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태자익위사세마, 김포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태자익위사세마로 있을 때는 경연(經筵)에서 『상서(尙書)』의 태갑(太甲)의 상 · 하를 강의하였고, 사어(司禦)로 있을 때는 『성학집요(聖學輯要)』를 강의하였으며, 김포군수로 재임시에는 학교를 설치하여 군민을 잘 교육시켰다는 암행어사의 보고에 따라 임금으로부터 『소학』 한 질을 하사 받았다.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교육에 힘써 서린(西隣)에서 「맹자공손추장(孟子公孫丑章)」과 「대학정심장(大學正心章)」을 강의하여 후진을 가르쳤다. 특히 역리학(易理學)을 깊이 연구하여 『주역(周易)』 · 『역학계몽(易學啓蒙)』 · 『기삼백(朞三百)』 · 『태극도(太極圖)』 · 『율려신서(律呂新書)』 등을 주해하여 이해하기 쉽도록 도시(圖示)하고 설명을 첨가했다. 저서로는 『용재문집』 15권이 있다.
참고문헌
- 『용재문집(庸齋文集)』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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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김포군수 재임시 행적 : 『영조실록』 94권, 1759년(영조 35) 12월. "김포 군수 김근행이 권학에 힘쓰자 《소학》 1부를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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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김근행 저술 : 『용재집(庸齋集)』(한국문집총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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