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장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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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장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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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현의(玄衣)와 청색 중단(中單)으로 구성된 구한말의 왕실복식.
이칭
이칭
면복(冕服)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구장복(九章服)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국가유산청 국가민속문화유산(1979년 01월 26일 지정)
소재지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용산동6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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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현의(玄衣)와 청색 중단(中單)으로 구성된 구한말의 왕실복식.
개설

이 유물들은 1979년 중요민속자료(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장복이란 왕이나 황태자가 국가의 대례(大禮)와 제례(祭禮), 흉례(凶禮)에 사용하는 구장문(九章文)의 면복(冕服) 일습을 의미한다. 면복은 규(圭)와 면(冕), 의(衣), 상(裳), 대대(大帶), 중단(中單), 패(佩), 수(綬), 방심곡령(方心曲領), 폐슬(蔽膝), 말(襪), 석(舃)과 같이 다양한 복식물로 구성된다. 구장복이라는 명칭은 면복의 구성물인 현의(玄衣)와 훈상(纁裳)에 사용되는 무늬[章紋]가 9종류이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현의에 5문장을, 훈상에 4문장을 사용하였다.

1979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구장복은 구장복의 겉옷인 현의와 그 안에 입는 청색 중단으로 구성된 구장복 2점, 즉 4벌만을 지정한 것이므로 올바른 국가유산명이라고 할 수는 없다.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의 전하 면복 도설에는 소매가 넓고 길이가 긴 교임형(交袵形) 포(袍) 위에 5장문이 그려져 있다. 어깨에는 용을, 등에는 산을, 그리고 뒷길 수구에는 화(火), 화충(華蟲), 종이(宗彛)를 각각 3개씩 그렸다. 설명에 의(衣)는 현색의 증(繒)으로 만들며 용과 산, 화, 화충, 종이를 그린다고 하였다. 한편 중단은 백증(白繒)으로 만들고 깃과 섶, 도련, 수구에 청색 선을 두르고 깃에는 11개의 불문을 그린다고 하였다. 옷의 형태는 면복과 같으나 실제 길이는 더 길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유물 현의는 도설과 거의 같으나 중단은 도설의 백색이 아니라 청색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중단의 색상이 청색으로 변화된 시기는 대략 19세기 정도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 유물은 구한말의 유물임을 알 수 있다.

내용

구장복 유물은 은조사(銀條紗) 현의와 갑사(甲紗) 현의에 청색 중단이 각각 겹쳐져 있는 상의 유물 2점으로, 그 치수는 거의 유사하다. 은조사 현의는 흑색의 홑옷으로 총길이 115㎝, 화장 95㎝, 품 46㎝, 고대 17㎝, 진동 27.5㎝, 옆길이 92㎝, 수구 65.5㎝이며 흑색 선을 깃과 섶, 밑단, 수구에 둘렀다. 수구에는 23㎝ 내려온 부분에 박쥐매듭을 달았다. 너비4.3㎝의 동정이 달려 있는데 길이는 65.5㎝이고 겉깃 쪽 길이는 25.5㎝이다. 겉고름은 너비 7.0㎝에, 길이 82.5㎝이다. 뒷고대 중심에 방심곡령용으로 추정되는 단추 고리가 한 개 달려 있다. 어깨 양쪽에는 금색 오조룡(五爪龍)을 그렸다. 그 외에 여의주나 갈기 부분은 녹색으로 그렸고, 화염이나 지느러미 부분은 홍색으로 그렸다. 등에는 녹색으로 오악(五嶽)을 그리고 가장자리는 금선을 둘렀다. 뒷길 수구에는 화 3개, 화충 3개, 종이 3개를 위에서 차례대로 그렸는데 특히 우측 소매의 종이에는 호랑이를, 좌측에는 원숭이를 그렸다. 겨드랑이 사이에 길고 좁은 끈이 달려 있다.

은조사 현의 안에 끼워져 있는 청색 은조사 중단은 현의보다 단 너비만큼 길게 만들었다. 깃과 섶, 밑단, 수구에 흑색 은조사 선을 두르고 고름도 흑색 은조사로 달았다. 깃 부분에는 아자(亞字)의 불문(黻紋) 11개를 금으로 그렸다.

흑색 갑사 현의는 총길이 119㎝, 화장 96.5㎝, 품 48㎝, 진동 21.5㎝, 고대 17.5㎝, 소매너비 63㎝이며, 수구 부분 22㎝에는 박쥐 매듭단추를 달았다. 깃과 섶, 도련, 수구에는 너비 8.5㎝의 흑색 선을 안으로 둘렀다. 65.5㎝ 길이의 순인(純鱗) 동정을 달았으며 겨드랑이 사이에 길고 좁은 끈을 달았다. 5장의 장문은 은조사 현의와 동일하다. 뒷고대 중심에 방심곡령용 단추 고리가 달려 있다. 대대(大帶)를 고정시키기 위한 단추 고리도 뒷중심선에서 23.5㎝ 내려온 부분과 이를 중심으로 좌우17㎝ 떨어진 부분에 3개를 나란히 달았다.

밝은 청색의 순인 중단은 총길이 124㎝이며 소매너비는 62㎝로 현의보다 1.0㎝ 작게 만들었으며 수구는 같은 위치에서 실로 고정하고 아래까지 막았다. 깃과 섶, 도련 수구에는 흑색 선이 둘려져 있으며 흑색 고름이 달려 있다. 그리고 깃에는 불문 11개가 금으로 그려져 있다.

현황

두 점 모두 구한말의 유물로, 동정의 오염 등으로 보아 실제 착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현재 장문들이 탈색되고 찢겨진 부분이 있어 보존 상태는 좋지 않은 편이다. 은조사 현의는 왼쪽 수구 상단이 훼손된 상태이며 갑사 현의는 안길 쪽 고름과 뒷길 쪽 우측 소매의 중심 부분이 크게 훼손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시대 왕이나 대한제국 시기의 황태자가 착용하였던 대례복의 일부가 남은 진품으로 그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특히 은조사 구장복은 고종이 착용하였던 것이라고 전해진다. 1918년영친왕이 영녕전(永寧殿)을 참배하면서 면복을 착용하였는데 이 때 영친왕이 착용하였던 면복의 일부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참고문헌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문화재대관 중요민속자료2 복식자수편』(문화재청, 2006)
『마지막 황실, 잊혀진 대한제국』(서울대학교 박물관, 2006)
『조선시대 궁중복식』(문화재관리국,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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