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산업이 그 나라의 기간산업인가는 각 나라의 산업구조 및 경제생활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대체로 석탄·석유·전력 등의 동력산업, 제철·제련 등의 금속산업, 도로·철도·해운·항공 등의 수송산업, 비료·시멘트·기초화학 등의 화학공업 등이 기간산업에 속한다.
기간산업은 다른 산업의 원자재와 건설용 자재로 널리 사용되는 중요 물자를 생산하는 산업, 또한 경제활동에 불가결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산업 등을 가리킨다.
어떤 경우에는 자동차 공업이나 조선공업처럼 고용이 많고 다수의 부품제 조업에 파급효과가 큰 산업을 기간산업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공업화 초기에는 우선 기간산업의 육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간산업에 자금과 자원이 집중 투자된다.
만약 기간산업이 미약하여 국제 경쟁력이 약하거나 이미 성숙단계에 도달하여 후발국의 견제 대상이 될 경우에는 자국의 안정된 경제 발전을 위해 기간산업을 국가가 정책적으로 보호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기간산업의 새로운 건설과 확충은 기초소재와 동력의 공급을 증가시키고 원활한 수송망을 제공함으로써 지속적인 발전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 나라는 재래에는 농업 위주의 산업구조였으므로 근대적인 의미의 기간산업은 1876년 개항 이후 서서히 발전해 왔다. 그 뒤 전기·철도·중화학공업 등의 기간산업이 건설되었지만, 대체로 일본을 비롯한 외국세력의 이권에 따라 운영되었다.
8·15광복 당시 기간산업시설의 대부분이 북한에 있었으며, 더욱이 6·25전쟁으로 인하여 남한에 있던 주요 산업시설이 많은 피해를 입게 되어 1950년대 우리 나라의 산업기반은 매우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1950년대 후반에 경제부흥을 위하여 에너지산업을 비롯하여 도로·철도 등의 사회 간접자본과 화학·비료·시멘트 등의 일부 기간산업을 개발하였으나, 공업발전을 위한 신규 중화학공업의 발흥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1960년대 초반을 전환점으로 신규 기간산업의 건설과 기존시설의 확충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기간(1962∼1966)중 신규 기간산업으로 개발된 부문은 정유·비료·시멘트·기초화학 등이다. 즉, 제3비료공장·제4비료공장·제5비료공장 등을 건립하여 본격적으로 비료공업의 생산체계를 갖추었으며, 기초화학공업의 기반을 형성하여 관련산업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었다.
또한, 시멘트산업은 공업화 추진에 따라 국내수요가 급증되자 시설확장 및 신규공장 건설에 착수하여 근대적인 기간산업의 면모를 갖추었다. 전력·운송 등의 사회 간접자본의 확충은 계속되는 경제개발 과정에서 급속한 공업근대화를 추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제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기간(1967∼1971)중에는 자립을 위한 공업 발전의 기틀을 확립하기 위하여 금속공업·기계공업·석유화학공업 등의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한 기간산업 건설에 총력을 기울였다.
금속소재를 생산하기 위하여 연산 조강(粗鋼:제강로에서 제조된 그대로의, 가공되지 않은 강철) 기준 103만 톤, 제품 87만 톤 규모의 종합제철 공장 건립에 착수하였으며, 비철금속 부문의 알루미늄과 아연의 제련공장이 신규로 건립되었다.
운송차량공업은 특히 자동차공업에서 외국업체와 활발하게 자본 및 기술을 제휴하여 완전분해 부품을 수입하여 조립하는 대규모 조립생산체제의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으며, 조선공업과 일반 기계공업도 적극적으로 육성되었다. 그리고 울산 화학공업단지 조성이 본격적으로 착수되어 석유화학계 기초화학제품의 질적·양적 성장의 토대가 마련되기 시작하였다.
1967년부터 심각한 어려움으로 등장한 동력 및 수송난을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전원 개발사업이 추진되어 전력생산은 당시의 수요를 능가하게 되었으며, 경부고속도로 완공과 호남고속도로 일부개통으로 수송의 어려움도 크게 개선되었다.
제3차 경제개발5개년계획기간(1972∼1976)에는 금속·기계·화학 등의 중화학공업이 집중적으로 육성되어 크게 발전하였다. 1973년 포항종합제철의 제1기공장 완공으로 우리 나라는 아시아 유수의 철강생산국으로 등장하였으며, 철강재의 수입대체와 수출증대, 그리고 여타의 관련산업에 기초소재를 원활히 공급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기계공업 부문을 보면 장기 기계공업 육성계획을 수립하여 창원 기계공업단지가 건설되었으며, 수송용 기계공업도 몹시 빠르게 발전을 하였다. 초대형 현대조선소의 준공으로 우리 나라는 세계적인 조선국으로 발돋움하였고, 자동차의 국산화율도 크게 높아졌으며, 국산승용차의 해외진출도 시작되었다.
화학공업은 울산 석유화학 공업단지가 본격적으로 가동되어 기초화학 분야의 공급기반이 확립되었다. 아울러 시멘트 생산도 크게 증가하여 1976년의 생산은 1962년에 비하여 15배로 증가하였으며, 세계 제6위의 시멘트 수출국으로 부상하였다.
또한 사회 간접자본도 계속 확충되었다. 1973년 호남고속도로 및 남해고속도로의 완전개통으로 전국이 일일생활권이 되었으며, 1976년 서울에서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어 도시교통난 해소의 획기적인 계기가 마련되었다.
제4차 경제개발5개년계획기간(1977∼1981)에는 기계·조선 등 고용효과가 크면서 기술 및 숙련노동 집약적인 산업을 집중육성함으로써 제조업 부문에서 중화학공업의 비중을 높여 산업구조를 고도화하였다. 즉, 계속된 중화학공업에 대한 투자로 이 분야가 산업성장을 주도하게 된 것이다.
공업구조면에서 보면 1979년을 기점으로 중화학공업이 경공업을 앞지르기 시작했으며, 특히 조선·철강 등 일부 기간산업 부문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하였다. 우리 나라 자동차공업은 이 기간중에 일대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그 전의 부품조립방식에서 탈피하고 국산승용차모델을 자체개발하여 일관성 있는 생산체제를 갖추었으며, 국산화율도 크게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조선공업은 그 동안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1981년부터 건조주문과 실적에서 우리 나라가 세계 제2위의 조선국으로 떠올랐다. 비료공업도 단일공장으로는 세계 최대규모인 남해화학이 준공되어 수출산업으로까지 성장하였다.
그리고 전력 부문의 발전도 특기할 만하다. 1978년 고리 원자력발전소1호기가 완공되어 우리 나라는 세계에서 21번째로 원자력발전시설을 보유하게 되었으며, 전원 다양화에도 크게 기여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제5차 경제·사회발전5개년계획기간(1982∼1986)에는 1970년대의 두 차례에 걸친 석유파동에 영향을 받아 중화학공업 내부의 구조조정과 방향전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즉, 에너지 다소비형 기간산업인 석유화학 등의 건설은 내수 위주로 전환되기 시작하였으며, 자원절약적인 기계산업의 발전이 촉진되었다.
철강산업은 조강생산을 기준으로 1973년 124만 톤에서 1983년 1191만 톤으로 연평균 25.4%의 빠른 성장을 보였으며, 우리 나라는 세계 제15위의 철강생산국으로 부상하였다.
또한 자동차공업도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1985년 현대자동차의 연산 30만 대 규모의 승용차공장과 1986년 대우자동차의 연산 16만7천 대 규모의 승용차공장이 준공되어 자동차공업이 수출산업으로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우리 나라의 기간산업은 그 동안 적극적으로 육성책을 시행한 결과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제조업 부문에서 중화학공업의 비중이 경공업을 능가하기 시작한 이래, 우리 나라의 공업구조는 계속 고도화되어 왔다.
중화학공업의 대부분이 기간산업임을 감안하고 석탄·석유·전력 등 에너지산업과 수송 부문 등 사회 간접자본의 일부를 포함하면 전체산업에서 기간산업의 비중이 크게 향상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기간산업의 성장은 공업구조의 고도화뿐만 아니라 많은 부문이 국내수요를 충족시키고 수출산업이 되어 수출주도의 경제성장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계속적인 경제성장 과정에서 에너지 수요는 증가하는 반면, 국내 부존자원은 빈약하여 해외 의존도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장기적으로 안정된 에너지원의 확보와 비축능력 강화를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의 마두라유전을 비롯한 해외유전 개발사업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2차에너지인 전력의 경우, 석유발전의 비중은 낮아지고 전원 다양화를 위하여 원자력 및 수력발전의 비중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다.
원자력발전은 1986년 현재 6기(1∼3호기, 5∼7호기)가 가동중이며, 3기(8∼10호기)가 건설중에 있다. 1996년에 원자력발전 11·12호기까지 완공되면 우리 나라의 전체 발전설비의 36.8%를 원자력발전이 차지하여 제1의 발전원이 될 것이다. 그리고 1985년 총발전설비 용량은 1614만 ㎾이며, 총발전량은 580억7천만 ㎾h에 달하고 있다.
철강공업 등 소재형 금속공업은 기계·자동차·선박공업 등의 발전에 부응하고자 생산능력을 크게 확장해 왔다. 1973년 일관공정을 갖춘 포항제철의 제1기 준공으로 비로소 근대적인 철강산업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여 1981년 제4기 공장의 완공 및 제강업체의 증가로 공급능력이 크게 늘어나 1985년 조강생산량은 1,353만 9천 톤으로 총수요 1650만4천 톤에 대한 조강자급률 82%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1987년에 광양 제2제철소가 완공되어 우리 나라 철강공업은 다시 한번 도약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아울러 비철금속공업 부문도 상당한 수준으로, 구리와 아연의 제련설비는 국제단위가 되어 있다.
공작기계공업을 포함한 일부 기계공업 부문은 기술수준의 낙후, 관련 소재공업의 미발달, 시장의 협소 등으로 다소 발전이 지연된 것으로 지적되나 수입대체 전략에 의해 기술혁신을 위한 투자증대와 부품 자급화 노력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기계공업 중 수송용 기계공업 부문은 본격적인 발전궤도에 돌입하고 있다. 자동차공업은 그 동안 빠른 속도로 발전하여 1986년 승용차 생산능력이 65만 대를 넘고 있다. 1985년 12만3천 대의 자동차가 유럽·캐나다 등지로 수출되었으며, 1986년에는 미국시장으로 진출하여 판매 제1위를 기록하는 등 수출산업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또한, 많은 산업에 연관효과를 미치는 조선공업도 좋은 입지조건에 의해 크게 발전하여 1985년도 신조선 건조량은 280만 G·T로 사상 최고수준을 기록하였다. 기초화학공업은 발전기반이 조성되어 있는 상태이며, 1985년 화학비료와 시멘트의 생산량은 각각 3백만 톤과 2055만 톤으로 내수충족은 물론 수출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석유화학공업은 1979년 여천 석유화학공업단지의 건설로 1980년대에 자급률이 80%에 달하고 있다. 수송 부문의 현황은 1984년 현재 철도의 영업 ㎞가 3,121㎞이며, 그 가운데 23%가 복선으로 되어 있고, 도로의 총연장은 5만 1003㎞로 포장률은 46.3%에 이르고 있으며, 선박 보유현황은 740만 8천 G·T이다.
수송구조면에서 보면 화물수송에서 철도의 분담률은 완만하게 감소하고 있으며, 해운분담률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그리고 항공 부문도 수송구조면에서 비중은 낮으나 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며, 대도시 여객수송에서 지하철의 구실이 점차 커지고 있다.
우리 나라는 경제개발과 공업화를 추진하면서 효율적인 경제활동을 지원하고 산업기반을 강화하기 위하여 기간산업 육성정책을 계속 추진해 왔다. 그 동안 중화학공업에 대한 중복투자와 과잉투자로 인해 효율성이 저하되기도 하였으며, 대내외 여건이 변화하여 각종 기간산업의 비중도 변동하고 있으므로 그에 대처해야 한다.
에너지 분야는 석탄 등 국내 부존에너지 자원의 안정적인 개발이 필요하고 대체에너지의 개발에도 중점을 두어야 한다. 중화학공업 분야에서는 비교우위가 크고 다른 산업에 대한 전후방 연관효과가 큰 자동차공업과 조선공업 등의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수송산업은 특히 제5차 경제·사회발전5개년계획기간 이후부터(6공화국부터)정부의 관심이 줄어 들면서 투자를 통한 확충, 수송수단 간의 분담체계 확립 작업이 제자리 걸음하는 현실이 벌어지게 되었다.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은 항만에서 도시나 공업 지대를 연계하는 수송체계에 병목현상이 심화되어 물류비용을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수송산업 분야는 수송수단 간의 합리적인 분담체계와 연결수송체계를 확립하여 수요에 대응하도록 도로·철도·항만 등의 시설을 보다 더 발전시켜야 한다. 이제는 양적인 팽창보다는 질적인 향상을 도모할 단계에 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