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권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 개항기
조선후기 효행으로 정려를 하사 받고, 중학교 교관으로 추증된 효자.
이칭
  • 둔와(遯窩)
  • 치문(致文)
인물/전통 인물
  • 본관김녕(金寧)
  • 사망 연도1877년(고종 14)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16년(순조 16)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권오호 (한학자)
  • 최종수정 2025년 1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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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효행으로 정려를 하사 받고, 중학교 교관으로 추증된 효자.

개설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치문(致文), 호는 돈와(遯窩). 성주 부산리(星州鳧山里)에서 출생. 아버지는 김경탁(金慶鐸), 어머니는 성산이씨(星山李氏)로 이화복(李華復)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천성이 효성스러워 11세에 아버지의 상고를 당했는데 3년 동안 고기를 입에 대지 않고 통곡했으며 그 뒤로는 『효경(孝經)』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뒤에 중부 김시탁(金時鐸)에게 입양(入養)되어 친부모처럼 섬겼고, 죽은 뒤에는 3년 시묘(侍墓)를 상례대로 수행하였다. 묘소에서 나무를 잡고 울어서 눈물이 떨어진 곳에 나무가 말라죽자 왕부(王裒)가 다시 태어났다고 했고, 그 종도 그를 본받아 효비(孝婢)가 되었다.

늦게 모효재(慕斅齋)를 지어서 친척의 자제들과 인근의 선비들을 가르쳤고 사재를 털어 제전(祭田)을 마련하여 조상을 받드는 도리를 다했으며 가난한 사람의 자녀들을 18명이나 혼인시켜 주었고, 1876년(고종 13) 큰 흉년이 들어 구걸하는 사람이 늘어나자 죽을 쑤어서 행인들을 구제하기도 했다.

뒤에 효행으로 천거되어 정려(旌閭: 나라에서 효자 · 충신 · 열녀 등이 살던 동네에 붉은 칠을 한 정문을 세워 표창하던 일)가 내려졌으며, 중학교교관(中學校敎官)이 추증됐다. 저서로는 『돈와유고(遯窩遺稿)』 4권이 연세대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 - 『돈와유고(遯窩遺稿)』

주석

  • 주1

    : 김동권 저술 : 『돈와유고(遯窩遺稿)』 (국립중앙도서관 古3648-10-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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