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의 오장육부에 생긴 병이 신체의 외부에 나타나는 자리를 한의학에서는 보통 경락(經絡)이라 하고, 이곳을 침이나 뜸으로 자극함으로써 병을 치료한다. 그리고 이 오장육부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침을 놓거나 뜸을 뜨는 자리를 그림으로 표시해놓은 인체도를 동인도라 하였다.
이 동인도는 몇 가지 다른 이름으로도 불렸는데, 예를 들면 침과 뜸을 뜨는 자리를 그린 것이라 하여 침구도(鍼灸圖), 침 놓을 자리 즉 경혈을 표시한 것이라 하여 경혈도(經穴圖), 경락을 그려놓은 것이기 때문에 경락도(經絡圖), 인체의 명당 자리에 침구를 놓는다 하여 명당도(明堂圖)라고도 불린다.
최초의 기록은 고구려 평원왕 3년(561) 때 고구려에 와 있던 중국오(吳)나라의 지총(知聰)이 일본으로 귀화할 때 가지고 간 의서(醫書) 등 164권의 책 가운데 명당도(明堂圖)가 끼어 있었다고 한다. 그 뒤 고구려 승려 안작득지(鞍作得志)가 645년 일본에 침술을 전했으며, 선덕여왕 때 일본인이 신라로 건너와 침구술을 배우고 돌아가 침박사가 되었다는 기록들로 보아 동인도의 보급도 함께 행하여 졌을 것이 확실하다.
고려시대 과거제도 중 의학 분야는 1136년(인종 14)에 의업(醫業)과 주금업(呪禁業:고려때 시험 중 잡과의 한 과목)으로 더욱 세분되었는데, 둘 다 침구와 관계되는 명당경(明堂經)·침경(鍼經)·맥경(脈經) 등이 시험과목으로 포함되어 있는 점이라든가, 조선시대 왕실에서 구리로 사람 모양을 만들고 여기에 경락과 경혈을 표시해놓은 소위 동인(銅人)을 제작하여 의학교육 보조재료로 쓰였던 점을 감안해 볼 때 동인도의 발달은 상당한 수준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존하는 동인도는 목판본과 필사본의 두 가지가 전해지며, 필사본 중에는 채색된 것도 있다. 몸의 앞면·뒷면 혹은 앞뒤 측면을 한 조로 한 것이 보편적이지만, 보다 자세한 것은 전후, 좌우, 측면의 경락과 경혈을 각기 따로 한장씩 그린 것도 전한다. 휴대용 동인도는 부피가 작고 쉽게 펴볼 수 있도록 병풍식 혹은 딱지식으로 접은 것도 있다. 대개 벽에 걸어놓고 보도록 만든 것이 주종을 이룬다. 현재에도 침구교육용으로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