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채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강원도관찰사, 개성부유수,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자봉(子封)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44년(인조 22)
사망 연도
1715년(숙종 31)
본관
광산(光山)
주요 관직
경기도관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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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강원도관찰사, 개성부유수,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자봉(子封). 형조참판 김장생(金長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참판 김반(金槃)이고, 아버지는 어영대장 김익훈(金益勳)이며, 어머니는 김언(金琂)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80년(숙종 6) 주부로 별시 문과에 병과로 주1 정언이 되어 대사헌 홍만용(洪萬容) 등과 우의정 오시수(吳始壽)의 처벌을 청하였다. 이어서 지평 · 부수찬 · 남한시재어사(南漢試才御史)를 지내고, 1684년 수찬이 되어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소를 주2

1689년 세자 문제로 남인이 세력을 잡은 뒤 다시 아버지가 가혹한 고문으로 장살되자 그 억울함을 진정하다 절도로 주3 1694년 갑술옥사로 남인이 몰락하자 아버지의 관작이 복관되고 김만채도 풀려나와 호조참의로 기용되었으며, 이어서 승지를 거쳐 1703년에는 경상도관찰사가 되고, 병조참의 · 승지를 역임한 뒤 1705년 대사간이 되었다.

1708년 부사직(副司直)에 임명되었으며, 강원도관찰사 · 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 등을 역임하고, 1712년에는 경기도관찰사가 되었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국조방목(國朝榜目)』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송자대전(宋子大全)』
『정재집(定齋集)』
주석
주1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三(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주2

부친 변호 상소 : 『숙종실록』 15권, 1684년(숙종 10) 2월 14일. "수찬 김만채가 상소하여 아버지 김익훈의 억울함을 호소하다"

주3

절도에 유배 : 『숙종실록』 20권, 1689년(숙종 15) 3월 13일. "대신과 제신들을 인견하고 김익훈 등에 대해 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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