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하

  • 예술·체육
  • 인물
  • 일제강점기
  • 현대
해방 이후 대한건축사협회 이사장, 대한건축사협회 창립회장 등을 역임한 건축가.
이칭
  • 연암(然庵)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66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901년(고종 38)
  • 출생지강원도 삼척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정동 (목원대학, 건축사)
  • 최종수정 2024년 06월 18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해방 이후 대한건축사협회 이사장, 대한건축사협회 창립회장 등을 역임한 건축가.

내용

호는 연암(然庵). 강원도 삼척출생. 1922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진학하였으며, 1925년 졸업과 함께 바로 전라남도청의 기수(技手)로 발령받아 광주로 내려갔다. 당시 광주는 선교사에 의하여 교회와 학교가 건립되고, 일본인에 의하여 은행 · 관청들이 조금씩 늘어나던 때였다.

1928년에는 ‘조선풍 주택설계도안 현상모집’에 응모하여 2등으로 당선되어 그의 건축적 의식의 한 단면을 보여주었다. 이 가운데 전남도청회의실 건물이 1981년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어 현재 보존, 관리되고 있다.

그뒤, 서울로 올라와 광복될 때까지 조선총독부를 거쳐 조선주택영단(대한주택공사의 전신)의 기사로 있으면서 주택 · 공공건축 등의 수준을 높이는 데 크게 심혈을 기울였으며, 일본인들로부터 신기술을 도입하여 흡수, 소화시키는 데 남다른 교량구실을 하기도 하였다.

광복 직후의 혼란기에 건설업체에 투신, 그 일선에서 활약하였으며, 대한건축사협회 이사장직(1955)을 비롯하여 정부 여러 부처의 기술자문역을 맡았다. 1965년 대한건축사협회의 발기인으로 창립회장이 되어 한국 건축사계(建築士界)에 초석이 되었으며, 그 공로로 1986년 대한건축사협회로부터의 공로패를 사후에 증정받았다.

한국근대건축의 원로로서 건축사의 진로개척에 공헌한 그의 건축작품은 섬세하고 우아한 것이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광주근무시절에 설계한 전라남도청사(1932)와 같은 청사내에 설계한 전라남도평의원회의실(1932)이 있다.

참고문헌

  • - 『한국현대미술사(韓國現代美術史) -건축(建築)-』(국립현대미술관,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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