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운

  • 경제·산업
  • 인물
  • 일제강점기
  • 현대
일제강점기 경성방직 기술책임자를 역임한 기술자.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72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912년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송상용 (한림대학교, 과학사)
  • 최종수정 2025년 07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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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경성방직 기술책임자를 역임한 기술자.

생애와 활동사항

개성 출신. 근대 면방직공업을 개척하였다. 1935년 경성고등공업학교 방적과를 졸업하고, 경성방직주식회사에 입사하여 당시 직기만 가지고 있던 이 회사에 방적기를 설치하기 위해 일본에 건너가 기술을 배워 왔다,

그 뒤, 김규선(金奎善) · 진재홍(陳在洪) 등의 기술자들과 함께 1936년 순수한 우리 기술만으로 최초의 방적공장을 건설하는 데 성공하였다. 1939년 경성방직이 만주의 소가둔(蘇家屯)에 남만방적주식회사를 설립할 때, 기술책임자로서 공장건설을 도맡았다.

1949년 면방업(綿紡業) 기술자들을 위하여 전문서적인 『면방적(綿紡績)』을 썼으며,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출강하여 후진양성에 힘썼다. 6·25 후 그는 경성방직의 후신 경방(주)을 재건하고 근대화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그는 혼타면기(混打綿機)의 개조에 성공했고, 1960년 초에는 이를 평가받아 미국 론스타(Lone Star)섬유회사의 초청을 받아 기술지도를 하기도 하였다. 1971년 과학의 날에 국회의장상을 받았다.

참고문헌

  • 단행본

  • - 김병운, 『면방적』 섬유공업총서 제1권(대한섬유공업연구회,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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