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강원도관찰사, 개성부유수,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89년 세자 문제로 남인이 세력을 잡은 뒤 다시 아버지가 가혹한 고문으로 장살되자 그 억울함을 진정하다 절도로 유배되었다. 1694년 갑술옥사로 남인이 몰락하자 아버지의 관작이 복관되고 김만채도 풀려나와 호조참의로 기용되었으며, 이어서 승지를 거쳐 1703년에는 경상도관찰사가 되고, 병조참의 · 승지를 역임한 뒤 1705년 대사간이 되었다.
1708년 부사직(副司直)에 임명되었으며, 강원도관찰사 · 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 등을 역임하고, 1712년에는 경기도관찰사가 되었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국조방목(國朝榜目)』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송자대전(宋子大全)』
- 『정재집(定齋集)』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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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三(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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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부친 변호 상소 : 『숙종실록』 15권, 1684년(숙종 10) 2월 14일. "수찬 김만채가 상소하여 아버지 김익훈의 억울함을 호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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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절도에 유배 : 『숙종실록』 20권, 1689년(숙종 15) 3월 13일. "대신과 제신들을 인견하고 김익훈 등에 대해 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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