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를 이용하여 신체의 안정성·난이도·우아함·독창성 등을 동작으로 나타내는 경기이다. 기계는 인간생활의 역사 중 여러 가지 기회로 시작되었다. 또한 체육인에 의하여 발전해 기계의 형이나 크기에 따라 기술이 진보되었으며, 종목 특성에 따라 변천하게 되었다.
기계체조의 경기종목은 남녀에 따라 다른데, 남자의 경기종목은 6종목으로 마루운동·철봉·평행봉·안마·링·도마(跳馬)이다. 여자종목은 4종목으로 마루운동·평균대·이단평행봉·도마이다. 이들 종목을 실시할 때 일반적으로는 경기체조(gymnastics)로 불리며 올림픽경기대회의 필수종목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체조경기라고 말할 때는 이 올림픽경기대회·세계선수권대회·아시아경기대회에서 실시한 경기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체조경기의 특성은 우선 신체를 조화있게 발달시켜 주며 고도의 경기기술을 통하여 신체를 경쾌하고 민첩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또한 기계를 사용하는 까닭에 흥미가 있고 기능에 대한 도전력이 생기게 되며, 운동의 리듬이나 물리적 법칙을 활용하여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많기 때문에 미적 표현능력을 길러주는 동시에 정신적으로 자신감·용기·인내심 등을 육성시킬 수 있는 특성이 있다.
기계체조의 발생은 고대이집트시대로부터 수렵의 성공을 기원하기 위하여 재주(purzel beum)를 넘거나, 어린이들이 유희를 통해서 즐기는 일, 혹은 궁중의 무용수나 곡예사가 그 동작을 행하는 등에서 운동의 형태가 분화되어 발전하여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기계체조의 원형이 되는 형태로의 발전은 독일체조의 아버지라고 하는 얀(Jahn, F. L.)이 창시하였다.
얀은 나폴레옹전쟁에서 패배한 조국청년들의 정신과 신체를 단련하기 위해서 안마·목마·철봉·평균대·평행봉과 같은 기계를 선택하여 그 기계에 맞는 여러 가지의 운동형태를 고안하였다. 체조경기로서 처음 양상을 띤 것은 1814년에 얀이 경기대회를 열었던 때였다. 그러나 그 경기회에서 실시한 종목은 순수한 체조경기로서는 인정하기에 곤란하였다.
체조경기가 정식으로 시작된 것은 1896년에 제1회 근대올림픽경기가 개최되었을 때였다. 그 당시의 종목은 철봉·평행봉·안마·링 등의 4개 종목이었으며, 현재와 같이 6종목으로 확정된 것은 1930년 룩셈부르크세계선수권대회 때였으며, 올림픽에서는 1932년 제10회 로스앤젤레스올림픽대회 때였다. 여자기계체조는 제9회 암스테르담올림픽대회부터 채택되었다.
우리나라에 기계체조가 들어온 연대와 내용은 확실하지는 않으나 1895년 고종의 「교육조서(敎育詔書)」에 의하여 지·덕·체 교육이 강조되어 체조가 교과목으로 채택되면서부터이며, 1927년 교육과정에 기계체조과목이 생기면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1927년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YMCA) 체육부 주최로 YMCA회관에서 현상철봉대회(懸賞鐵棒大會)를 개최하였으며, 1931년 9월 25일 역시 YMCA회관에서 제1회 전조선기계체조대회를 열었다.
그 해 9월 5일 덴마크의 닐스북(Niels Bukh) 일행 26명이 내한하여 경성운동장(지금의 동대문운동장)에서 시범을 보여주어 급속한 체조보급의 계기가 되었다. 그리하여 1932년 2월 12일부터 1주일간 동아일보사 후원으로 천도교 청우당에서 덴마크체조강습회를 가졌다.
1946년 3월 6일 조선체조경기연맹(朝鮮體操競技聯盟)이 창립, 발족되었으며, 4월 27일 제1회 전조선기계체조선수권대회가 개최되어 오늘날 전국종별체조선수권대회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1949년 제30회 전국체육대회 때부터 체조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1956년 홍콩의 초청에 의하여 최초로 국외 원정경기를 가지게 되었다.
1959년 10월 제38차 코펜하겐국제체조연맹 총회에 참가하여 국제체조연맹(FIG)의 정식회원국이 되었으며, 국제체조연맹 가입 후 처음으로 1960년 제17회 로마올림픽대회에 남녀 각각 1명씩(남: 金尙國, 여: 柳明子) 참가하였다. 그 뒤 1964년 제18회 동경올림픽대회에 남자는 단체로, 여자는 개인으로 출전하여 남자는 18개국 중 12위를 차지하여 국제무대에 발돋움하게 되었다.
외국선수 국내 초청경기는 1968년 12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제1회 한일친선대회가 처음이었다. 그 뒤 많은 발전을 하여 1974년 제7회 테헤란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남녀 각각 단체 4위를 하였고, 이영택(李泳澤)은 개인종합 3위와 평행봉에서 1위, 김국환(金國煥)은 링에서 1위, 김휘철(金輝喆)은 안마에서 3위를 하였다.
또한 1985년 7월 일본 고베(神戶)에서 개최된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주영삼(朱榮三)의 동메달과, 10월 일본 국제주니어체조선수권대회에서 윤창선(尹昌善)의 마루운동 1위는 국제무대의 진출과 한국체조의 앞날을 밝게 해주었다.
1986년 10월에 개최된 제10회 서울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세계정상급의 중공과 일본의 벽을 깨고 권순성(權純成)은 평행봉에서 1위, 서선앵(徐瑄鶯)은 평균대에서 1위, 서연희(徐演希)는 2단평행봉에서 1위를 하는 등 큰 수확을 거두었다. 연이어 일본에서 개최된 ’86나고야주니어컵 국제체조대회에서 한국체조의 수준이 세계정상에 와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주었다.
현재 국내에는 1,500여 명의 등록선수가 있으며, 체조경기가 동양인의 체격에 적합한 운동이라는 점과 서울아시아경기대회에서 세계정상급의 일본선수를 제치고 단체 2위를 차지한 점을 보면, 앞으로 세계무대에 진출할 수 있는 유망한 경기종목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의 주요 경기로는 전국종별선수권대회·전국종합선수권대회·전국체육대회·소년체육대회 등이 있으며, 국제대회로는 올림픽경기대회·아시아경기대회·세계선수권대회·유니버시아드경기대회 등이 있다.
기계체조경기는 남자가 마루운동·철봉·평행봉·안마·링·도마의 6종목과 여자는 4종목에 대하여 규정연기와 자유연기로 한다. 규정종목의 연기는 국제체조연맹 남녀기술분과위원회에서 작성한 규정종목연기로서 구성되어 4년간 유효하며, 세계선수권대회와 다음 올림픽경기대회까지 사용된다.
규정종목의 내용은 올림픽경기대회 후 4개월내에 공표되어야 하며, 자유종목연기의 내용은 그 구성이 현행의 채점규칙에 명시되어 있는 제반여건에 상응하여야 한다.
경기내용은 제1경기(단체경기, 규정·자유종목), 제2경기(개인종합경기, 6개 자유종목), 제3경기(종목별결승, 규정·자유종목 합계득점 순위)로 실시된다. 경기복장은 제1경기에 있어서 모든 팀은 통일된, 같은 색의 선수복으로 출전하여야 한다. 안마·링·평행봉·철봉에 있어서는 흰 긴바지와 슈즈를 신어야 하고, 마루운동과 뜀틀에서는 흰바지와 슈즈 혹은 반바지와 슈즈나 맨발로 할 수 있다.
심판은 4명의 심판원과 1명의 주심이 있으며, 4명의 심판원은 점수를 관중과 경기자에게 동시에 표시한다. 각 경기는 10점 만점으로 채점하고 4명의 심판원이 표시한 점수의 중간 2개의 점수를 2분하여 산출하며, 중간 2개의 점수차가 8.5 이상인 경우에는 2분의 1점, 기타의 경우에는 1점을 초과하였을 때는 주심의 점수를 참고한다.
(1) 도마
로마제국시대에 신병에게 승마술을 가르치기 위해 목마를 만들고 거기에 뛰어오르고 또는 뛰어내리는 훈련을 하였고, 중세에는 기사의 훈련으로서 행하여진 데에서 비롯되었다. 도마가 스포츠경기로서 행하여진 것은 19세기 중반이다. 독일에서 행하여진 체조제(1877년)에서 도마 규정연기의 조주를 6보로 제한하고, 말 위에 한번 착수하여 뛰어넘는 것, 혹은 말 위에 뛰어 타는 것이 규정도약이었다.
도마는 제1회 근대올림픽대회(1896)부터 체조종목으로 채택되어 실시되었다. 사용하고 있는 기구는 국제체조연맹에서 공인규격으로 정하였다. 이 운동의 특성은 하지대 근력을 이용하여 20m의 조주로를 힘차게 달려 구름판을 밟고 도마에 손을 짚고 뛰어넘는 운동이다. 발구름을 하여 도마 위를 비약할 때 기술의 난이도, 우아함, 경쾌함에 따라 채점하게 된다. 뜀틀운동은 다른 종목과 비교하여 볼 때 비교적 기술내용이 단순하다.
그 내용으로는 손짚고 뛰어넘기와 돌기, 혹은 손짚고 옆으로 돌기, 손짚고 돌며 틀기 등의 복합기술 등이 있다. 남자경기와 여자경기의 차이는 도마를 놓는 위치에 있다. 즉, 남자경기에는 종축으로 놓고, 여자경기에는 횡축으로 놓고 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조주로의 길이는 25m 이내로 정하여 자유롭게 뛸 수 있다.
(2) 링
높은 천장 횡목에서 줄이 늘어진 환(環, 링)으로 운동을 하는 것이다.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그러나 로프나 쇠사슬에 매달려진 발걸이 같은 것을 이용하여 운동을 행하게 된 것은 곡예사로부터이며 그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고대로마시대에 링이라는 명칭(romische ringe)이 있었다. 체조로서 이 기계가 사용된 것은 아돌프 스피스(Adolf Spiess)에 의해서였다.
링은 제1회 근대올림픽대회 때에 체조경기의 정식종목으로 취급되었다. 당시에 아테네의 스타디움에 세워진 것은 호화스런 횡목(橫木: 가로질러 놓은 나무)에서 늘어진 두 개의 환이었다. 체조경기로서 현재와 같이 기초가 쌓여진 것은 1928년 암스테르담올림픽대회부터였다. 현재 국제경기에서 사용하고 있는 기구는 국제체조연맹에서 공인규격으로 인정한 것이다.
링운동은 늘어진 줄에 매달려 줄의 진동을 잘 이용하여 올라가 지지하고 정지하는 정적인 운동과의 조화로 이루어진다. 특히, 상지대(上肢帶: 어깨·팔·손 등의 上肢를 버티는 골격) 근력이 주로 작용하는 것으로 근육에 탄력성을 요구하는 종목이다.
경기 때에 구성상 유의하여야 할 사항은 우선 줄의 흔들림이 없어야 하며 진동기술, 힘으로 하는 기술, 정지기술 등이 포함되어야 하며, 2회의 물구나무서기가 들어가야 되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힘으로 실시하여야 하며, 또 다른 하나는 진동을 이용하여 실시하여야 한다.
(3) 마루운동
고대이집트시대의 벽화나 꽃병에 그려진 손짚고 돌기 동작이 마루운동의 기원이라 말한다. 이와 같은 운동은 어린이들의 유희나 직업적 곡예 혹은 신앙적인 동작으로 행하여졌다. 그 뒤 19세기 중반에 스포츠화가 이루어져 경기대회를 열었으나 현재의 운동형태까지는 취급되지 않았다.
올림픽경기대회에서 마루운동이 처음 취급된 것은 암스테르담대회부터이며, 현재 행해지고 있는 텀블링(tumbling)이나 기교계의 기술을 넣어 연기가 행하여진 것은 1932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대회부터였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기구의 규격은 국제체조연맹에서 공인규격으로 인정되고 있는 사방 12m이다.
마루운동은 인간의 활동 중에 자연발생적으로 유도될 수 있는 동작을 행함으로써 신체를 조화롭게 발달시킬 수 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기술로는 구르기 분야로서 앞구르기·뒤구르기·옆구르기 등이 있고, 돌기 분야로서 손짚고 앞돌기·손짚고 옆돌기·손짚고 뒤돌기 등이 있고, 공중돌기 분야로서 앞공중돌기·뒤공중돌기·옆공중돌기·몸펴뒤공중돌기와 이 밖에 특기기술 등이 있다. 경기시에는 경기시간 50∼70초 사이에 실시하여야 되는데, 여자의 경우는 반드시 음악이 사용되어야 한다.
경기시 구성상에 유의하여야 되는 것은 도약기술·평균기술·정지기술·유연성·손짚고 돌기·공중돌기 등의 기술을 율동적으로 연결하여 경기장을 골고루 사용하여 실시하여야 한다. 정지기술은 2회까지 허용되며, 시간은 2초로 정하고 있다.
(4) 안마
기원은 고대로마시대에 승마훈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얀은 1811년에 하젠하이데체조장에 안마를 설치하고 독일 체조를 출발시켰으며 『독일체조』 (1816)라는 책에서 안마와 도마를 함께 한 운동을 슈빈겐(Schwingen)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 운동방법의 규칙에서 몸을 수직으로 유지하며 무릎이나 발끝을 쭉 편 채 운동할 것을 지정하였다. 현재 국제체조경기에서 사용하는 기구는 국제체조연맹에서 공인규격으로 인정한 것이다.
안마경기는 손잡이를 중심으로 한 양편 옆면을 골고루 이용하여 몸을 곧게 뻗어 펴고 양손으로 버티어 실시하는 것으로 주로 상지대 근력을 이용하는 운동이다. 경기시 주로 사용되는 기술로서는 다리엇갈리기·선회돌기·틀어옮기기·들어옮기기 등의 기술이 있다.
경기시 연기의 구성에 유의하여야 할 사항은 진동과 선회에서 정지하지 않고 실시해야 하며, 발엇갈리기의 바로와 반대 동작을 구사하여야 하며, 안마의 세 부분을 반드시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
(5) 철봉
원시인이 나무의 열매를 따고, 혹은 맹수로부터 받는 위험을 피하기 위하여 나무에 오르거나 매달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체조경기의 철봉 원형은 얀에 의해 하젠하이데에 설립된 횡목에서 행한 운동이라고 하겠다. 당시의 연습기계로서는 철봉 지름이 5.85∼6.5㎝의 통나무와 같은 목봉이었다.
그러나 지름이 6㎝나 되는 통나무에서는 여러 가지 자세를 유지하는 운동은 할 수 있어도 힘을 주어 행하는 기술은 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부러지지 않는, 가늘고 견고한 것으로 변하게 되었다. 목봉에서 철봉으로 대치된 것은 1850년이다. 그 뒤 1936년 제11회 베를린올림픽대회에서 기계의 규격을 철재로 높이 2.4m, 철봉의 지름 28∼30㎜로 되었으며 국제체조연맹에서는 1975년 1월 1일 철봉의 기계규격을 규정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실행된 대회는 1927년에 YMCA회관 운동실에서 열린 현상철봉대회 경기였다. 철봉운동은 철봉에 매달린 자세에서 진동을 이용하여 행하는 운동으로 기계체조종목 가운데 가장 불안한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기술이 다양하여 관중의 입장에서 관전하기에는 흥미있는 종목이다.
기술의 분류는 철봉에 손을 잡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되는데, 잡기의 명칭으로는 바로잡기·엎어잡기·엇걸어잡기·한손엎어잡기·틀어잡기 등이 있으며, 기술로는 차오르기·흔들어오르기·앞뒤크게 휘돌기 등이 있다. 구성상 유의해야 할 점은 진동기술과 크게 휘돌기의 방향전환, 틀기기술, 양손을 철봉에서 놓았다가 다시잡는 기술이 포함되어 시작에서부터 착지시까지 멈추지 않고 동작이 연결되어야 한다.
(6) 평균대
균형을 잡고 국한된 장소를 이동하는 운동이다. 처음으로 올림픽대회에 등장한 것은 베를린대회부터이다. 그때 주어진 규정연기는 극히 단순하였고 곡예사적인 기술은 들어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 뒤 평균대의 너비가 8㎝, 길이 5m, 높이 1.2m의 기계로 고정되고부터 곡예기술을 허용하면서 근대체조로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너비 10㎝, 길이 5m, 높이 1.2m로 규정하게 된 것은 국제체조연맹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기술의 내용은 마루운동의 기술과 아주 비슷하지만 운동하는 지지면의 제한과 높이의 차이라는 조건하에 운동이 행하여지게 된다.
연기면의 10㎝ 너비는 물리적으로 균형을 잡기 힘들게 하고 평균대의 높이는 심리적 균형을 흔들리게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평균대에서 실시되는 기술은 걷기·뛰기·방향바꾸기·구르기·돌기·공중돌기 등의 동적인 요소가 있고, 균형을 취하는 정적인 요소가 있다.
경기는 1분 10초에서 1분 30초 사이에 평균대의 전면을 이용하여 정적인 요소와 동적인 요소를 조화있게 구성하여 연속적인 연결성과 우아함·산뜻함·창의성이 발휘된 기교로서 이루어져야 한다. 평균대에서의 전형적인 정지요소(정지)는 3회까지 허용한다.
(7) 평행봉
고안자는 확실하지 않으나, 1811년에 얀에 의해서 베를린 교외의 하젠하이데체조장에 평행봉이라는 기계를 설치하였다. 얀의 체조 협력자였던 보네만 (Bornemann)의 보고에 의하면 평행봉은 당시 안마의 근처에 설치된 지름이 약 8㎝되는 통나무와 같은 막대에 얀 자신의 글씨로 ‘바렌(Barren)’이라는 이름을 쓰고 안마운동의 연습기계로서 이용하였다.
얀은 평행봉의 운동을 두 종류로 구분하여, 완력의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운동과 안마에서 행하여지는 것 같이 기교적인 운동을 행하게 하였다. 그러나 평행봉은 안마의 보조기구인 것에서 탈피하여 독자의 종목으로 행하게 되었다.
특히 이 경기는 1850년부터 1863년까지 독일체조와 스웨덴체조 사이에 ‘평행봉 논쟁’이 계속되다가 결국 독일체조 지지파가 승리하여 평행봉의 구조가 진보되었고, 땅을 파고 세웠던 얀의 평행봉은 1847년 아이제렌에 의하여 운반할 수 있고 높이와 너비를 조절할 수 있는 평행봉으로 만들었다. 우리나라에 도입된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1931년 10월 31일에 YMCA회관 운동실에서 열린 제1회 전조선기계체조대회 때 평행봉이 시합종목으로 기록되고 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기구는 국제체조연맹에서 공인규격으로 인정한 것이다. 평행봉운동은 팔로 지지한 상태에서 진동을 이용한 동작과 또는 매달린 상태에서의 진동을 이용한 동작을 통해서 행하여지는 것이며, 정지기술로서는 물구나무서기나 엘자(L字)버티기 등으로 주로 상지대 근력을 사용해서 행하는 운동이다. 경기 기술은 자세유지영역과 진동영역으로 구분된다.
경기시에 유의해야 할 사항은 진동기와 양 손을 봉에서 놓으며 행하는 기술과 정지기술이 포함되어야 하며, 힘으로 표현되는 기술이 포함되면 좋다. 정지기술은 3회를 넘지 말아야 하며, 봉 위에서 봉 아래로 양 손을 동시에 놓았다 잡는 기술이 포함되어야 된다.
(8) 이단평행봉
19세기 후반에 여자체조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짐에 따라 각지의 체조구락부에서 여자부가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지도자는 거의 남성이었고 남자체조활동의 영역에서 탈피하지 못하였다. 제1차세계대전 후 유럽에서는 남녀동등권의 주장에 따라 여성들이 남자의 어려운 기술에 도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풍조는 의학계나 지식층으로부터 빈축을 받았다.
따라서, 철봉이나 안마와 같은 종목은 여자체조에서 없어지고 평행봉도 점차 이단평행봉으로 변형되기 시작하였다. 이단평행봉의 기술발전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도 부진하였으나 베를린올림픽대회에서 처음으로 이단평행봉에 규정연기가 채용되었다. 그러나 그 때에도 자유연기는 이단의 형식을 요구하지 않았고 양봉의 높이는 자유라고만 하였다.
당시에는 남자평행봉밖에 없었으므로 기계구조상 60㎝의 차이만을 두게 하였다. 그 뒤 여러 가지 문제점을 보완하여 오늘날과 같은 기구가 국제체조연맹에 의하여 규정되었다. 이단평행봉에서 실시되고 있는 내용은 철봉의 기술로서 차오르기나 팔로 지지하여 도는 등의 기술이 많다. 그러나 두 개의 바가 높이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철봉과 같이 다이나믹한 크게 돌기 형태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길게 매달려 행하는 기술은 낮은 봉에 방해를 받게 되어 도중에 다른 바로 옮기든가 혹은 다른 기술로 옮길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높은 봉에서 낮은 봉으로, 또는 낮은 봉에서 높은 봉으로 옮기는 방법이 이단평행봉의 독특한 운동특성이라고 하겠다.
경기시에 구성상 유의해야 할 사항은 기구에 매달려 시작된 때부터 착지동작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야 하며, 높은 봉과 낮은 봉으로의 이동을 골고루 사용하고 한 봉에서의 돌기운동이 포함되어야 한다. 연기중에 순간적인 정지형태는 2회까지만 허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