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성시(聖始), 호는 취락당(冣樂堂) 또는 백졸(百拙). 아버지는 제용감정(濟用監正) 김취연(金就練)이며, 어머니는 함양박씨(咸陽朴氏)로 직장(直長) 박원영(朴元英)의 딸이다. 백부(伯父)인 정약장군(定略將軍) 김취선(金就善)에게로 입양되었다.
고경명(高敬命)에게서 수학하였으며, 나이 10세가 되자 성리학(性理學)에 심취하여 『이정전서(二程全書)』 · 『주자대전(朱子大典)』 등의 오의를 궁구함에 진력하였다. 1591년(선조 24)에 사마시에 주1, 이정구(李廷龜) · 김상현(金尙顯) · 신흠(申欽) · 권필(權鞸) 등의 추숭을 받아서 그들과 수창한 시폭(詩幅)이 한 책을 이루었었다.
당시 제현(諸賢)들이 벼슬길로 나갈 것을 권유하였으나 그는 부모봉양을 빙자하여 출사(出仕)하지 아니하고 은둔생활을 계속하였으며, 재화(財貨)와 여색(女色)을 항시 경계함을 신조로 삼었었다. 저서로는 『백졸문집』이 주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