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좌도 고인돌 (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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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안좌 방월리 지석묘 후면
신안 안좌 방월리 지석묘 후면
선사문화
유적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남방식(바둑판식) 고인돌. 지석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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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남방식(바둑판식) 고인돌. 지석묘.
내용

고인돌은 마을 안과 산 경사면 일대, 그리고 그 중간 평지에 무리를 이루고 있다. 아직 학술적인 발굴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된 고인돌은 모두 30여 개이다. 모두 야산의 얕은 구릉지대를 이용해 축조하였고, 지형과 지역에 따라 외관상 몇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진다.

형식은 모두 남방식(바둑판식) 고인돌에 속하며, 대체로 거대한 덮개돌[上石]을 4~5개의 괴석(塊石)으로 받친 바둑판 모양을 하고 있다. 규모는 개석의 장변이 480㎝인 것에서부터 100㎝인 것까지 균일하지 않다. 덮개돌을 떠받친 받침돌[支石]은 길이 20∼30㎝ 내외의 괴석을 이용하였다.

이 곳의 고인돌은 지역에 따라서 크게 A지구에서 G지구로 나누어진다. A지구의 경우 장축을 모두 남북으로 두고 있지만, B지구의 경우는 장축을 동서로 두어 바다를 향하고 있으며, 나머지 지구는 산 경사면에 따라서 불규칙적인 장축의 방향을 보이고 있다.

A지구의 각 고인돌 사이의 간격은 5~6m 정도이며 제2·4·5호의 한 군과 제6∼9호의 한 군은 더욱 협소한 상태로 인접하여 일렬(一列)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남해의 진도(珍島)·완도(莞島) 등의 남해 도서와 장흥군 일대의 해안가에서 흔히 나타나며 대구 대봉동의 경우도 또한 그러하다.

의의와 평가

기좌도 고인돌의 연대는 반출 유물이 없어 확실하게 알 수 없으나 대략 서기전 천년기의 후반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남해 도서 고고학』(김원룡·임효재, 서울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 1968)
「전남지방소재 지석묘의 형식과 분류」(최몽룡, 『역사학보』78, 1978)
「기좌도지석묘군」(임효재, 『한국고고』1,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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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최몽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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