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괴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이조좌랑, 정언, 헌납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개백(介伯)
  • 석정(石亭)
인물/전통 인물
  • 본관영광(靈光)
  • 사망 연도1482년(성종 13)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감찰
  • 출생 연도1450년(세종 3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강병수
  • 최종수정 2025년 11월 06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이조좌랑, 정언, 헌납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영광(靈光). 자는 개백(介伯), 호는 석정(石亭). 할아버지는 평강현감(平康縣監) 김경의(金敬義)이고, 아버지는 이조참판 김필(金㻶)이며, 어머니는 찰방 이숙강(李叔剛)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여러 벼슬을 거치면서 남효온(南孝溫)과 교유하였다.

1469년(예종 1) 사마양시에 합격하였으며, 1474년(성종 5)에는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승문원정자 · 주서가 되고, 이조좌랑 · 박사 · 정언 등을 거쳐, 1477년에는 헌납이 되어 감찰로서 활약하였다.

이해 유자광(柳子光) · 임사홍(任士洪) 등이 지평 김언신(金彦辛)을 사주하여 효령대군의 손자 서원군(瑞原君)의 사위인 도승지 현석규(玄錫圭)를 탄핵하도록 하였다. 이어 유자광도 현석규를 탄핵하고 나오자 성종은 이들의 탄핵이 파벌을 일으키는 비판으로 보고 김언신을 하옥시켰다.

이듬해 예문관봉교 표연말(表沿末) · 종실 심원(深源) 등과 함께 헌납으로 현석규와 김언신에 대한 구해(救解) 상소를 하여 유자광과 임사홍을 동래와 의주로 각각 유배시키게 하였다.

그런데 사헌부로부터 오히려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탄핵을 받고 표연말 · 김맹성(金孟性) 등과 함께 직첩을 몰수당하였다. 그러나 그 뒤 1482년(성종 13) 죄상이 없음이 인정되어 반대파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직첩을 환급받았다.

참고문헌

  • - 『예종실록(睿宗室錄)』

  • - 『성종실록(成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석정유고(石亭遺稿)』

주석

  • 주1

    : 사마시 급제 : 『성화기축6년9월일생원진사시방(成化己丑六年九月日生員進士試榜)』(고려대학교 도서관[만송 貴 378])

  • 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四(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3

    : 직첩을 환급받다 : 『성종실록』 143권, 1482년(성종 13) 7월 23일. "유자광·김괴·김맹성·표연말·김여려 등의 직첩을 돌려주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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