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응수 장군 유물 ( )

태평회맹도 병풍/권응수 장군 유물
태평회맹도 병풍/권응수 장군 유물
회화
물품
국가유산
임진왜란 당시 공을 세워 선무공신에 책훈된 무신 권응수의 유물 일괄.
물품
재질
종이
소장처
국립진주박물관
제작 시기
조선 후기
관련 의례
공신회맹제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권응수장군 유물(權應銖將軍 遺物)
분류
기록유산/문서류/문서류/문서류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1980년 08월 23일 지정)
소재지
경남 진주시 남강로 626-35, 국립진주박물관 (남성동,진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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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권응수 장군 유물은 임진왜란 당시 공을 세워 선무공신에 책훈된 무신 권응수의 유물 일괄이다. 유물은 「권응수초상」, 「선무공신교서」, 태평회맹도병풍, 장검, 유지 및 장군간찰, 교지 및 유서, 각대, 『가전보첩』 등이며, 198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정의
임진왜란 당시 공을 세워 선무공신에 책훈된 무신 권응수의 유물 일괄.
개설

권응수가 임금에게 받은 왕명서(王命書)와 하사품, 집안 후손에게 전해오는 유품들로 1980년 8월 23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지정 유물은 「권응수초상」, 「선무공신교서(宣武功臣敎書)」, 태평회맹도병풍(太平會盟圖屛風), 장검, 유지(有旨) 및 장군간찰(將軍簡札), 교지(敎旨)유서(諭書), 각대(角帶), 『가전보첩(家傳寶帖)』 등이다. 현재 유물은 국립진주박물관에서 위탁 보관하고 있으며, 『가전보첩』은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

내용및 특징

「권응수초상」은 선조(宣祖)가 하사한 공신초상화이다. 크기는 세로 202㎝, 가로 104㎝이다. 초상화는 교의에 앉은 전신 좌상이다. 얼굴은 좌안 7분면으로 표현되고, 머리에는 검은색 모자를 쓰고 있다. 두 손은 공수 자세를 하여 보이지 않고, 두 발은 돗자리가 깔린 족좌대(足座臺) 위에 팔자형(八字形)으로 올려졌다. 착용한 복식은 단령으로 왼쪽 치맛자락 트임 사이로 철릭답호가 보인다. 가슴에는 한 마리 호랑이를 수놓은 주2를 달고, 주1를 두르고 있다. 바닥에는 비교적 높고 화려한 채전이 깔려 있다. 17세기 공신화상의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선무공신교서」는 1604년(선조 37) 10월 선무 2등공신으로 책훈된 권응수에게 내려진 공신녹권이다. 교지는 정립(鄭笠)이 짓고 김현무(金玄武)가 썼다. 크기는 세로 39.4㎝, 가로 28㎝이다. 선무공신은 임진왜란 때 일본군과 전투를 치른 공로 및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한 공로를 인정하여 전국에서 18명이 책훈되었다. 1등은 이순신(李舜臣) 등 3인, 2등은 신점(申點)과 권응수 등 5인, 3등은 정기원(鄭期遠) 등 9인이다. 권응수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키고, 경상우도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을 도와 왜군에 대항한 활약이 공로로 인정되었다.

태평회맹도병풍은 4폭이며, 세로 280㎝, 가로 120㎝이다. 병풍은 공신회맹제를 거행하는 모습을 그리고, 참석한 공신들의 본관 · 생년 · 성명 등을 기록하여 제작한 것이다. 공신회맹제는 1604년 10월 27~28일에 걸쳐 행해졌으며, 임진왜란 호성(扈聖), 선무(宣武), 청난(淸難) 공신을 포함하여 역대 공신들도 참석하였다.

제1폭에는 선조가 베푼 연회 장면이 그려졌고, 제2폭과 3폭에는 연회에 참석한 인사들의 명단이 적혀있다. 제4폭은 공백으로 남겨져 있다. 제1폭의 사연(賜宴) 장면은 화면 중앙에 큰 장막이 둘러쳐져 있고, 그 아래 중앙에는 탁자 하나와 술동이들이 놓여 있다. 장막 오른쪽에는 탁자 하나와 음식을 데우는 화로 3기가 놓여 있다. 장막 아래쪽으로는 연회에 참석한 공신들의 모습이 묘사되었다. 장막 주변으로 원경의 산과 나무, 지붕만 보이는 두 채의 집 등을 배경으로 표현했다.

주목되는 점은 공신명단에는 63명을 수록했으나, 그림에는 58명의 인물만 그린 것이다. 당시 공신회맹제에는 노병(老病)과 상중(喪中)이라는 이유로 5명이 불참했는데, 이러한 내용을 그림에 사실적으로 반영하고 하였다.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에는 보물로 지정된 동일한 구성과 내용의 작품이 있다. 이 작품에는 제2-4폭에 걸쳐 ‘신구공신상회제명지도(新舊功臣相會題名之圖)’란 표제가 전서(篆書)로 적혀있다. 병풍은 제작하는데 소요된 시간으로 인해 1607년에 주3되었다.

장검은 일본검(日本劒)으로 임진왜란 당시 왜장 키하치[喜八]에게서 노획한 것이라고 한다. 손잡이에 대영원년(大永元年)[1521]이 적혀있다.

유지와 장군간찰은 모두 33매로 모두 긴 사각 형태지만 크기는 각각 다르다. 유지는 1594년부터 1606년까지 작성된 선조의 왕명서 28매와 표문(票文) 1매이며, 장군의 편지글은 4매이다.

4품 이상에게만 내리는 교지와 유서는 녹패, 제문 등을 합해 총 33매로, 1592년부터 1624년(인조 2)까지 작성된 것이다. 크기는 세로 51㎝, 가로 27㎝이며 합철되어 있다. 교지는 권응수의 직급을 올리거나 새로운 보직에 임하게 할 때 발급하였고, 유서는 당시의 전쟁 상황에 따른 임금의 지시 사항을 담고 있다.

각대는 금속제의 허리띠로 16세기 말엽에 제작된 것이다. 길이 150㎝, 너비 6.3㎝이다. 원형의 돋을새김 장식이 부착되어 있다.

『가전보첩』은 상 · 하 2권의 시모음집이다. 상권은 세로 51.0㎝, 가로 36.2㎝이며, 하권은 세로 47.5㎝, 가로 41.3㎝ 크기이다. 선조 17년(1584) 이후의 글들이며, 주로 안동 권씨 가문과 관련된 인물들의 시가 많이 실려 있다. 상권은 채팽윤(蔡彭胤), 유승무(柳昇茂), 신구중(愼龜重) 등의 시 60수가 실려 있다. 하권은 신후담(愼後聃), 권목(權睦), 권기언(權基彦) 등의 시 43수가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권응수장군의 일괄 유물은 임진왜란 당시의 전황과 시대 상황, 권응수의 활약상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이다. 「권응수초상」은 당대 복식 연구과 초상화 연구에 도움이 되며, 태평회맹도병풍은 전란 이후 거행된 공신회맹제의 모습과 당시 상황을 알려주는 시각 자료라 하겠다. 『가전보첩』은 당시의 서체나 시문 연구의 자료가 될 수 있으며, 특히 고문서는 임진왜란 이전 자료가 희소한 상황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참고문헌

원전

『조선왕조실록』
『백운재실기(白雲齋實記)』

단행본

권오상, 『(바로 보는 한 토막)임진전쟁』(삼진기획, 2002)
『문화재대관 보물 5』(한국문화재보호협회, 대학당, 1986)

논문

신윤호, 「<태평회맹도>의 역사적 배경」(『국립중앙박물관』, 2014)
권혁산, 「조선 중기 『녹훈도감의궤와 공신화상에 관한 연구」(『미술사학연구』 266, 한국미술사학회, 2010)

인터넷 자료

주석
주1

조선 시대에, 정이품 벼슬아치가 띠던 허리띠. 보상화문, 당초무늬 따위를 아로새긴 황금 띳돈을 달며, 조복·제복·상복에 띠었다. 우리말샘

주2

당하관 무관이 입는 상복(常服)의 가슴과 등에 붙이던 헝겊 조각. 호랑이 한 마리를 수놓았다. 우리말샘

주3

나누어 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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