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위 375∼384. 근초고왕의 맏아들이다. 비(妃)는 아이부인(阿尒夫人)으로 침류왕을 낳았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귀수(貴須)’ 또는 ‘귀수(貴首)’로, 『신찬성씨록』에는 ‘근귀수(近貴首)’로 표기되어 있다.
태자 때부터 부왕을 도와 정복 사업에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369년 치양성(雉壤城: 지금의 황해도 배천) 전투에서는 고구려군을 격파해 5,000여 명을 포로로 잡았으며, 특히 그 당시 치양성전투에서는 죄를 짓고 고구려로 도망갔다가 다시 귀순해 온 사기(斯紀)의 군사기밀 제보로 고구려군을 대파하였다.
즉, 사기의 제보에 따라 고구려군의 허실을 파악한 뒤, 고구려군 제일의 정예 부대인 적기부대(赤旗部隊)를 공격해 크게 격파하였다. 승세를 잡은 근구수는 패주하는 고구려군을 추격해 수곡성(水谷城: 지금의 황해도 신계)까지 진군하였다.
이 때 더 북진하려 하자 장군 막고해(莫古解)가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라는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만류하자 돌을 쌓아 경계를 표시하고 나서 회군하였다.
근구수왕이라는 명칭은 ‘구수왕’에 앞에 ‘근’자를 붙인 것으로, 근초고왕 대에 확립된 초고왕계의 왕위 계승권을 확고히 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즉위 후 왕은 장인인 진고도(眞高道)를 내신좌평으로 삼아 정사를 위임하고, 남하해 내려오는 고구려에 대해서는 공격과 수비 양면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해 한반도에서 힘의 균형을 유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