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집경전, 순릉, 후릉참봉, 광흥창봉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조정에서 갑자사화에 화를 입은 사람들을 신원(伸寃: 억울한 죄가 풀림)하고 자손을 등용할 때 아버지는 신원이 되고 자신도 음보로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되었다. 그 뒤 다시 집경전(集慶殿) · 순릉(順陵) · 후릉(厚陵) 등의 참봉을 역임한 뒤, 1517년(중종 12) 광흥창봉사(廣興倉奉事)에 승진되었다.
1519년 기묘사화로 사림파가 훈구세력에 의해 축출당한 뒤 1521년 사림파와 친밀했던 안처겸(安處謙)이 훈구대신을 해치려 하였다는 무옥(誣獄: 무고로 인한 옥사)이 일어나서 남은 사림파가 다시 쫓겨날 때 아우 권전(權磌)이 장살되면서 권질도 예안(禮安)으로 유배되었다. 1538년 유배에서 풀려났으며, 이듬해 고신(告身)을 되돌려받았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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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본관 및 가계 : 『국조인물고』 권45, 권질 묘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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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이황과의 관계 : 『중종실록』 77권, 1534년(중종 29) 4월 20일. "헌부에서 관찰사 조한필과 도사 권겸의 방탕한 소위를 아뢰어 파직을 청하니 따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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