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효행으로 정려를 하사 받고, 중학교 교관으로 추증된 효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뒤에 중부 김시탁(金時鐸)에게 입양(入養)되어 친부모처럼 섬겼고, 죽은 뒤에는 3년 시묘(侍墓)를 상례대로 수행하였다. 묘소에서 나무를 잡고 울어서 눈물이 떨어진 곳에 나무가 말라죽자 왕부(王裒)가 다시 태어났다고 했고, 그 종도 그를 본받아 효비(孝婢)가 되었다.
늦게 모효재(慕斅齋)를 지어서 친척의 자제들과 인근의 선비들을 가르쳤고 사재를 털어 제전(祭田)을 마련하여 조상을 받드는 도리를 다했으며 가난한 사람의 자녀들을 18명이나 혼인시켜 주었고, 1876년(고종 13) 큰 흉년이 들어 구걸하는 사람이 늘어나자 죽을 쑤어서 행인들을 구제하기도 했다.
뒤에 효행으로 천거되어 정려(旌閭: 나라에서 효자 · 충신 · 열녀 등이 살던 동네에 붉은 칠을 한 정문을 세워 표창하던 일)가 내려졌으며, 중학교교관(中學校敎官)이 추증됐다. 저서로는 『돈와유고(遯窩遺稿)』 4권이 연세대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 『돈와유고(遯窩遺稿)』
주석
-
주1
: 김동권 저술 : 『돈와유고(遯窩遺稿)』 (국립중앙도서관 古3648-10-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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