는 실업가정, 외국어, 기타 교과였다. 전쟁으로 인한 피폐를 극복하기 위하여 반공과 국방력 강화, 도의 및 실업교육을 강조하여 이들 교과목에 총 이수시간의 30%가 할당되었다. 고등학교는 국어(1) · 사회(일반사회 · 도덕 · 국사) · 수학 · 과학 · 체육 · 음악 · 미술 · 실업가정과를 필수로 제시하고, 선택교과로 필수과목의 높은 수준과 함께 교련 · 철학‧교육 · 전문과정 등을 제시하였다. 실업고의 직업교육은 교사나 실험 · 실습시설 등의 조건들이 구비되지 않아 주로 진학위주의 교육으로 운영되었다. 1958년에 마련된 실업고 관련 교육방침에도 학년별 연간수업시간과 각 학과별 교과목들, 계열별 필수 교과목 등만을 밝힐 뿐 교과의 지도 목표나 내용 및 방법 등 구체적인 제시가 없었다. 중‧고교 입학시험이 있어서 국어 영어 수학에 더 많은 시간을 할당하는 형편이었다.
1963년 각급 학교의 교육과정이 공포되었고, 한글전용에 따른 정부시책과 국민교육헌장의 선포로 국민교육의 지표가 명시됨에 따라 1969년 9월 국어 · 사회 · 실업 · 가정 · 미술 · 반공 · 도덕 · 특별활동이 부분 개정되었다. 해방 후 도입된 생활중심, 경험중심의 진보적인 교육사조를 실천면에서 적극 도입한 시기였다. 종전에 시간배당, 교과과정을 별도로 제정하였던 것을 묶어서 각급 학교의 종합적인 교육활동의 계획으로서 ‘교육과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고, 총론과 각론으로 나누어 체계적으로 구성되었다. “총론”은 개정 취지, 일반목표, 개정의 요점, 각급 학교 교과별 시간 배당, 운영 계획 및 지도상의 유의점을 담았고, “각론”은 각 교과별 교육과정으로 개정의 요점, 목표, 지도내용, 지도상의 유의점, 학년 목표 등이 담겼다. 특히 학교간의 연계성과 아울러 교과간의 통합성이 강조되었다. 초등과 중학교의 교육과정은 교과활동과 반공 · 도덕생활 및 특별활동의 3대 영역, 고등학교는 교과활동과 특별활동의 2대 영역으로 전체 구조를 갖추었다.
초등학교에서 사회생활은 ‘사회’, 보건은 ‘체육’으로 변경되어 사회와 체육은 초중고를 일관하는 명칭이 되었다. 전후 베이비붐으로 입학생이 많았으나 학교 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초등의 경우 하루 23부제 수업을 하는 학교가 많았는데, 그럴 경우 시간 배당 기준의 70%에 해당하는 시수를 공부하였다. 한편 중학교 입시로 주입식 · 암기식 · 문제풀이식 교육이 적지 않았으나, 19691971년에 걸쳐 중학교 무시험진학이 단행되어 초등교육의 정상화로 한발 다가섰다.
중학교에서는 경제 발전과 관련하여 과학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움으로써 과학입국의 의지를 기르게 하였다. 한편 중학교 무시험 진학, 평준화로 인해 학생들의 개인차가 커지고 학습부진에 대처하는 노력이 기울여졌다. 고교 교육과정은 인문계와 실업계로 구분되어 각각의 교육과정이 별도로 제정되었다. 특히, ‘교과과목 단위시간기준’이 제시되면서 고교의 학습지도계획은 원칙적으로 단위제(졸업을 위한 이수할 총학습량으로, 1단위는 50분을 1시간으로 17주 동안 수업량)에 의거하되 학교의 실정에 따라 학년제도 병용할 수 있었다.
일반고에는 진로에 따라 4개 계열(인문 · 자연 · 직업 · 예능)이 개설되었으며, 진학생과 사회진출생의 교과목과 졸업을 위한 총이수단위수(인문과 예능 204, 자연 214, 직업 208 단위)를 달리하였다. 대입시는 대학별 단독시험제(19641968년)와 예비고사와 대학별 본고사 병행(19691972년)의 형태를 보였다. 이전보다 입시교과의 비중이 컸고 비평준화 속에서 대입 경쟁, 재수생, 사교육 등으로 입시가 교육과정과 수업을 왜곡시켰다. 실업고 고육과정의 체계화가 처음으로 이루어져, 교과 편제 및 단위 배당은 계열별로 제시되었다. 총이수단위는 204~222단위이며, 특별활동은 전체의 5% 이상을 배당하였다. 보통교과보다 전문교과과목에 50%이상, 이론학습에 40%이하와 실습에 60%이상을 시간 배당하였다. 경제개발을 뒷받침하는 실업교육이 강조됨에 따라 자동차, 전자과 등이 신설되고, 화공, 광산과의 실습장이 정비 · 확장되었다. 생산성을 강조한 교육과정으로서 과학, 기술 및 직업교육의 실질적 성과에 중점을 두었다.
국민교육헌장 선포, 농어촌 잘 살기 운동인 근면 · 자조 · 협동의 새마을운동, 1972년 ‘10월 유신’ 선언 등을 배경으로, 중학교(1973.8), 국민학교(1973.12), 일반계 고교(1974.12), 실업계 고교(1976.2)의 교육과정이 차례로 개정되었다. 교육과정은 정치적으로 유신과업의 추진, 사회경제적으로 기술인력의 양성, 이론적으로 학문중심 교육으로의 접근을 지향하였다. 이 교육과정에서는 지식과 기술의 획득과정에 관심을 기울였다. 각급 학교는 교과활동과 특별활동의 2대 영역으로 전체구조를 갖추고 반공 · 도덕교육을 교과활동 속에 포함시켰으며, 특별활동을 통한 ‘국민교육헌장’ 이념의 실천을 지도하는데 주력하였다. 국적있는 교육을 강조하여 국민학교 · 중학교에서 한자교육을 폐지하고 국사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중 · 고등학교에서는 실과교육을 필수로 편제하였다.
초등교육에서는 문교부의 장학방침을 과학기술교육의 진보에 두고 실험 · 실습 · 노작 기능 교육을 강화하였다. 또 중학교에 절대평가가 도입됨으로써 집단 내에서의 서열보다는 학습목표의 도달도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학령인구가 늘어나 학교증설과 함께 분교도 많이 생겨났으며, 도시로의 전학생도 증가하였다.
중학교 교육이 보편 · 대중화됨에 따라 전국적인 통일성과 함께 획일성이 심하여졌다. 수출지향의 산업화로 실과(기술과 가정)교육을 필수로 하였고, 기술과목을 실업․가정에 포함하여 남학생은 기술을, 여학생은 가정을 필수로 하고 가사를 분리하여 선택과목으로 두었다. 새마을운동이 학교교육에도 적용되어 학교 주변 및 유원지 주변의 자연보호운동(꽃길과 꽃밭가꾸기, 퇴비증산)과 새마을 학생야영을 통한 자율, 협동정신 함양, 건전가요 함께 부르기, 1인 1통장 갖기 운동을 실시하였다.
일반고의 경우 각 과정별로 ‘필수 및 필수선택교과과목’과 ‘과정별 선택자유교과과목’으로 대별되어 과목들이 나열되었고, 각 과목들에는 문교부에서 제시한 ‘기준단위수’와 ‘학교채택단위수’가 병기되었다. 학기별 이수단위는 36단위, 3년간 총 216단위로 동일했다. 고교평준화 정책이 도입(1974)되기 시작했고, 대입시는 예비고사와 대학별 본고사가 병행(1973~1980)된 형태였다. 한편, 예체능 방면의 소질을 지닌 학생들을 위하여 예술고와 체육고가 설립되어 학교 유형의 다양화에 따라 특수목적고의 교육과정이 등장하였다.
‘실업고등학교’에서 ‘실업계 고등학교’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보통교육을 통한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 향상과 실업에 관한 기초적 기능 기술 연마를 통한 기술인 양성을 교육목표로 밝히고 있다. 전문교과의 이수단위가 102~154단위로 67%까지 증가하였으며, 산업체와 연계하여 일정기간 현장실습의 이수, 산업의 분화에 따라 학과 안에서 다시 분화된 전공과정을 개설할 수 있었다. 고교를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 산업체 부설 특별학급(1996년 2월 폐지)이나 학교가 개설되기도 하였다.
정치적으로 1980년 봄, 민주화운동이 군사 쿠데타에 의해 좌절된 시기로, 유아교육과 대학교육 기회 확대, 중학교 의무교육의 단계적 추진, 예체능계를 제외한 과외전면금지조치, 일반고의 확대, 과학 · 외국어 · 예체능 분야의 조기 영재교육을 위한 특수목적고 신설 증가 등이었다.
초중등학교 교육과정과 교과서의 연구 · 개발을 한국교육개발원에 위촉하였다. 새 교육과정기준 구성의 기본방향은 국민정신교육의 체계화, 전인교육‧진로교육‧과학기술교육의 강화, 교육내용의 양과 수준의 적정화에 두고 건전한 심신의 육성, 지력과 기술의 배양, 도덕적인 인격의 형성, 민족 공동체 의식의 고양을 강조하였다. 종래의 교과, 경험, 학문으로 이어지던 교육과정에 보다 미래 지향적인 과학교육과 인간중심 교육을 강조하였다. 길러야 할 인간상으로 건강한 사람, 심미적인 사람, 능력 있는 사람, 도덕적인 사람, 주체적인 사람을 제시되었다.
초등교육에서는 1~2학년에 바른생활(도덕+국어+사회)과 즐거운생활(체육+음악+미술), 슬기로운생활(산수+자연) 교과서를 간행하여 통합 교육과정의 길을 열었고, 학년이 올라감에 따라 교과목을 분리하여 점진적으로 학습이 심화되도록 하였다. 중학교 교육은 1986년 기준, 초등졸업생의 99.4%가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기존의 선택적 교육이 아닌 최소수준의 보편 · 보통교육으로 변화되었다. 중학교는 12개의 교과목을 제시하였고, 실업 · 가정교과에서 필수인 생활기술(남)과 가정(여)을 3학년에서 제외하고, 2·3학년에서 한 과목만 선택하도록 되어 있던 농 · 공 · 상 · 수산업과 가사를 3학년에서만 이수하도록 하였다. 학생수련회활동이 활발하여 전적지나 명산 등을 찾아 숙박하며 협동정신, 지도력 함양, 국가관 확립 등을 기르도록 하였고, 1988년에는 이전까지 임명제로 선발되었던 학생회장을 전교생이 참석한 가운데 직접 · 비밀 선거로 선출하게 되었다.
고교 교과는 일반계 학생들이 주로 이수하는 보통 교과와 실업계 및 특수목적계 학생들을 위한 전문 교과로 구분되었다. 모든 고교생들이 공통과목을 설정하여 이수하게 함으로써 자아실현에 기여할 수 있는 일반교육을 강화하였다. 보통교과 아래 공통필수와 선택과정으로서 인문사회 과정과 및 자연과정별 교과 및 과목에 따른 단위수가 제시되는 편제를 이루었다. 1982년 이후 과학 분야의 영재들을 위한 과학고가 설립되기 시작하여 각 시‧도로 확대되었다. 대학입시에서 재수생 누적과 사교육의 폐단을 들어 대학본고사가 폐지(1981)되었고, 과외가 금지되었으며, 졸업정원제가 시행되어 대학입학정원이 대폭 늘어났다. 대학입학 예비고사와 고교 내신이 병행(19811985)되다가 암기위주의 교육에 대한 비판으로 후기에는 대학입학 학력고사‧고교내신 성적‧대학논술이 병행(19861987)되었다. 대학에서 실시하는 논술고사에 따라 고교 교육과정이 규정되는 경향이 있었다.
실업계고 교육과정은 총204216단위 중에서 보통교과가 82122단위로 상대적으로 비중이 증가했다. 급변하는 사회에 보다 넓게 적용될 수 있는 전이가가 높은 보통교과를 강조한 것이다. 4개 유형의 공고를 특성화와 일반의 2개 유형으로 축소 · 개편하였다(1984). 기술검정의무의 완화, 동일계 대학입학 특혜 축소, 기초이론과 실습 강화, 전인교육을 통한 인격과 기술을 갖춘 우수한 기술인 양성에 주력하고자 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실업계를 외면하거나 졸업생의 대학진학이 늘어났다.
교과서 사용유효기간이 도래함에 따라 주기적으로 개정에 임한 제5차 교육과정은 개선이 필요한 부분만 개정하는 ‘부분개정’을 기본 원칙으로 하였으며, 전체적인 형식과 내용은 제4차 교육과정과 상당히 유사하다. 이 교육과정기에는 기초교육의 강화, 21세기 정보화사회에 대응하는 교육, 교육과정 효율성 제고를 위해 자주적인 인간, 창조적인 인간, 도덕적인 인간, 건강한 인간의 네 가지 특성을 겸비한 사람을 기를 것을 목표로 설정하였다.
초등교육의 경우 저학년의 통합 교육과정에서 국어와 산수는 독립시키고, 1학년 3월 한 달간 적응을 위해 ‘우리들은 1학년’을 도입하였다. 훨씬 더 융합된 통합교육과정으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교육과정의 시간 배당 기준에서도 1, 2학년이 분리되어 제시되었다. 교과서는 1교과 다교과서 체제를 도입하여 말하기, 듣기, 읽기, 산수 익힘책, 바른생활 이야기 등으로 보조 교과용 도서가 출현하여 교과서 종수가 대폭 늘어났다. 4학년 사회과 교과서 일부는 시 · 도 단위 지역별로 개발하여 교육과정의 지역화를 시도하였다. 특별활동은 종전과 달리 1학년부터 시간배정을 하였다.
중학교 교육과정에서는 수학과 과학 시간을 늘리는 대신 실업 · 가정의 이수시간은 57시간에서 46시간으로 감소했고 신설된 기술 · 가정은 남녀 공통으로 이수하였다. 자유선택시간이 주당 2시간까지 늘어나 학교장의 기본철학에 따라 특정교과목을 지도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 강제적인 자율학습제를 폐지하였고, 주요 과목에 대한 형성평가제를 실시하여 학습자별 심화보충학습을 강화하였다.
고교의 경우 인문계와 실업계 교육과정이 하나의 문서에 통합적으로 제시되는 형태인데, 국민교육헌장 전문(全文)이 제시되었고, ‘총론’과 ‘각론’이 각각 제2장과 제3장으로 명시적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전 교육과정과는 달리 과학, 체육, 예술 계열의 각론이 다른 계열과 동일하게 안내되고 있다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전반적인 체제는 교과를 ‘공통필수’와 ‘과정 및 계열선택’으로 이원화시켰으며, ‘공통필수’ 과정은 주로 1학년에, 과정 및 계열선택 과목은 주로 23학년에 배치하였다. 대입시는 대학입학 학력고사와 내신 성적 병행(19881993)의 형태를 보인다. 대학 논술고사가 폐지되었으며, 고교 내신 성적을 30% 이상 반영하는 것이 의무화되었고, 과목별 가중치가 도입되었다. 대학진학률이 높아져 고교 학습활동을 대입에 반영하였으나 고교 교육과정이 대학 진로와 연계되지는 못하였다. 학생 수와 학급 수가 증가하고 공립 일반고의 증설과 평준화정책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외국어 분야의 영재들을 위한 외국어고가 1990년대에 사립을 중심으로 확대 설립되면서 평준화 정책의 지속에 대한 논쟁이 점차 불거지기 시작하였다.
교과서 유효사용기간은 6년을 넘기지 못함에 따라 주기적 개정이 이루어진 시기이다. 정치적으로는 문민정부가 출범하였고, 동구권의 개혁 개방에 따라 세계화가 강조되었으며, 별도의 교육과정개정연구위원회를 구성하여 교육부 주도로 연구 개발한 교육과정이다. 별도 위원회는 정치적 영향과 교과의 이익추구 갈등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고 기대한 것이다. 한편, ‘국민학교’라는 명칭이 ‘초등학교’로 개칭되었고, 그간 교과서 앞에 실리던 국민교육헌장이 사실상 폐기되었다.
제6차 교육과정에서는 다가올 21세기를 대비하여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교육의 질 향상을 기하려 하였다. “기초로의 회기”를 지향하는 기초학습 능력의 신장과 아울러 교과교육지도의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려는 점에 주력하였다. 교육과정 결정의 분권화를 꾀함으로써 교육내용의 획일성 · 경직성 · 폐쇄성을 해소하고, 지역과 학교의 재량권을 확대하려고 교육과정 편성 · 운영권의 일부를 시 · 도 교육청 및 학교에 이양하였다. 교육과정 편제는 교과, 특별활동, 학교재량시간으로 구성되었다.
초등 3학년 이후 주1시간씩을 ‘학교재량시간’으로 교과 및 특별활동의 보충 · 심화 또는 학교의 독특한 필요나 학생의 요구 등에 따라 창의적인 교육활동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학교와 교사의 교육과정적 자율성이 확대된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이 강조되어, 학교교육과정편성운영계획서가 작성되기 시작했다. 또, 1990년대 초반부터 ‘열린교육’이 급속히 확대되었는데, ‘개별화된 학습자중심교육’으로 활동중심, 주제통합, 학생의 자율적 자기관리와 주도성, 수행평가와 특성기술 등이 강조되었다. 컴퓨터, TV 등 교실정보화기기의 확충과 학교 시공간의 트임과 운동장 개방과 학교건물의 현대화가 진행되었다. 비록 지속적인 확산에는 실패하였으나 초등교육에서 학습자의 권한이 대폭 강화되었다.
중학교 교과는 필수교과목(11개)와 선택과목(3개+기타)으로 편성되었는데, 독립교과로 편제되어 있던 국사를 사회과에 포함하고, 기술 과목과 농 · 공 · 상 · 수산 · 가사 과목을 묶은 기술 · 산업이 신설되어서 필수과목이 2개 줄었다. 영어 교과는 어학실 설치가 확산되어 언어구사능력 향상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일반계 고교 교육과정은 이전의 것이 일반계, 실업계, 과학계, 체육계, 예술계 고등학교별로 편제를 분리하여 제시하던 형태였다면, 6차에서는 보통교과와 전문교과로 구분한 개방형 체제로 전환하였다. 대입시는 대학수학능력시험‧대학별고사‧고교내신성적 병행(1994~1996)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내신성적반영 비율은 40% 이상으로 의무화되었으며, 내신등급은 10등급에서 15등급으로 세분화되었다. 학생들은 치열한 내신 경쟁으로 학생 자살이나 자퇴 등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게 되었다. 고교 평준화정책의 존폐나 유효성에 대한 논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고교체제의 다양화와 자율화 정책이 검토되었다. 특성화된 고교와 자율학교 지정이 확대되면서 평준화의 붕괴와 일반고 위기의 전조들이 나타났다.
실업계 고교의 경우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경제호황으로 공업기술 인력에 대한 과수요 현상이 나타났으나 학생들의 지원율은 떨어졌다. 전문대가 활성화되고 공고출신 인력에 대한 기업 내부 및 사회적 대우가 낮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정부는 1990년, 진학고와 직업고의 숫자를 5:5로 조정하려고 공업계 중심의 실업고를 늘리고, 일반고에 직업반을 두어 비진학생을 흡수하였다. 공고는 2·1체제가 도입되어 현장과의 연계와 실습교육이 강조되었다. 대학진학의 증가와 산업의 고도화로 실업고 졸업생의 취업률은 낮아졌다.
5·31 교육개혁을 주도한 대통령 자문기구인 교육개혁위원회(1994~1997)의 발의로 한국교육개발원을 중심으로 교육과정 개정 작업이 이루어졌다. 신설된 한국교육과정평가원(1998)은 그 후속연구를 수행하였다. 이 교육과정은 6차 교육과정이 적용되는 시점에서 발의되고 연구 개발되었다는 점에서 학교와 교사들로부터 시의성(時宜性)이 지적되었다. 신자유주의, 수요자중심의 시장경제 논리가 강조되었고, 교육과정이 전면적 · 일시적 · 단주기적으로 개정되어 변화가 내실 있게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며, 교육과정 결정에서 학교의 권한을 상대적으로 강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학교현실을 무시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 교육과정은 21세기 세계화, 정보화 사회를 살아갈 학생들에게 학습에 대한 자기주도학습 능력을 기르고, 창의력과 정보처리 능력을 배양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학생의 수준을 고려한 수준별 교육과정, ‘고객 만족’ 학교경영에 걸맞은 교육과정 편성․운영 체제를 취하려고 하였다. 또한 교육과정 편성․운영의 분권화를 진전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시 · 도 교육청뿐 아니라, 시 · 군 · 구 교육청, 학교, 학생의 교육과정적 역할 및 결정 권한을 강화함으로써 특색 있는 학교교육과정 편성 · 운영을 권장하였다. 합법화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원 교사들에 의한 교육운동이 활발해졌고, 한국근현대사에 대한 교육이 강화되었다.
교육과정 편제는 교과, 재량활동, 특별활동으로 이루어졌다. 학생들은 초등학교 1학년에서 고등학교 1학년까지 국어, 도덕(바른생활), 사회(일반사회, 지리, 국사, 세계사 등), 수학, 과학, 기술 · 가정(실과), 체육, 음악, 미술, 외국어(영어)의 10개 교과를 중심으로 10년간의 ‘국민공통기본’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고교 2~3학년에서는 자신의 능력, 소질, 적성, 진로에 따라 선택 중심 교육과정을 이수하도록 하였다. 일반고에서는 인문 · 자연 · 예체능 · 직업 과정을 폐지하고 다양한 유형의 학생 개인별 교육과정을 지향하였다. 학급당 학생수를 35명 이하로 하여 중등교사자격을 가진 이들이 연수를 거쳐 초등에 임용되기도 하였다. 교실의 정보화와 교과서에 대한 투자가 늘어서 외형체제가 혁신되었다. 교과 재량과 창의적 재량이 합쳐진 재량활동은 교육 대상과 운영 시간을 확대 개편하였다. 특별활동은 자치활동, 적응활동, 계발활동, 봉사활동, 행사활동의 5개 영역으로 편성되었고, 전일제 봉사활동 등도 늘어났으며, 대입시에 그 결과가 반영되기도 하였다.
초등에서조차 조기유학이 늘어났고 세계화의 필요에 따라 영어회화 등을 강조하여 주당 34학년 2시간, 56학년 3시간씩 운영되었다. 주5일 수업제가 월2회로 늘어나 시수 감축에 따른 교육과정 내용재구성에 대한 논의가 많았다. 맞벌이, 조손, 탈북자 가정 등의 증가로 가정의 교육력이 약해져 방과후학교, 농산어촌 연중 돌봄학교, 주말과 방학 프로그램 등 복지적 돌봄 프로그램의 개설이 늘어났다. 중학교의 교과 재량활동 연간 수업시수는 102시간 이상으로, 한문, 컴퓨터, 환경, 생활외국어, 기타의 선택과목 학습 시간에 우선 배정하고, 나머지 시간은 국민공통기본교과의 심화․보충학습 시간으로 활용하게 하였다. 창의적 재량활동에는 연간 34시간 이상 배정하도록 하였으나, 사실상 선택과목이나 수준별 수업을 위한 시간으로 전용되어 그 특성을 살리지는 못하였다. 체육, 예술, 국제, 대안 중학교가 확대되었으나, 학업중단자의 사회적응교육 등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였다.
고등학교의 교과는 보통교과와 전문교과로 분류되며 보통교과는 국어, 수학, 외국어, 교련, 교양 등 13과로, 전문교과는 체육, 예술, 외국어, 과학, 국제 등 10개 교과로 구성되었다. 대입시는 대학수학능력시험, 대학별고사(논술), 학교생활기록부, 교사추천서, 심층면접 등이 다양한 조합으로 전형이 매우 복잡해졌다(1997~2007). 수능결과는 원점수보다 과목별 표준점수와 백분위 개념이 도입되었고, 내신에서 수행평가가 확대되었으며 절대평가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여서 9등급 체제로 전환되었다. 고교 다양화 차원에서 외고, 과고, 영재고, 국제고 등의 특목고와 함께, 공사립에서 자율학교 지정이 확대되었다. 일반고 교육과정의 진로별 특성화나 다양화가 없어 교실붕괴 등 위기가 초래되었다.
실업계 고교는 국민공통기본교과에 배당된 필수 55단위를 포함한 보통교과를 82단위 편성, 전문교과는 82단위 이상 편성․이수하도록 하였는데, 내용이 유사하거나 관련된 보통교과의 선택과목과 전문교과를 교체하여 편성․운영할 수 있도록 명시하였다. 또한, 공고 2·1체제를 운영하는 학교는 단위수를 조정 · 운영할 수 있었다.
주기적 교육과정 개정을 끝내고 수시개정에 따라 해당 연도를 붙이기 시작한 ‘2007 개정 교육과정’은 사회적으로 주5일 근무제의 정착을 예상하고 개정 작업을 시작하였으나 현실이 그에 미치지 못하여 신설된 보건, 언어구사능력 중심의 영어, 사회 등 각론 중심의 개정이 이루어졌다. 2009년부터 연간 17시간 이상의 ‘보건’교육이 실시되었고, 실업고는 전문계 고등학교로 명칭이 달라졌다. 범교과 학습주제가 16개에서 35개로 확대 · 제시되었다.
세계화 시대의 글로벌 창의인재를 기르기 위해 학습자의 발달에 따른 교육중점을 강조하는 ‘학년군’과 지나치게 세분화된 교과목을 묶는 ‘교과군’을 도입하였고, 특별활동과 재량활동이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통합 개칭되어 자율‧동아리‧봉사‧진로 활동으로 구성하였다. 또한 중등의 경우 학기당 15~20개 과목을 분산 이수하던 것을 교정하기 위해 집중이수가 제안되었고, 고교에서는 진로집중과정을 도입하였다. 특히 국민공통기본 교육과정을 9학년까지 적용하도록 변경하여, 교과목의 국민교육적 기능은 중학교 3학년에서 마무리하도록 했다. 교과(군)와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시간 배당은 학년별이 아닌 학년군별 운영 시수를 제시하여 학년군 내에서 융통성 있게 수업 시간을 운영하도록 하였다. 한편, 사교육비를 절감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수능 시험문제를 EBS방송교재에서 70% 이상 연계 출제하고, 체육에서 소홀히 한 ‘보건’교육이 법제화되면서 분리 교수․학습되었다. ‘고교 다양화 300’으로 기숙사 있는 공립고 150개, 자율형 사립고 100개, 취업보장형 마이스터고 50개를 선도적인 학교로 육성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중등학교에 교과교실이 확충되었다.
기본 교과와 관련된 180단위 중 학생의 적성과 진로를 고려하여 편성할 수 있는 학교자율과정의 폭이 64단위에서 후기에 94단위로 확대된 점, 학기별 집중이수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는 등 학교의 교육과정 구안 및 운영과 관련하여 책무성 및 자율 영역이 크게 확대된 것과 고등학교 전 학년에 걸쳐서 학생선택중심과정의 폭이 넓어졌다. 한국근현대사에 이어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좌편향 시비가 일었고, 이를 국정화로 전환하다가 좌절되었다. 이 시기의 대입시는 ‘고교 학생부 중심의 수시 7080%, 수능 성적 위주의 정시 2030%’라는 선발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고교 내신과 더불어 학생들의 진로적합성, 학교생활기록부에 유의미하게 기록된 사항들이 종합적으로 대입시에 반영되는 형태가 확산되고 있다.
직업고는 일반적인 특성화고와 산업수요맞춤형(마이스터)고로 대별되었다. 특히 후자는 무작정 대학으로 진학하는 폐단을 줄이고 선취업 후진학하는 풍토를 정착시키고자 대폭 지원한 것이었다. 이들 학교에서는 취업기능강화사업의 일환으로 현장직무능력 향상을 위한 방과후 학습, 학부모 및 학생의 취업 마인드를 제고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 등을 통해 기업에서 요구하는 인재 양성, 고졸자의 취업활성화에 주력하였다. 그러나 고교 졸업 후 대학으로 진학하는 풍토는 여전하여 대졸 실업자 양산이 사회문제화 되었다.
교육과정기준이 파격적인 만큼 편성․운영에 어려움도 많았는데, 예를 들어, 집중이수의 경우 구체적으로 대상 학교급, 교과목, 이수시기, 교원수급 등이 특정되지 않아 여러 가지 폐단이 발생하였다. 이에 교육과정 부분 수정을 통해 학기당 이수과목에서 예체능 과목을 제외시켰다. 또한 고교의 경우 일반고의 교육과정은 여전히 고1의 공통교과목 위주로 설계되었고, 고 2~3학년의 선택이 어떤 방식으로 대학의 다양한 전공과 연결될 수 있는가에 대한 전망이나 제시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일반고는 여전히 문이과 양분, 국영수 편중, 대입시의 진로별 연계나 타당성 부족, EBS 수능연계 방송에 지나치게 경도되는 등의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한국직업능력개발원, 한국과학창의재단 등이 유관한 교육과정 개발과 교과서 검정에 참여하였고, 인정도서가 대폭 늘어 각 시도교육청에 업무가 역할분담 되었다. 또한 ‘교육내용 적정화’와 관련해서도 학습자의 학습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전체 교과 내용을 약 20% 감축하려고 하였으나, 교과 교육내용으로서의 ‘성취기준’, 성취평가제를 위한 ‘성취기준’, 학업성취도 문항개발을 위한 ‘성취기준’이 각각 개발되어 제공되면서 학교 현장에서는 혼란을 겪기도 하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어느 지역이나 교육과정의 대부분은 국가의 형성과 봉건적 계급사회에서 소수 귀족 양반 및 관료를 양성하기 위한 체계적인 고등교육이 두드러졌다. 중고급 숙련 기술을 배우고 발휘하는 영역에서 중인계급의 장인훈련과 함께 일상인들은 나날의 생활과 노동 속의 가르침 형태로 계속되었다. 당시 체계적인 교육과 교육과정은 상대적으로 상층에는 유형으로 분명했고, 중하층계급에는 암묵지 같이 무형으로 흐릿했다. 교육과정학은 19세기 중반 농업 봉건 신분계급사회에서 도시 대중 산업사회로 넘어오면서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현대적 의미의 본격적인 교육과정은 서양의 산업혁명이나 국민국가 성립 이후, 우리나라의 경우 19세기 말 이후 서양식 근현대교육이 들어서면서 시작되었다. 제도상 · 문서상으로는 근대시민국가의 형성과 함께 국가수준의 공식적인 교육과정이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고 볼 수 있다. 민족국가들은 부국강병을 위하여 국민들에게 국가의 정체성과 애국심 및 존립을 위한 튼튼한 안보를 우선으로 교육하며, 나아가 국력을 결집시키기 위한 사회적 자본의 확충과 교육복지를 꾀하고,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경제적으로 쓸모 있는 교육을 실시하고, 더하여 국가적 위신을 높이는 예술과 문화 및 스포츠 활동을 위한 교육에도 힘을 쏟는다.
제도화된 학교교육은 다음세대가 만들어갈 문명의 방향을 제시한다. 교육과정은 시대문명과 방향에 대한 가치판단을 반영하므로 우주관, 자연관, 생명관 및 역사관, 국가(사회)관, 인간관에 대한 일정한 견해를 기초로 한다. 이 점에서 교육과정은 교육 발전의, 나아가 국가사회 및 인류 문명 발전의 견인차로서 구실해왔다. 역사 발전과 함께 교육도 ‘소수’의 특권적 존엄‧가치‧발전 기회를 보장한 계급사회의 지배층을 위한 교육으로부터 ‘모든’ 사람의 보편적 그것들을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확대․발전해왔다. 모든 사람을 위한 초등교육, 중등교육에서 고등교육으로 점차 교육기회가 확대되면서 교육과정에 대한 학문적 탐구가 본격화되었다. 학문으로서 교육과정학은 어린 아이들이 건실한 성인 민주시민으로 길러내는데, 즉 유‧초‧중등학교와 대학 나아가 기업 및 평생학습기관의 교육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도와주기 위한 것이다.
사람의 일생을 두고 보면 유아기에는 대체로 ‘건강한 생활과 즐거운 생활’에서 시작하고, 점차 ‘바른 생활’로 삶의 자세를 갖추어, 청장년기에는 학업이나 직업에서 ‘슬기로운 생활’을 더 많이 배우고 사용한다. ‘슬기로운 생활’에 해당하는 공부는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의 영향을 받은 기술, 과학, 수학 등이 대표적이다. 직업이 중요한 산업사회에서는 학교에서 상대적으로 실용성 높은 과학기술계 교과들을 더 많이 가르치기를 요청한다. 세계화는 외국어와 다문화적 상황에 대응하는 능력을 요구하며, 지능정보화는 이와 관련된 언어와 기술 및 과학의 비중 확대를 요구한다. 즉 유아학교에서는 체육과 예술을 중심으로 놀이와 활동이 통합되고, 초등학교에서 생활에 긴요한 기초 기본 교과들을 배우며, 고교까지는 정보와 기술, 공학과 과학, 수학 등을 제대로 배움으로써 학습자들은 현대산업사회에 적응이 수월해진다. 인문사회 교과들은 장년기 이상에서 더 잘 학습되는 특징이 있으며, 노년기에는 다시 ‘건강한 생활과 즐거운 생활’을 추구하게 된다.
초‧중등학교 교육과정의 점진적 변화상을 보면 보통 전반부는 전체 사회, 모든 학습자에게 거의 모든 분야와 교과를 성, 계층, 지역, 인종, 언어 등 ‘어떠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균등하게’ 기초 기본 교양 교육과정이 제공된다. 그 다음 단계는 사회 각 분야, 각 집단에게 일부 분야나 교과를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적성과 진로에 따라 알맞게’ 심화, 특수, 전문 직업 교육과정이 제공된다. 더 나아가 개별화된 개인맞춤형 교육과정이 제공되겠지만, 일반적인 학교교육에서는 개인보다 집합체로서 유사한 특성을 지닌 집단(계열, 학과, 전공 등)을 대상으로 교육과정이 기획된다. 또한 교육과정은 시계열적으로는 문명, 세계, 국가, 사회, 생애 발달주기를 종축sequence로 하고, 공간적으로는 사회 각 분야나 학문 분야 등을 횡축scope으로 하여 교직된다. 종적 학습 수준과 횡적 학습 범위를 교직하면 학습하는 깊이나 분량이 결정된다.
교육과정을 단기적인 목표로 보면 상급학교 ‘진학’이나 사회의 ‘직업’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교양교육으로 시작하지만 공식적 최종 교육은 직업준비교육이다. 일반적인 대답은 분야별 지식과 정보, 기술과 능력, 태도와 가치, 사회성 등을 공부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를 종합하여 학습자가 직업 · 학업 · 일상 생활의 문제에 직면하였을 때 인격적‧사회적 · 협동적‧창의적으로 해결해나가는데 동원되는 개인의 잠재적 능력으로서 ‘역량’이 강조되기도 한다. 이는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면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의 성취결과에 더 강조점을 둔 것이다. 또한 학습자 중심을 강조하면서 구성주의적 교육과정 논의가 저변에 깔려 있으며, 이는 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에서 교수자의 참여와 결정권을 강조하는 추세와 맞닿아 있다.
교육과정의 내용과 활동 및 경험을 결정하는 것은 사회, 학습자, 학문과 교과의 요구이다. 사회와 학습자의 요구에서 교육의 일반적인 목표가 나오고, 이를 잘 달성하기 위하여 교과들이 동원된다. 교육이 개인과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다면 사회와 학습자들의 요구로부터 교육의 일반목표가 나오고, 이것은 ‘총론’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총론 문서는 교육의 방향과 목표, 각론의 구성, 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 및 지원 지침 등 3개 영역으로 구성된다. 교육과정은 사회의 세계화, 다원화, 다문화, 과학기술과 지능정보화, 지구촌 환경과 인구 변화 등을 반영하여 변화한다. 사회는 학습자에게 적응과 변화를 강조한다. 교육과정의 수혜자인 학습자의 연령과 발달은 교육과정 설계에서 교수학습가능성의 기준 역할을 수행한다. 학습자의 요구는 타고난 흥미와 관심, 소질과 적성(좋아하는 공부), 길러진 발달과 수준, 장애극복정도(잘하는 공부), 나아갈 학업과 직업 진로(할 필요가 있는, 해야 하는 공부) 등이다. 교과와 학문의 요구와 관련하여 유․초등학교에서는 미분화‧통합되어 있지만 상급학교로 진학할수록 분화‧전문화하여 교육과정에 반영된다.
학문과 교과의 요구는 주로 ‘각론의 교과목’ 형태로 나타난다. 역사적으로 보면 교육과정은 서양의 7자유과나 동양의 4서3경처럼 교과목의 형태를 띠고 나타났다. 기본적인 교과는 그것이 목적으로 하는 바에 따라 국어, 외국어, 사회, 예술, 수학, 과학, 기술, 체육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전자의 4개 교과는 이념이나 가치가 깊이 박혀 있고, 후자의 4개 교과는 상대적으로 가치중립적이고 실용적인 면이 농후하다. 더 묶어서 국어․외국어․수학처럼 학습의 기초가 되는 도구교과, 사회나 과학과 같은 내용(주지)교과, 기술․예술․체육과 같은 (생활)기능교과로 나누기도 한다. 교과는 상급학교로 갈수록 세분화되는데 이 경우 분화된 과목들은 일정한 목적에 따라 유기적이고 종합적인 계열, 과정, 학과, 전공, 학부 등으로 엮어진다. 교육과정의 체계성, 계열성 여부는 곧 교과의 통합과 분화의 문제이다. 위 단계에서 아래 단계의 교육과정을 보면 ‘통합’되어 있고, 아래 단계에서 위 단계 교육과정을 보면 ‘분화’되어 보인다.
일반목표 달성을 위하여 교과와 특별활동은 특수한 교육목표로 뒷받침한다. 학교의 교육과정을 구성하는 범위에 대한 견해는 크게 학교의 지도하에 이루어지는 교과학습 영역과, 학교의 지도하에 이루어지는 교과학습 및 생활지도의 총체라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학교교육을 교과교육에 국한시킨 것으로 대학에서 사용되는 교과과정, 학과과정과 같은 전근대적인 개념이며, 후자는 진보주의 이후 학습자의 생활과 경험 및 요구를 존중하는 입장에서 확대된 것으로 교과교육 및 생활지도, 특별활동 등을 모두 다루는 것으로 오늘날의 초중등교육에서는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
학문으로서 교육과정학은 교육학의 다른 분야에 비해 모학문을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분야이다. 물론 교육사, 교육사회학, 교육철학, 교육심리학 및 각 교과나 분과 학문(인문사회과학, 자연기술공학, 예술 및 체육 등)과 영향을 주고받는다. 교육과정학은 각종 교육과정에 대한 이론적 ‘이해’와 실제적인 교육활동을 위한 각종 기준이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유파로 나뉜다. 1970년대까지는 주로 교육과정을 실제적으로 개발하는 세력이 우세했지만, 근래에는 각종 사조思潮에 따라 교육과정을 텍스트로 한 비판적 이해 집단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비판적으로 이해된 교육과정은 교육 실제를 위하여 창의적으로 개발될 필요가 있다.
<2015 개정 교육과정>
총론과 각론을 동시에 개정한 교육과정으로 추구하는 인간상과 함께 그 특징으로 핵심역량 및 인재상이 제시되었다. 교과와 창의적 체험활동 및 학교생활 전반에 걸쳐 학생의 실제적 삶 속에서 무언가를 할 줄 아는 실질적인 능력을 기르기 위해 ‘자기관리 · 지식정보처리 · 창의적 사고 · 심미적 감성 · 의사소통 · 공동체 역량’의 6가지 핵심 역량과 함께 교과별 역량을 제시하였다.
이 교육과정에서는 모든 학생들이 인문‧사회‧과학기술에 대한 기초 소양을 함양하여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 창조력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로 성장할 것을 강조한다. 기초 소양 함양을 위해 고교에 공통과목을 도입하고 통합적 사고력을 기르기 위해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신설하였다. 각 교과교육과정기준은 단편지식보다 핵심개념과 원리(big ideas)를 제시하고, 교과교육 목표-내용-방법-평가 정도를 제시한 이전 각론 문서와 달리, 각 교과별로 핵심개념, 일반화된 지식, 영역별 내용 요소와 기능에 이르기까지 교과별 ‘내용체계’가 제시되었다. 또한 교과의 단원별 ‘성취기준’으로 구체화되었다. 토의 · 토론 수업, 실험 · 실습 활동 등 학생들이 수업에 직접 참여하면서 역량을 함양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과정 중심의 평가를 강조하였다.
한편, 이전 교육과정에서 설정된 39개의 범교과학습 주제를 10개(안전 · 건강, 인성, 진로, 민주시민, 인권, 다문화, 통일, 독도, 경제 · 금융, 환경 · 지속가능발전 교육)로 통합․조정하였다. ‘공교육정상화법’(2014)에 따라 선행교육 및 선행학습 유발행위 금지로 학교교육과정과 대학입시 등을 점검하였다.
초등에서는 1~2학년(군)에 한글교육을 강조하는 등 유아용 누리과정과의 연계를 강화하고, 수업시수를 주당 1시간 늘려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해 체험 중심의 ‘안전한 생활’을 편성‧운영하도록 하였다. 학교에서 심폐소생술교육을 강화하고, 체육, 기술․가정(실과), 과학, 보건 등 관련 교과(목)에 안전 단원을 신설하며,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체험중심의 안전 교육이 실시할 것을 규정하였다.
중학교에서는 학생들의 꿈과 끼를 발견하고 교내외에서 진로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자유학기제가 2013년 2학기부터 시범 적용되다가 2016학년도부터 전면 도입되었다. ‘자유학기제’란 중학교 6학기 중 특정 학기에, 교과활동 및 창의적 체험활동과 연계하여 진로탐색활동, 주제선택활동, 예술․체육활동, 동아리활동 등을 선택 조합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꿈과 끼를 자유롭게 펼쳐보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제도이다. 이는 중학교가 준고교(junior high school)가 아니라 초등학교에 이은 통합적 활동과 배려 중심의 중학교(middle school)로 바꾸는 것과 유관하다.
일반고에 공통사회, 공통과학, 한국사 등 공통과목이 제시되었고, 고교 3개년의 절반동안 공통필수 교과목을 이수하도록 되어 있다. 선택과목은 일반선택과 진로선택으로 구분되는데, 일반선택은 고교 단계에서 필요한 각 교과별 학문의 기본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과목이고, 진로선택은 교과 융합학습, 진로 안내학습, 교과별 심화학습 및 실생활 체험학습 등이 가능한 과목으로, 학생들은 진로선택 과목을 통해 보다 심화된 학습이나 자신의 진로에 도움이 되는 과목을 일부 선택할 수 있다.
직업고인 특성화고교의 교육과정은 국가직무능력표준(NCS, National Competency Standards)을 기반으로 고교 직업교육과정의 기본 방향을 잡았다. NCS는 산업현장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을 국가적 차원에서 표준화한 것으로, 별도의 교과서를 개발하지 않고 NCS 학습모듈(교재)을 교과서로 활용하게 된다. 이는 산업현장에서 요구하는 직무 중심으로 직업교육체제를 구축하여 ‘할 줄 아는 교육’을 지향한 것이다.
교육과정은 개인과 집단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면서 한 나라, 나아가 인류 문명의 척도이고 방향타로서 시대와 문명의 변화에 따라 발전해왔다. 인류는 오랜 동안 동물의 가축화, 식물의 작물화를 위해 노력해왔고, 대부분은 식의주 생활 조달을 위한 생활 속의 교육과정이 주류를 이루었다. 봉건국가에서 지배층 혹은 소수 특권층을 대상으로 하던 교육과정은 근대 국민국가 이후 점차 ‘모든’ 사람을 위한 질 높은 교육과정으로 향하고 있다.
산업혁명 후에는 도시화, 민주화, 평등화가 진행되면서 모든 아동의 초등교육을 위한 교육과정에서 점차 모든 청소년의 중등교육을 위한 교육과정으로 확대되었다. 중등교육과정은 졸업 후 대학진학이냐 사회진출이냐에 따라 다른 교육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상호 선호 · 경쟁하는 한정된 기회의 대입과 취업에 의해 중등교육과정은 심하게 왜곡되어 왔다. 남보다 앞서서 정확하고 빠르게 지식을 기억 · 이해하고 회상하여 지필시험을 잘 치르기 위해 공교육은 물론이고 사교육까지 동원하는 사례가 만연해 있다. 산업화와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근로자 양성의 교육과정으로 인해 사회에는 절대빈곤이 없어지게 되었고, 사람들은 보다 풍요로운 사회를 위한 교육과정을 요구하고 있다. 산업화 이후 정치적 민주화를 위한 교육과정은 만인의 평등과 정의, 권리와 자유, 가치와 존엄, 발전 기회와 그 보장을 추구하고 있다. 각종 차이를 차별로 인식하여 무리하게 교정하려는 폐단도 있다. 특히 북핵위기 이후에는 국가적으로 안보와 국력 결집의 과제가 경제적 번영과 국가적 위신보다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다. 국가교육과정기준은 북핵위기와 자유민주주의로의 통일시대를 대비하여 개정될 필요가 있다.
최근 과학기술의 발전과 정보화, 자동화된 속에서 학교의 교육과정은 새로운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맞고 있다. 문명은 교육을 통해서 이전에 없던 감동을 주는 창의성, 남다른 발상 · 발견 · 발명을 하여 사회적 유익을 끼치는 선도자(first mover)를 기대한다. 또한 자연환경에서 떠난 도시화된 환경, 국경을 넘어 세계화 · 다문화 속에서 인간의 자연스러운 면은 손상받기 쉬워졌으며, 자신의 정체성 확립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동화된 생산라인, 프로그램화된 각종 정보와 지식의 폭증 속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인간의 역할이나 품위와 능력은 초라한 위상을 숨길 수 없게 되었고, 직종과 직무의 생성과 소멸이 빈번해졌으며, 이에 따라 사람들은 학교교육을 포함하여 평생학습 속에서 인간 삶의 질과 의미를 꾸준히 반추하고 있다.
그간 교육과정은 국가나 학교, 그 속에서 교사가 미숙한 학생들에게 무엇인가 가르쳐주고 전달해주는 것으로 이해되었으나 정보화로 인해 데이터 · 정보 · 지식의 축적과 유통은 근본적으로 교육과 그 주고받는 내용 · 경험 · 활동의 의미를 새로이 추구하게 되었다. 학교나 교원은 정보 · 지식에서 우위에 있어 후대에게 전달하는 것에 그 역할이 있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사회의 고학력화는 과거 지식의 독점유통기관으로서 학교의 위상과 교권에 상당한 상처를 주고 있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프로그램화되고 자동화되어 언제 어디서나 열람 가능한 것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 속에서 인간은 기억과 기록을 외주하고 있다. 전통적인 의미의 교육과정은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다른 한편 여전히 인간은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애오욕의 우여곡절을 겪는 중이다. 어릴 때에는 아날로그적 · 실제적 오감발달을 추구하고, 차츰 디지털적 · 가상공간에서 정보와 지식의 습득 · 가공처리 · 창의생산 · 유통의 순환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실존적 모습이다.
특히 저출산 · 고령화, 과학기술 및 정보화, 다원화 · 다문화 · 세계화, 생태위기와 친환경, 정치경제적 변화, 북핵 위기 및 통일대비 등의 문제는 평생학습 속에서 보다 체계적 · 계열적이고 융통성있는 교육과정을 요구하고 있다. 무엇보다 기존의 국영수 중심에 머물기보다 현대사회의 교양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찾아야할 것이다. 100세 시대에 맞는 생애주기별 교육과정의 정립이 필요하고, 정보화와 과학기술적 교양, 그리고 세계화 사회의 기반이 되는 다문화성 · 세계시민성이 더욱 중요해고 있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든 배울 수 있겠지만 특히 가상세계로부터 오는 각종 변화와 부작용에 대해서, 또 매우 이질적인 남북한 교류와 화합 및 통일에 대비하는 교육과정적 준비도 요청된다. 개인간 학력경쟁보다 교육목표-내용-교수학습-평가에서 일관되게 공동체내 사회협동성을 진작하는 교육과정이 요구되며, 우리 사회의 공교육에 대한 불만을 사교육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에도 교육과정적 대응이 요청된다.
궁극적으로, 최소한 중학교까지 모든 사람과 전체 사회를 위해 ‘같은’ 교육과정을 제공했다면, 고교부터는 각 집단과 사회 각 분야를 위한 ‘다른’ 진로별 교육과정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그 정립이 중요하며, 특히 누구나 공교육을 통해 생애최초의 직업을 가지기 위한 준비를 갖추고 사회로 진출해야 할 것이다. 통일을 위해서라면 남북은 상호교류와 협력의 교육과정이 필요하고, 세계화를 위해서라면 세계수준의 앞서가는 세계 통용의 교육과정에 대해 도움을 주고받는 개방적인 노력이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