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예조참판, 이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공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97년(연산군 3) 동부승지, 이듬해 좌승지를 거쳐, 그 해 여름에 외직으로 전라도관찰사를 역임하고 예조참판이 되었다. 다시 이듬해에 성절사로 명나라에 가서 『성학심법(聖學心法)』 4권을 구해 왔다. 그 뒤 경상도관찰사 · 이조참판 · 경기관찰사 · 형조판서 겸 지춘추관사, 제학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쳐, 1504년 47세에 이조판서에 올랐다.
이 해 갑자사화 때 폐비 윤씨의 회릉추숭(懷陵追崇)을 주장, 시행해 연산군의 신임을 받아 정헌대부(正憲大夫)에 가자(加資)되었다. 1506년 어머니 상을 당해 사직하고 물러났으나, 왕명으로 단상(短喪)으로 마치고 3개월 만에 우의정에 부임하였다.
이 때 중종반정에 참여해 좌의정에 오르고 정국공신 2등에 책록되었으며, 영가부원군(永嘉府院君)에 봉해졌다. 사림으로부터 연산군에게 충실했다고 비난받았으나, 1510년 영의정에 올라, 그 때 일어난 왜변의 진압을 총지휘하였다.
품성이 단정했으며, 청탁을 모두 거절하고 검약한 생활을 즐겼다. 연산군 때에는 많은 문신들의 화를 면하게 하였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참고문헌
- 『성종실록(成宗實錄)』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중종실록(中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이락정집(二樂亭集)』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해동잡록(海東雜錄)』
- 『성화10년갑오사마방(成化十年甲午司馬榜)』(『선세문과방목(先世文科榜目)』, 한국국학진흥원[안동 안동권씨 병곡(屛谷[權榘]) 종택])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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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생원 급제 : 『성화10년갑오사마방(成化十年甲午司馬榜)』(『선세문과방목(先世文科榜目)』, 한국국학진흥원[안동 안동권씨 병곡(屛谷[權榘]) 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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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四(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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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영가부원군 책봉 : 『중종실록』 1권, 1506년(중종 1) 9월 13일. "유순·김수동·박원종 등에게 관작을 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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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시호 추증 : 『중종실록』 16권, 1512년(중종 7) 7월 7일. "영의정 김수동의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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