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지평, 승지, 경상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다시 서용되었으며 1686년 전주판관(全州判官)으로 재임시 53세의 나이로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양사(兩司: 사헌부 · 사간원)에 들어갔다.
1694년 지평(持平)으로 재임시에 시관(試官)으로 영남지방을 다녀와서 백성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궁방(宮房:왕과 선왕의 집안인 '궁실'과 왕실로 부터 분가한 왕자 · 공주의 종가인 '궁가'의 통칭)의 침탈상을 보고하고 그 구제책을 촉구한 바 있으며, 이듬해에도 군병(軍兵)의 기강확립과 궁방의 검약한 생활 등을 건의한 바 있다.
이후 여러 차례 승지에 발탁되었으며, 1698년 경상도관찰사로 재임시 도내를 순시하던 중 청송에서 죽었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청선고(淸選考)』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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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탄핵 내용 : 『숙종실록』 11권, 1681년(숙종 7) 2월 13일. "군포·전세포의 승·척수의 조정, 황일호·정뇌경의 포증에 관한 논의. 박태손이 김세익을 탄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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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三(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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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상소 내용 : 『숙종실록』 27권, 1694년(숙종 20) 9월 27일. "부사직 김세익이 영남의 사정을 상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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