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출신. 근대 면방직공업을 개척하였다. 1935년 경성고등공업학교 방적과를 졸업하고, 경성방직주식회사에 입사하여 당시 직기만 가지고 있던 이 회사에 방적기를 설치하기 위해 일본에 건너가 기술을 배워 왔다,
그 뒤, 김규선(金奎善)·진재홍(陳在洪) 등의 기술자들과 함께 1936년 순수한 우리 기술만으로 최초의 방적공장을 건설하는 데 성공하였다. 1939년 경성방직이 만주의 소가둔(蘇家屯)에 남만방적주식회사를 설립할 때, 기술책임자로서 공장건설을 도맡았다.
1949년 면방업(綿紡業) 기술자들을 위하여 전문서적인 『면방직(綿紡織)』을 썼으며,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출강하여 후진양성에 힘썼다. 6·25 후 그는 경성방직의 후신 경방(주)을 재건하고 근대화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그는 혼타면기(混打綿機)의 개조에 성공했고, 1960년 초에는 이를 평가받아 미국 론스타(Lone Star)섬유회사의 초청을 받아 기술지도를 하기도 하였다. 1971년 과학의 날에 국회의장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