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기능 올림픽대회(International Youth Skill Olympics)는 청소년 근로자간의 기능경기대회의 실시를 통하여 최신기술의 교류와 세계청소년근로자들의 상호이해와 친선을 꾀하며, 각국의 직업훈련제도 및 그 방법에 관한 정보교환을 주요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첫째 회원국간에 주기적으로 국제기능 올림픽대회를 개최하고, 둘째 직업훈련에 관한 세미나를 개최하여 급변하는 기술·기능발전에 상응하는 새로운 훈련방법과 직업훈련제도를 연구, 개발하며, 셋째 각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직업훈련에 관한 최신정보를 수집, 편찬, 간행하여 회원국에 배포함으로써 직업훈련의 향상을 꾀하는 것이다.
1947년 스페인직업청년단이 주최자가 되어 청소년에 대한 근로의욕의 고취와 심신의 건전화를 위하여 직업보도의 일환으로 기능경기대회를 개최하였다. 1950년 인접국인 포르투갈이 이 취지에 적극 찬동하고 그 해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양국 청소년근로자 대표선수 24명이 참가한 친선경기를 가지게 된 것이 국제기능올림픽대회의 시초이다.
경기종목으로 기계, 금속, 전기·전자, 건축·목재, 공예조제분야 등 30여 직종에서 실시된 이 대회는 ‘1직종 1선수’ 참가를 원칙으로 하고 1952년에 두번째 대회를 개최하였다. 그뒤 매년 또는 격년으로 대회를 개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처음에는 유럽국가 중심의 회원국으로 구성되었으나, 1960년대 초 아시아에서 일본이 처음으로 회원국으로 가입한 뒤, 1966년 우리 나라가 두번째로 가입하면서 1967년의 제16회 대회부터 국가대표선수를 파견하게 되었다.
그 뒤 대만이 가입하여 동서의 기술을 잇는 국제기구로서 더욱 확대되어나갔다. 1973년부터는 미국이 가입함으로써 명실상부한 국제대회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리하여 1975년의 제22회 대회는 17개국이 참가하는 큰 대회로 급성장하였다.
1998년 현재 대륙별 회원국은 유럽주 14개국, 아시아주 11개국, 아메리카주 3개국, 오세아니아주 2개국 아프리카주 2개국 등 도합 32개국이다. 이 밖에 덴마크·모로코·몰타 등도 회원국이었으나 최근에는 선수를 파견하지 않고 있으며, 이란은 이란·이라크전 발발 이후 지난 몇 년간 선수를 파견하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 나라는 국가대표선수를 파견하기 위한 예선대회로서 1966년 9월 첫 지방기능경기대회를 개최하고 전국대회에 출전할 지방대표선수를 선발하였으며, 제1회 전국기능경기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하였다. 이 대회는 9개 직종에 걸쳐 9명의 대표선수를 선발하고, 1967년 9월 스페인에서 개최된 제16회 대회에 처음으로 출전하여 공업선진국 선수들과 기량을 겨루었는데, 양복과 제화 직종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첫 출전에서 얻은 이러한 성과는 이후 다른 부문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하였다. 그 결과, 1997년 스위스 상갈렌에서 개최된 제34회 대회에 이르기까지 19회에 걸쳐 총 525명의 선수가 출전하여 그 중 329명이 입상하였으며, 그 중 금메달 193명, 은메달 82명, 동메달 54명 등이었다.
국제대회의 참가를 거듭하면서 우리 나라는 참가국 중 상위권으로 부상하게 되었으며, 대회참가 10년째인 1977년의 제23회 대회에서는 28명의 선수가 출전하여 금메달 12명, 은메달 4명, 동메달 5명 등 21명이 대거 입상함으로써, 그 동안 숙원이던 세계기능경기의 정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성과는 종래 우리 나라를 공업이나 기능면에서 후진국가로 평가하던 세계인의 관점을 일신시키는 경이적인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1978년 9월 마침내 우리 나라가 개최국이 되어 국립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에서 제24회 국제기능 올림픽대회를 주최하였다. 17개 회원국에서 239명의 선수들이 31개 직종에 참가하여 기능의 각축전을 벌였다. 참가선수 외에도 임원 676명 등 총 915명이 참여한 대형 국제행사가 되었으며, 탁월한 조직력과 완벽한 운영으로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한편, 이 대회에는 중동 및 아시아지역 비회원국 직업훈련관계자들도 참여하여 전에 없는 대성황을 이루었으며, 국제기능올림픽대회사상 가장 화려한 대회로 기록되었다. 우리 나라는 31개 전 직종에 출전하여 금메달 22명, 은메달 6명, 동메달 3명 등 전원 입상의 영예를 차지함으로써 2연승을 획득하는 또 하나의 개가를 올렸다.
이어, 1979년 아일랜드 코크에서 개최된 제25회 대회에서는 3연승을, 1981년 미국 애틀랜타의 제26회 대회에서는 경제대국 미국을 제치고 4연승을, 1983년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열린 제27회 대회에서는 5연승을, 1985년 일본 대판의 제28회 대회에서는 6연승을, 1988년 호주 시드니의 제29회 대회에서는 7연승을, 1989년 영국 버밍햄의 제30회 대회에서는 8연승을, 1991년 네덜란드 암스텔담의 제31회 대회에서는 초유의 9연패를 한 바 있다.
1993년 대만 타이베이의 제32회 대회에서는 준우승을 하였고, 1995년 프랑스 리용의 제33회대회와 1997년 스위스 상갈렌 제34회 대회에서 계속 종합우승을 함으로써 11번째 종합우승의 신화를 창조하였다. 1950년에 국제기능 올림픽대회가 출범한 이래 유례없는 일로서 한국 청소년기능인들의 기상과 불퇴전의 의지의 결과였다.
일본은 1969년의 제18회에 이어 1970년과 1971년의 제19회 및 제20회 대회에서 3연승의 기록을 수립하였다. 그 뒤 1977년의 제23회 대회에서 우리 나라가 대회참가 10년 만에 기능의 세계정상을 정복하였다. 이 기능승리의 해는 우리 나라가 1백억 달러 수출을 달성하던 해로서 국위선양에 크게 기여하였음은 물론, 국력신장의 밑거름이 되는 데 큰 의의를 부여하였다.
이러한 승리는 기능계에 있어서 우리들의 저력이 무한함을 확인시키며, 기능면에서의 국제사회 진출의욕을 고무시키는 전기를 마련하였다. 1997년 스위스 상갈렌에서 개최된 제34회 대회에 이르기까지 11번의 종합우승의 위업을 성취한 것은 국제기능 올림픽대회사상 유례가 없는 업적이다.
또한, 질적인 면에서 볼 때, 1967년 첫 출전 당시의 우승직종이 양복과 제화 등 조제 부문으로 후진성의 면모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나 1970년대부터는 우승 분야가 중화학공업 및 첨단산업직종으로 바뀌었으며, 그 뒤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동제어 계통 등 고도의 기능을 요하는 직종에서까지 우승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급격히 변천하는 기술혁신에 대응하여 급신장하는 우리 기술의 국제경쟁력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1977년 첫 종합우승을 획득하였을 때의 수출실적 100억 달러와 11번째 우승을 했던 1997년에 1400억 달러 수출을 실현함으로써,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려는 한국의 참모습을 보여주었다.
국제기능 올림픽대회조직은 32개 회원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아직 동유럽·중동·아프리카지역 등 미참가국의 가입이 예견되는 만큼, 회원국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대회경기직종에서 산업사회의 변화에 따라 첨단기능 분야까지 채택하여, 과거 기본기능을 중시하던 대회에서 오늘날 고도기능 분야로 기(技)의 경연하는 것으로 그 모습이 바뀌어가고 있다. 또한, 국가간의 치열한 경합을 벌이면서, 국제청소년 근로자간의 이해증진을 촉진하며, 또한 기능인의 세계가족을 이어주는 소임을 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