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후부터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전개,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였으며, 뒤에 월북하였다. 이후 행적은 미상이다.
월북할 때까지 그가 발표한 작품으로는 「홍수」(조선일보, 1940.1.10.∼27.)·「절룸바리 돌쇠」(朝鮮週報, 1946.2.)·「압록강」(신천지, 1946.6.)·「한글 강습회」(大潮, 1946.7.)·「해방의 노래」(백제, 1947.1.)·「대설」(신천지, 1949.2.)·「이혼」(신천지, 1949.5.) 등이 있다.
광복 후에 발표된 김만선의 소설들은 서로간에 분명한 연계를 갖지 않은 채 낱낱으로 독립된 내용을 갖고 있는 것들이지만 그것들을 서로 연결시켜서 읽어보면 분명히 일관성을 지닌 이야기의 흐름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이야기의 흐름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면, (1) 해방 전에 주인공은 그 가족과 더불어 만주에서 생활했다. (2) 해방을 맞자 주인공은 귀국을 결심하고 천신만고 끝에 가족과 더불어 서울로 돌아온다. (3) 서울로 돌아온 주인공은 한편으로는 생활고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해방 공간의 어지러운 사상적 교류를 접하고 고민에 빠진다라는 것이 된다.
이러한 이야기의 흐름은 김만선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체험을 중요시하는 태도로 창작에 임한 결과 그의 작품들은 두 가지의 미덕을 갖추게 된다.
첫째, 그의 소설들은 광복 직후의 만주 풍경과 귀국자들의 내면 풍경에 대한 사실적인 기록이 되고 있다. 둘째, 그의 작품들은 광복의 감격이라는 것을 추상적으로 혹은 도식적으로 소리 높여 주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고 냉정하게 그 현장의 명암을 직시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다시 말하면, 그의 작품에는 광복을 맞이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신진 작가에게서 응당 드러남직한 생경한 흥분의 기미가 전혀 없다. 어디까지나 침착하고 정확한 관찰과 고민의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 한편으로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스케일이 작다는 약점도 지니고 있다.
그가 남긴 창작집으로는 『압록강』(동지사, 1948)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