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채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강원도관찰사, 개성부유수,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자봉(子封)
인물/전통 인물
  • 본관광산(光山)
  • 사망 연도1715년(숙종 3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경기도관찰사
  • 출생 연도1644년(인조 2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원근
  • 최종수정 2025년 12월 19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강원도관찰사, 개성부유수,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자봉(子封). 형조참판 김장생(金長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참판 김반(金槃)이고, 아버지는 어영대장 김익훈(金益勳)이며, 어머니는 김언(金琂)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80년(숙종 6) 주부로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언이 되어 대사헌 홍만용(洪萬容) 등과 우의정 오시수(吳始壽)의 처벌을 청하였다. 이어서 지평 · 부수찬 · 남한시재어사(南漢試才御史)를 지내고, 1684년 수찬이 되어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소를 올렸다.

1689년 세자 문제로 남인이 세력을 잡은 뒤 다시 아버지가 가혹한 고문으로 장살되자 그 억울함을 진정하다 절도로 유배되었다. 1694년 갑술옥사로 남인이 몰락하자 아버지의 관작이 복관되고 김만채도 풀려나와 호조참의로 기용되었으며, 이어서 승지를 거쳐 1703년에는 경상도관찰사가 되고, 병조참의 · 승지를 역임한 뒤 1705년 대사간이 되었다.

1708년 부사직(副司直)에 임명되었으며, 강원도관찰사 · 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 등을 역임하고, 1712년에는 경기도관찰사가 되었다.

참고문헌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 『송자대전(宋子大全)』

  • - 『정재집(定齋集)』

주석

  • 주1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三(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2

    : 부친 변호 상소 : 『숙종실록』 15권, 1684년(숙종 10) 2월 14일. "수찬 김만채가 상소하여 아버지 김익훈의 억울함을 호소하다"

  • 주3

    : 절도에 유배 : 『숙종실록』 20권, 1689년(숙종 15) 3월 13일. "대신과 제신들을 인견하고 김익훈 등에 대해 논하다"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