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등작제도는 공(公)·후(侯)·백(伯)·자(子)·남(男)으로 구성된 것으로 왕기(王基)에게 수여한 개성국공(開城國公), 이자겸(李資謙)에게 수여한 조선국공(朝鮮國公) 등이 그것이다.
국공이라는 용어는 원래 ‘○○ 國開國公’의 약칭으로 조선국공은 조선국개국공(朝鮮國開國公)의 약칭이며, 단순히 조선공이라고만 호칭되기도 하였다. 품계는 정2품이었고, 식읍은 3천호를 수여받았는데, 충렬왕 때 봉군제가 실시됨에 따라 폐지되었다.
그러나 1356년(공민왕 5)에 공민왕이 반원정책을 쓰면서 다시 공·후·백·자·남을 사용하여 모두 정1품으로 하였고, 1362년에 폐지되었다. 1369년에 회복되었으나 1372년에 다시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