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3.1운동 당시 48인의 한 사람으로 활약한 교육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919년 2월 독립만세운동 계획 당시, 현상윤(玄相允)의 부탁으로 기독교계의 이승훈(李昇薰)과의 연락을 담당해, 이승훈과 최남선(崔南善)의 회동을 성공시켰다. 이후 민족대표 48인 중의 하나로 투옥되었으나 재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1921년부터 25년간 휘문(徽文)중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1938년 일제의 해군기념일(5.27)을 맞아 1905년 쓰시마섬 인근에서 일본 연합함대가 러시아 발틱 함대를 격파한 전투를 '트라팔가 · 유틀란트 해전'과 함께 '세계 3대 해전'으로 소개하는 글(『매일신보』, 1938.5.27)과 1942년 소년 · 소녀들에게 일본군이 점령한 지역의 기후와 지리를 설명하는 글을 게재했다.
1945년 경성여자상업학교(현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 문영여자중학교, 휘문중학교 등의 교장 및 조선지리학회회장 등을 거쳐, 1949년 공군사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1956년 12월 26일 사망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왜정시대인물사료』 6(국회도서관, 1983)
- 『대한연감(4288년판)』(대한연감사, 1955)
- 『매일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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